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아이젠하워의 리더십과 건설사 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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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아이젠하워의 리더십과 건설사 오너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2.13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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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면서생 장교, 전쟁영웅 된 리더십 귀감으로 삼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건설사 오너들은 현재 위기를 극복할 교훈을 아이젠하위의 리더십에서 찾아보길 권해본다. 사진(좌) 아이젠하워 항공모함, 사진(우) 건설현장  사진출처: 픽사베이  
건설사 오너들은 현재 위기를 극복할 교훈을 아이젠하워의 리더십에서 찾아보길 권해본다. 사진(좌) 아이젠하워 항공모함, 사진(우) 건설현장 사진출처: 픽사베이  

“자신감을 상실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사원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정열의 마그마를 다시 끓어오르게 해 힘을 최대한 이끌어 낸 것이 비결이다.”

만년 적자 기업의 대명사였던 소니를 7년 만에 1조엔 이상의 영업이익 흑자로 기사회생시킨 히라이 가즈오 전 회장의 리더십이다.

기업이 뜻하지 않은 위기를 당하면 ‘멘붕’에 빠지게 된다.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도 안 나고 허둥지둥하다가 그냥 자포자기한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는 데도 이를 무시하고 면피를 위해 희생양을 찾다보면 기업은 회생불능이 된다. 얼마 안 있어 파산한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회생시켜 희망에너지로 전환시키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아이젠하워(이하 아이크) 전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세계 최고 권력자까지 오른 역사의 거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1942년 북아프리카 지역 연합군사령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전투경험이 전무한 별볼일없는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이크는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 주로 전차훈련소 등 교관으로 근무해 전장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파나마운하 지역에서 근무했고, 육군참모학교와 육군전쟁대학을 거친 백면서생 장교에 불과했다. 1932년 육군참모총장 더글러스 맥아더의 참모가 됐고, 1935~1939년엔 필리핀 군사고문 맥아더 휘하에서 현지 주둔군 양성을 맡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인생 역전 ‘로또’가 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역을 앞둔 아이크를  1942년 북아프리카 지역 연합군사령관에 임명했다. 루스벨트의 기습적인 인사는 미군은 물론 동맹국 영국도 경악시켰다. 

현지에선 전투경험이 전혀 없고 교관과 참모만 전전하던 전역대기자 장군이 역전노장 롬멜이 지휘하는 최강 독일군에 맞설 수 있을지 우려했다. 루스벨트가 노망이 든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을 것이다.

백면서생 아이크는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첫 작전인 횃불작전 초기 연합군은 1500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양산했다. 횃불작전은 연합군이 북아프리카를 경유해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하지만 아이크는 초기 희생자에 연연하지 않고, 나치의 꼭두각시 프랑스 비시정권의 프랑수아 다를랑 장군과의 담판을 통해 항복을 받아낸다. 

히틀러는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 교두보를 확보하자 사막의 여우 롬멜에게 이들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롬멜은 전투준비가 안 된 연합군을 게세린 협곡에서 기습해 궤멸적 패배를 안겼다. 

이 전투는 미군과 독일군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처음으로 맞붙은 전투로 상징성이 컸다. 미군이 입은 타격은 심각했다. 당시 미군은 전투경험도 부족했고, 지휘부의 리더십도 없었다. 사기는 형편없이 수직 낙하했다. 특히 아이크를 향한 비난이 쇄도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혹평이 그를 괴롭혔다.

아이크는 달랐다. 자신을 겨냥한 온갖 비난을 무시하고 캐세린 협곡 패전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다. 역시 군 지휘부의 리더십 부재와 훈련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트는 최악의 졸장 로이드 프레덴탈 2군단장을 전격 해임했고, 전쟁의 광신도 조지 패튼 장군에게 지휘권을 맡겼다. 패튼이 전의를 상실한 미군을 전사로 재탄생시킬 수 있은 최적의 인물로 판단했다. 또한 신중하고 온화한 성격의 브래들리 장군을 휘하에 둬 완급조절을 하게 만드는 치밀함을 보여줬다,

패튼은 아이크의 의도대로 약체 이탈리아군에게도 유린단한 오합지졸 미군을 기본제식훈련부터 시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마전사로 탈바꿈시켰다. 패튼은 전열이 정비되자 반격에 나서 독일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미군의 사기는 하늘을 짤렀고, 패튼의 무적 전차군단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로써 아이크는 그동안의 비난을 일소에 해결하면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고, 2년 후 역사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전쟁영웅이 됐다. 미국민은 전투경험이 일천했던 전쟁영웅의 탄생에 열광했고, 종전 후 8년 만에 아이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최근 건설현장에서의 각종 사고로 건설업계가 뒤숭숭하다. 가뜩이나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건설경기가 위축된 상황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물론 안전사고로 아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일은 대오각성해야지만 건설사 오너들이 처벌에 연연해 위축돼서는 안 된다. 위기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아이젠하워는 전투경험이 전무했지만, 침착하고 냉정한 리더십으로 패배의 원인을 찾아 보완했고, 휘하 장군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만들어줘 승리를 이끌었다. 건설사 오너들은 현재 위기를 극복할 교훈을 아이젠하워의 리더십에서 찾아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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