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조, “동서화합의 밑거름 되겠다”
김봉조, “동서화합의 밑거름 되겠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0.02.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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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갈등 해소의 깃발든 김봉조 민주동지회장

지난해 8월 김대중(DJ) 전 대통령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자 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DJ가 입원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 “DJ와 나는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자 애증관계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수관계”라고 밝혔다.
 
YS는 이어 기자들이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냐’는 질문에 “이제 그렇게 봐도 된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YS 초청으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이 화합 만찬을 가졌고, 상도동계의 핵심 인사인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이 별세하자 장례식을 ‘민주동지장’으로 치르면서 양측간 화해가 지속되고 있다.
 
양측의 화해무드는 정치적으로 볼 때 큰 의미를 지닌다. 30년 넘게 이어 온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과연 이들의 만남이 인종적, 종교적 갈등만큼 위험수위에 다다른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상도동계 모임인 ‘민주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봉조 전 의원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 김봉조 민주동지회장은 동교동과의 화해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시사오늘 권희정
김봉조 회장을 인터뷰 후보로 정해놓고 자료들을 찾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김봉조’란 검색어를 쳤지만 거의 전무했다. 인터넷에선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김영삼 의원의 비서를 지냈으며, 거제에서 12대에서 14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1996년부터 2년간 마사회장을 역임했다’는 게 전부였다.
 
또 하나는 고(故) 장진영씨와 비밀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던 사업가 김모씨의 부친이 ‘김봉조 전 국회의원’으로 잘못 써진 게 있었다. 아마도 ‘김봉호 전 의원’을 ‘김봉조’로 틀리게 기재한 듯싶었다. 자료가 너무 없어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지난 7일 김 회장의 여의도 사무실에 들러 김 회장과 점심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김 회장은 상도동 1세대답게 YS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YS는 사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특히 돈에 대해서는…. 한예로 YS와 DJ가 원내총무 경선을 했을 때인데, DJ의 핵심 참모였던 김상현씨가 상도동에 들러 ‘선거를 치러 돈이 한푼도 없다’고 하니까 YS가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한푼도 남기지 않고 털어서 모두 줘 버렸습니다.
 
이게 가능한 얘깁니까. YS는 그런 사람입니다.” 김 회장의 지난 정치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최근 상도동과 동교동간 화합의 장이 꽤 진정성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12일 오후 2시 김 회장의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김 회장을 만나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민주동지회의 역할과 노력, 그의 정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민주화 인사들의 장례는 민주동지장으로 치를 것”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맞물려 상도동과 동교동 간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전 병문안을 하면서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깊은 잠에 들어 있어 상면(相面)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봤다면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을 과거로 돌리고 쾌유를 바란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깨어나면 얘기를 전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YS가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상도동계 인사들도 대거 조문에 동참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김 전 대통령 주재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화합 만찬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성사됐습니까.
“지난해 7월 민주동지회 모임에 정치학자인 서강대 강정인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강 교수는 강연에서 두 분의 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산 증인이라고 말하면서 군 집권으로 오랜 시달림이 예상됐지만 의외로 빠르게 민주화가 이뤄진 것은 두 분의 역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또한 YS 집권으로 군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됐고 정치개혁과 부정 척결이 이뤄졌으며 금융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기를 보완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두 분의 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강 교수의 주장이 사심 없는 지성인의 견해라고 생각해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보고를 올렸습니다. 저의 보고를 듣고 YS가 상도동과 동교동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게 된 것입니다.”

