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㉗] 고향의 맛기행(1)-섬진강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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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㉗] 고향의 맛기행(1)-섬진강 먹거리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2.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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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재첩과 벚굴, 은어 참게의 성찬
고향 먹거리는 음식 넘어 추억 그 자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가수 박재란의 노래 '산 넘어 남촌' 가삿말처럼 이제 입춘이 지나 봄이 고개 넘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생동의 계절 싱그러운 봄, 머지않아 새들의 지저귐과 향긋한 꽃내음이 풍겨올지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봄이 가까워지면 마음은 온통 어린 시절 노닐던 고향의 강 섬진강변으로 달려간다. 특히 고향에서 먹는 먹거리는 이제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추억 그 자체다.

섬진강 물결 유유히 흐르고 푸근한 지리산이 있는 내고향 하동.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먹거리와 볼거리도 많은 고장이다.

섬진강이 주는 최고의 선물 재첩

겨울이 물러나고 온기가 느껴지는 3월이 되면 섬진강에서는 재첩 채취하는 손길이 바빠진다. ⓒ연합뉴스
겨울이 물러나고 온기가 느껴지는 3월이 되면 섬진강에서는 재첩 채취하는 손길이 바빠진다. ⓒ연합뉴스

겨울이 물러나고 온기가 느껴지는 계절이 되면, 섬진강에서는 재첩 채취하는 손길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재첩은 깨끗한 물이 지나는 모래밭을 특히 좋아하는데 한겨울이면 모래 깊숙이 파고 들어가 앉아 있고 봄이 되면 모래위로 올라온다. 하천이나 하구와 같이 해수와 담수가 섞이는 곳에 많이 서식한다.

섬진강 재첩은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절묘한 장소에서 나오는 민물조개로, 하동에서는 ‘갱조개’라고도 한다. ‘강조개’의 하동 사투리인데 타원형에 가까운 껍데기 표면에 유난히 광택이 난다. ‘하룻밤 사이에 3대를 볼 정도로 첩을 많이 거느린다’고 할 정도로 번식력이 강해 재첩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섬진강 재첩잡이는 과거 별다른 도구 없이 호미나 손으로 얕은 강물 속을 파서 재첩을 채취하던 방식에서 ‘거랭이’를 이용한 손틀 어업으로 발전했다. 배틀방이라는 도구를 배에 묶어 끌고 다니면서 강바닥에 있는 재첩을 긁어 잡는 형망어업과 가슴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고 물속에 들어가 ‘거랭이’로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 모래와 펄 속에 숨어 있는 재첩을 잡는 전통 손틀 방류 어업으로 이뤄진다.

하동 송림. 여름날 피서지로 최고다. ⓒ정명화
하동 송림. 여름날 피서지로 최고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하동 섬진강 백사장에 재첩 조형물이 있다. 따스한 햇살따라 섬진강 봄바람 맞이에 나선 동심이 멀리 보인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하동 섬진강 백사장에 재첩 조형물이 있다. 따스한 햇살따라 섬진강 봄바람 맞이에 나선 동심이 멀리 보인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섬진강은 바다와 강이 만나고 모래가 많은 데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 재첩이 많이 났다. 한때 ‘물 반 재첩 반’이라 할 정도로 재첩이 흔했지만 서식환경이 변화하면서 채취량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렇듯 지금은 하동 섬진강에 예전처럼 재첩 수확량이 풍요롭지 못하다.

나의 어린 시절엔 하동 송림 섬진강가에서 물놀이하며 모래 한 줌을 움켜쥐면 모래반 재첩반으로 손에 잡히는 게 재첩이었다. 주워서 집에 가져올 정도로 재첩이 섬진강엔 넘쳐났는데 아쉽다.

재첩은 껍데기를 분리한 진줏빛 속살을 끓는 물에 삶아 국으로 내거나 회무침으로 먹는다. 뽀얗게 살이 우러난 재첩국에 부추와 파 등을 송송 썰어 넣은 재첩국은 해장국으로 인기다. 재첩은 통상 3월부터 10월까지 채취하는데 5월에 끓인 재첩국 맛이 연중 최고다.

