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HDC현대산업개발, 관양현대서 승리한 이유…‘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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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HDC현대산업개발, 관양현대서 승리한 이유…‘심리’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2.07 16: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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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경기 안양 관양현대아파트 전경 ⓒ 조합원 제공
경기 안양 관양현대아파트 전경 ⓒ 조합원 제공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 아파트 붕괴 참사라는 대형 악재를 극복하고 경기 안양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을 수주했습니다. 해당 사업은 경기 안양 동안구 관양동 일대에 지하 3층~지상 32층, 15개동, 1305세대(예정) 규모 공동주택과 부대복리시설 등을 짓는 프로젝트로, HDC현대산업개발은 치열한 수주전을 펼친 끝에 지난 5일 열린 시공사 선정 총회를 통해 시공권을 확보했는데요.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물론, 일반 여론에서도 예상 밖 결과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관양현대 조합원들에 대한 비판까지도 들립니다. 연이어 대형 사고를 일으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논란의 건설사를 어떻게 믿고 공사를 맡길 수 있느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공권을 줬느냐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관양현대라는 사업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평가라는 생각입니다. 그 특수성을 인지한 후 이번 수주전 과정을 살펴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대목들이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정비사업 수주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표심'입니다. 누가 경쟁업체보다 조합원 표를 더 확보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되죠. 그래서 각 회사가 비현실적인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도정법을 위반해 금전을 살포하면서까지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을 쏟는 건데요. 결국 어느 건설사가 유권자인 조합원 '심리'를 잘 파악해 여기에 맞는 수주전략과 활동을 펼치는지가 관건이 되는 셈입니다.

이 같은 심리적 측면에서 봤을 때 관양현대는 이미 HDC현대산업개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관양현대 재건축조합은 현재 조합장 직무대행 체제 하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前)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집행부들이 지난해 연말 해임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해임을 주도한 조합원들은 이들이 △불투명한 임원 선출 과정 △특정 시공사와 유착 △독단적 조합 운영 △과다한 비용 지출 등으로 사업에 지장을 줬다고 주장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기존 임원진과 '특정 시공사' 간 유착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실제 유착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전체 사업에 지장을 줄 공산이 커서죠. 더욱이 관양현대 재건축조합은 오는 3월 새 임원을 선출하는 총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실제 유착 관계 여부를 떠나서, '특정 시공사'가 시공권을 확보할 경우 자신들이 내쫓은 해임 집행부가 임원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져 조합 내부 갈등이 심화될 것을 염려한 조합원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HDC현대산업개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심리가 형성된 셈입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막판 수주 전략도 반(反)현산 조합원들의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주 참사 직후 HDC현대산업개발은 유병구 대표이사 명의로 손편지를 작성해 안전시공을 다짐하고, '오직 관양현대만 집중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이며 관양현대 조합원들의 표심을 노렸으나 오히려 역효과만 났습니다. 실종자 구조작업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사업 수주에 혈안이 됐다는 비난 여론이 조합 안팎으로 확산된 겁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HDC현대산업개발은 시공사 선정 총회를 이주일 가량 앞둔 시점부터 읍소 전략을 펼쳤다고 합니다. '관양현대는 故 정주영 회장이 건축한 아파트', '분골쇄신해 새롭게 태어나겠다', '믿어 달라'는 식으로 말이죠. 반면, 경쟁사는 HDC현대산업개발을 때리는 방향의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고 합니다. '등록말소되면 공사를 아예 못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이라는 회사가 유지될지 걱정이다'라는 식이었죠.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동정 심리'입니다. 특히 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동정표가 선거 결과를 뒤집는 사례가 참 많습니다. 대선 불과 2시간 전 정몽준이 지지를 거두자 밤 늦게 그의 자택을 찾아갔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노무현의 씁쓸한 표정,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서 이정희에게 거의 난도질 당하다시피 한 박근혜의 당혹스런 얼굴, 그들을 동정해 표를 준 유권자들이 상당했죠. 아마 관양현대 수주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에이치디씨 현대산업개발이 관양현대 조합에 보낸 7대 약속 공증 확약서 ⓒ 독자 제공
에이치디씨 현대산업개발이 관양현대 조합에 보낸 7대 약속 공증 확약서 ⓒ 독자 제공

아울러 HDC현대산업개발이 경쟁업체 대비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안한 점은 광주 참사 또는 동정과 같은 감정적 요인 등에 쉽게 구애받지 않는 합리적 조합원들의 표심을 건드렸다고 여겨집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경쟁사가 제안한 금액(4240억 원)보다 낮은 4174억 원을 총 공사비로 제안했고,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해 2조 원 가량의 사업비를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조합원 분담금 납부를 최대 4년(2년+2년)까지 유예하는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또한 HDC현대산업개발은 수주전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건축·디자인업체인 SMDP와 협력해 명품 설계를 적용하겠다며 관양현대 현장에 스콧 사버 SMDP 대표이사를 대동해 조합원들과 인사를 시켰는데요.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SMDP 대표이사까지 불러 해외설계를 강조하자, 경쟁업체가 뒤늦게 저디사(社)와 손을 잡더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에 대해 경쟁사는 사실이 아니라며 적극 부인했지만 이미 소문이 돈 뒤였죠. 특히 합리적 조합원들은 지난달 18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조합에 공문을 보내 공증한 7대 확약서(시공사 선정 후 재신임, 보증기간 확대·시공 보증 100%, SPC 사업비 조달 확약, 일반분양 최고시세 반영·대물변제 보장, 외부전문기관 안전진단, 시공감시단·안전감독관 운영 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물론, 공증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만큼, 현재 이들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이 같은 약속을 어길 시 즉각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집니다.

결과론적인 얘기, 꿈보다 해몽이라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관양현대 사업 내부에 이 같은 특수성이 존재했고, 이게 시공사 선정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밖에서 표면만 봤을 땐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이나 속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관양현대 조합은 군중심리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들이 처한 상황 아래 구축된 심리를 바탕으로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의사결정을 내린 게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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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양 2022-10-17 21:09:23
현장을 아는 듯한 굉장히 정확하고 통찰력있는 기사라고 생각됩니다.

전미선 2022-11-07 15:30:12
사기꾼과 협짝꾼들의 결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