-‘화합만찬’ 소감을 들려주시죠.
“참석자들을 처음에는 수십 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너무 많이 참석하여 만찬장에는 100명이 훨씬 넘게 모였습니다. 동교동측을 위로하는 자리라서 상도동측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진 못했습니다. 옛날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 모두 하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화합만찬 이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화합을 위해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1월 1일 상동동계 인사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동교동계 인사들은 YS에게 세배를 왔습니다. 이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상도동계에서는 이희호 여사에게 세배를 갔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상도동계)이 별세했을 때 장례를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를 아울러 ‘민주동지장’을 치르면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덕룡 대통령특보, 저 그리고 김상현 전 의원(동교동계)이 장례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민주동지장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서 전 장관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민주화 인사 장례는 상도동, 동교동을 불문하고 민주동지장으로 치르게 될 겁니다.”
 
▲김 회장은 문민정부가 반드시 재평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박지원 돌출행동을 문제 삼으면 오히려 말려드는 꼴”
 
-박지원 의원이 김 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가하고 화합분위기에 역행하는 언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상도동계에서 한 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박 의원은 민주화 투쟁 시절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세대가 아닙니다. 동교동계 내에서 소외감을 느껴 돌출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상도동계에서 문제를 삼는다면 오히려 박 의원에게 말려드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침소봉대가 되는 것이지요.”

민주당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양측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던 지난해 11월 YS가 본지와 가진 인터뷰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1년 6개월 동안 뒷조사를 했고, 또 모욕을 주기 위해서 청문회에 불러내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서했고 모든 것을 화해했다’는 내용을 문제 삼아“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화해를 했다면 이제 막말행진을 거둬들이는 것이 좋다”고 비난했다.
 
박 의장은 또 전남대학교 특강에서“검찰에서 안기부 대선자금을 수사한 일이 있지만 김영삼을 뒷조사한 일이 없다. YS는 당신 스스로 독재자라고 비판하던 전두환 노태우 당과 3당 야합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국민 앞에 자숙해야 한다”고 맹공을 날렸다.
 
필자는 이런 박 의장의 언행에 대해 ‘상도동계 인사 중 누군가는 반박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며 질문을 던졌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한편 민주동지회는 이와 관련 “박지원 의원이 YS에 대해 비난할 시기와 상황이 아니다. 박 의원은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고 짤막한 논평을 냈다.

-동교동계의 좌장은 누구라고 봐야 합니까.
“권노갑 전 의원 아니겠어요. 동교동에서는 가장 오래 정치를 한 분입니다. 야당 밥을 오래먹었어요. 민주화 운동 할 때는 나이를 몰라 그냥 ‘권노갑’이라고 불렀는데 국회에 들어와 보니 나보다 8살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님’이라고 부른다고 했지요. 권 전 의원이 ‘그럴 것 없다고’ 사양했지만 선배님으로 예우했습니다.”

-동서 화합분위기 조성에도 불구하고 은퇴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에서 지역구도를 약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양김의 후보단일화를 기대했습니다.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아 영남과 호남이 갈라진 겁니다. 그 이후 지역의 골이 더 깊어졌고요.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도 충청을 선점하기 위한 영남과 호남의 지역갈등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지역 갈등은 한국 정치의 산물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인데 풀지 못한 채 은퇴를 한 것이지요. 과거 민주화의 동지들이 정치 1선에 없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 지역갈등이 없어진다고 예단할 수는 없더라도 국민들이 성숙해져서 지역갈등은 약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정당은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나라가 되기 위해서도 지역갈등은 사라져야 하고요.”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 문민정부 재평가 필요”
 
-지역 갈등 형성의 책임을 놓고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동일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7년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자 필승론’, ‘지역등권론’ 등을 내세우며 지역주의를 부추긴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로 책임 소재를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요.
“엄밀히 따지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우리나라 정치 1세대로서 대의적으로 공동의 책임을 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 회장은 12대 이후 거제에서 내리 3선을 기록했습니다. 이 또한 지역주의의 수혜를 입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거제는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거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거제는 조선(造船)의 메카 아닙니까? 1987년일 겁니다. 그 때 대우조선 노사분규가 엄청났습니다. 근로자 2명이 분신자살을 하고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나서서 일주일만에 노사를 조율했고 산업은행으로부터 4,500억 원의 특별자금도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소 독(Dock) 건설을 상공부에서도 반대하던 걸 내가 설득해서 만들었던 겁니다. 조선소 근로자들에게 신임을 얻어서 당선된 것이지 지역주의의 혜택을 본 건 아니지요.”