재첩에는 간장의 활동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부터 술을 즐기는 이들은 아침에 재첩국을 먹었던 것이다. 또한 간장질환과 담석증 환자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어 황달에 걸린 사람이 재첩국을 많이 찾았다.

또 니아신(비타민B3), 탄수화물과 에너지 대사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B1, 간 기능 유지와 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E, 빈혈 치료에 도움이 되는 철분, 면역강화, 성호르몬 생성 등에 필수적인 아연,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는 칼슘과 인 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섬진강 명물 벚굴

봄철 섬진강에서 나는 벚굴. 큼직하고 향긋한 맛이 별미다. ⓒ하동군청
봄철 섬진강에서 나는 벚굴. 큼직하고 향긋한 맛이 별미다. ⓒ하동군청

재첩과 함께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 속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다는 섬진강 명물 벚굴. 맑은 물속에 '벚꽃처럼 하얗게 피었다'해서 이름 붙여진 벚굴은 물속 바위나 강가 암석 등에 붙어 서식해 '강굴'이라고도 불린다.

전문 잠수부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바위에 붙어 있는 벚굴을 채취하며 물이 빠지면 강가에서 잡기도 한다. 벚굴 크기는 바다 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섬진강 벚굴은 설이 지나면 조금씩 잡기 시작해 산란기를 앞둔 5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싱싱한 벚굴은 주로 구워 먹지만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생굴과 구이는 물론 회무침, 튀김, 죽 등으로도 요리한다. 벚굴은 단백질과 무기질·각종 비타민·아미노산이 풍부해 성인병 예방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맏이이던 난 유년기 아버지랑 겸상을 자주 했는데 종종 벚굴이나 대합이 상에 올랐다. 어린 입맛에 약간 비려도 고추장을 얹어 상큼하고 신선하며 짭조름한 맛을 즐겼다.

청정수역에서 사는 은색 물고기 은어

7월을 시작으로 섬진강과 지리산 계곡에서는 은어 낚시가 한창이다. 물살을 박차고 허공을 가를 때마다, 은색 비늘의 은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은어는 예부터 맑고 깨끗한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이다. 크기는 15~25센티미터 정도. 물속 청정한 이끼류를 먹고 자라기에,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수박향이 돈다. 하여 예부터 임금님께 올리는 주요 진상품 중에 하나였고 옛 선비들도 즐겨 먹었던 어족이기도 했다.

주로 은어 향 그윽한 회나 구이로 먹었을 뿐 아니라, 은어튀김도 맛나다. 지역에 따라 여름이면 은어 육수에 시원하게 국수를 말거나 밥에 은어를 통째 넣어 은어밥을 해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사신에게 ‘은어젓갈’이나 ‘은어 식해’를 선물하기도 했다.

봄이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은어는 가을에 산란을 한 후 하류로 내려와 생을 마감한다. 산란을 하고 하류로 내려오는 은어를 ‘내림 은어’라 하는데, 이 내림 은어는 먹이활동을 일체 삼가다가 굶어서 죽음에 이른다. 이러한 염결한 성정이 마치 선비를 닮았다 하여 ‘물속 군자(水中君子)’로 불리며 널리 사랑받기도 했다. 배 부분이 은빛을 낸다고 은어(銀魚)라 부르는데, 입술 주변이 하얗다고 은구어(銀口魚), 배 쪽에 은빛이 반짝인다고 은광어(銀光魚)라 불리기도 한다. 한 해만 살기에 연어(年魚)라 칭하기도 한다.

