[취재일기] ‘샤이 이재명’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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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샤이 이재명’은 존재할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2.07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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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의혹 많은 이재명…지지 여부 밝히기 꺼리는 ‘샤이(shy)’ 지지층 존재 가능성 거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예상치를 밑돌자, 정치권에서는 ‘샤이 이재명’의 존재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예상치를 밑돌자, 정치권에서는 ‘샤이 이재명’의 존재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한 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선거 직전까지 주요 여론조사 기관들 중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곳은 IBD/TIPP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헤드라인에 ‘충격’이라는 표현을 썼을 만큼 트럼프의 당선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여론조사 기관들이 트럼프의 승리를 점치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미국 대선 제도의 특수성입니다. 단순히 득표수를 합산해 승자를 결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선거인단제라는 다소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선거일에 후보가 아닌 선거인단에 표를 던지게 되는데요. 이 선거인단 선거는 특정 후보가 단 한 표라도 많이 얻으면 그 주의 표를 싹쓸이하는 ‘승자독식’을 따릅니다.

때문에 단순 득표수는 많더라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처져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2016년 미국 대선도 이런 케이스였습니다. 득표수 자체는 힐러리가 2.1%포인트 앞섰지만, 선거인단을 트럼프가 더 많이 확보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는 예측이 어려운 면이 있었죠.

또 하나는 ‘샤이 트럼프’의 존재였습니다. 당시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여성혐오 발언, 막말, 음담패설 등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는 지지를 숨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인종차별주의자’ 혹은 ‘저학력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는 사회 분위기 탓에,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숨긴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대선 과정에서도 ‘샤이’ 지지층의 존재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여당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지지율이 예상치를 밑돌기 때문입니다. <한국갤럽> 자체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 지지율은 2021년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수행해 2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34%를 얻은 후 지금까지 35%안팎에서 횡보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율이 26%(2022년 1월 4~6일 수행 6일 발표)부터 42%(11월 16~18일 수행 18일 발표)까지 요동친 반면, 이 후보 지지율은 35%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지율이 묶여 있는 건 이 후보에게 붙어 있는 각종 의혹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스스로가 인정하고 사과한 음주운전과 욕설 사건에서부터, 대선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부인 김혜경 씨의 ‘갑질’ 의혹 등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들이 ‘자랑스럽게 지지할 수 있는’ 후보가 아니라는 겁니다.

‘샤이 이재명’의 존재 가능성이 부각되는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제15대 대선 이후, 민주당 후보가 4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건 제17대 대선(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26.14%) 단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의 양강 대결로 치러졌던 제18대 대선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48.02%의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득표율은 지역적으로는 호남, 이념적으로는 진보층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은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2일부터 4일까지 수행해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는 광주·전라에서 60.0%, 진보에서 69.5%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텃밭’에서의 부진이 35% 안팎의 박스권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설 명절 민심 취재 과정에서도 이런 기류가 뚜렷했습니다. 전남 출신이자 민주당 당원인 60대 여성은 “윤석열도 못 찍겠지만 그렇다고 이재명도 못 찍겠다”며 말끝을 흐렸고, 그 동안 민주당 후보에게만 투표를 해왔다는 40대 남성은 “이번에는 차라리 심상정을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열성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한 50대 남성 역시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을 꺼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현 추세가 선거 때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후보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평생 이어온 투표 관성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면서 “결국 민주당 지지자는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윈지코리아컨설팅 박시영 대표도 “이 후보 개인적 구설수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재명을 지지하지 못하지만, ‘윤석열보다는 낫지’ 하고 투표장에 가실 분이 있다”며 ‘샤이 이재명’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역시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얻은 득표율이 80% 이상이었다는 점 △이 후보 지지율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에 못 미친다는 점 △그러나 이들은 결국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이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현 시점에서 약 5%정도의 ‘샤이 이재명’ 표가 숨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이 후보를 선택할 샤이 진보층도 3~5% 정도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여론조사 수치만 보면 윤 후보가 한 발 앞서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 교수나 윤 의원 말처럼 ‘샤이 이재명’이 최소 3%에서 최대 5% 존재한다면, 지금의 판세는 말 그대로 ‘박빙(薄氷)’입니다. 과연 ‘샤이 이재명’은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그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정말 샤이 지지층이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이번 대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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