-민주동지회와 상도동계에서는 ‘문민정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잘못 평가되고 있다고 봅니까.
“IMF 금융위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에 대해 김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은 김 전 대통령 집권 이전에 지은 것이고 IMF 금융위기의 원인은 제가 국회에서 소위‘경제학도’(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 역임)여서 잘 압니다.
 
이전 정권에서 금융기관을 방만하게 허가해주고 외국 단기자금을 무분별하게 끌어다 쓴 것이 원인입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IMF는 영국도 겪었던 것이고 작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우리나라가 빨리 회복된 것은 IMF를 먼저 겪어 단련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에 대해 재임 중 정책만 놓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봉공후사(奉公後事)를 실천했느냐를 따져봤으면 합니다.”

-문민정부의 공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금융실명제 실시라고 봅니다. 지금도 못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현재 수사의 기초가 되는 것도 금융실명제지요.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도 김 전 대통령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나회 척결 후에 다른 사조직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와 같은 세력화는 될 수 없을 겁니다.”
 
▲김 회장은 민주동지회는 소회계층을 위해 활동할 것 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사오늘 권희정
“3당 합당 찬성, 하지만 YS 대통령 될 줄은 몰라”
 
-3당 합당에는 찬성했는지 궁금합니다.
“찬성했습니다. 현역의원 시절 예산을 다루다 보니 정당들이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저 자기 정당에 유리하게 어떻게든 돈을 끌어다 쓰려고만 했어요. 먼저 나라를 살려보자는 구국의 일념에서 3당 합당에 찬성했던 것이지요.”

-당시 민정계가 7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예상 못했습니다. 우선 나라부터 걱정했어요. 3당 합당 후에는 예산은 제 생각대로 잘 집행이 됐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YS가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를 밀었는데 이유가 뭡니까? 둘 사이가 불편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아마 김 전 대통령이 이 총재를 훌륭하게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나 하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그 뒤 이 총재가 좀 달라졌지요 ”

-당시 신한국당 경선을 공정하게 치렀다면 최형우 전 장관이 후보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YS가 이원종 정무수석을 시켜서 최 전 장관의 대권행보를 주저앉혔다는 후문이 돌았습니다.
“세상에는 근거 없는 추측도 많은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은 상도동 1세대임에도 상도동 사단을 얘기할 때 김동영, 최형우를 먼저 얘기합니다. 이유가 어디 있다고 봅니까.
“평소 잘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중요한 일은 제가 했습니다. 알만한 동지들은 다 알고 있지요. 김동영 최형우 서석재 김봉조 이 네 사람은 상도동 1 세대로 혈맹의 동지들이지요. 사실 드러내 놓고 못하는 일은 제가 처리하고는 했어요. 김동영과 최형우의 갈등이 있을 때도 제가 중재했고요. 김동영 전 의원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참 아쉽습니다. 김 전 의원이 살아 있었다면 김 전 대통령이 더 큰 일을 했을 겁니다.”

-민주동지회에서 앞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일을 소개해 주십시오.
“우리나라가 그전에 비해 민주화가 이룩됐지만 아직도 비민주적 행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후진 정치인들이 원칙과 규칙을 준수하도록 우리가 돕고 싶습니다. 영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정당의 정책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으면 끝까지 토론을 벌이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 원칙대로 처리합니다. 민주동지회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완성에 힘이 되고자 합니다. 또한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과 장학재단 설립도 준비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민주동지회원은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많고요. 정치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정신이 구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사심 없는 정치인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치 지도자들을 많이 접해봤지만 최고의 지도자는 역시 김 전 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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