은어와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여름이면 지리산 언저리로 나들이를 가는게 행사인데, 학창시절 친구들이 방문하면 은어요리를 최상품으로 대접했다. 특히 유년기 겨울 하동 화개에서 온 친척이 어느 날 생선 한 꾸러미를  선물로 갖고 왔다. 말린 은어였다. 구이로 밥상에 올라왔는데 뼈까지 다 먹어도 된다는 얘기에 정말 뼈까지 다 먹었는데 어린 입맛에도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지금까지 먹은 생선구이 중 최고로 칭할 정도의 별미로 기억하며 은어와의 달콤한 첫 만남이었다.

섬진강 푸른 물에서 잡는 다슬기

민물에 주로 서식하는 다슬기 또한 빠질 수 없는 추억의 먹거리로 간식에 가까웠다.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는 다슬기 삶은 국물에 다슬기와 애호박, 양파 등을 넣고 수제비 반죽을 손으로 떼어 넣어 끓였다. 우리는 섬진강보다 지리산 계곡 여름 물놀이할때 바위틈에서 즐기는 놀이로 잡아 삶아 먹었다. 고동이라 불렸는데 지금은 다슬기로 불리운다.

오래전부터 수제비와 해장국으로 즐겨 먹었던 섬진강에서 잡은 다슬기는 간 질환에 효험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반위, 위통 및 소화불량을 치료한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다슬기는 지방 함량이 적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다.

참게 간장 딱지에 밥한공기 뚝딱

참게는 재첩과 함께 하동 섬진강을 대표하는 식재료중 하나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참게는 재첩과 함께 하동 섬진강을 대표하는 식재료중 하나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참게는 재첩과 함께 하동 섬진강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참게 본연의 강한 맛을 내 대표적 참게 요리로 참게장과 참게탕, 하동에선 토속음식 ‘참게 가리장’이 유명하다.

참게 가리장은 음식이 귀했던 시절 참게를 적게 넣고 양을 늘리기 위해 밀가루를 풀어 만든 음식이다. 요즘에는 싱싱한 섬진강 참게를 밑바탕으로 찹쌀가루, 들깨, 콩가루 등의 곡물과 감자, 느타리버섯, 양파, 대파 등 다양한 재료를 듬뿍 넣어 구수하게 끓여 낸다. 곡물의 구수함에 참게 특유의 시원함, 매운 고추의 칼칼함과 방아 향까지 더해져 걸쭉하면서 얼큰·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무엇보다 참게장은 특유의 깊은 풍미로 숱한 '밥도둑' 중 으뜸으로 꼽힌다. 따끈한 쌀밥 한 숟가락을 잘 숙성된 참게장 게딱지에 넣고 비벼 먹는 맛이란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참게 간장게장을 주로 담궈 먹었다. 참게가 나는 계절엔 김장처럼 집안 연례행사로  할머니랑 엄마가 게장을 만들어 타지 친척집에 보냄과 동시에 겨우내내 두고 먹었다.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참게를 주로 통발로 잡는다. 참게가 고등어나 잉어를 좋아해서 이들 생선을 토막 내 통발에 넣어 두고 유인한다. 하루쯤 지나 통발을 건져 올려 잡는다.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알도 실하게 찬 가을 참게 맛을 최고로 친다. 경남 하동은 섬진강이 굽이쳐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섬진강 참게는 바닷물과 만나는 기수지역에서 서식해서 비린 맛이 덜하다는 평이다.

참게는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특유의 맛과 향으로 명품 행세를 해왔다.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미식가였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참게의 몸빛은 푸른 검은색이고 수컷은 다리에 털이 있다. 맛은 게 중에서 가장 좋다"라고 일찍이 그 맛을 인증했다.

이렇듯 섬진강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며 독특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전남 구례와 광양 그리고 경남 하동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은 그저 말없이 유유자적 평화롭기만 하다. 어느 곳에서 바라보건 섬진강은 아름답고 물결은 은빛 백사장과 함께 금빛으로 은빛으로 부서져 환상적이다.

이에 지금은 전국적인 관광지로 유명세를 떨치며 각광받고 있지만, 섬진강변은 나의 유년기 놀이터였고 항상 초등학교 소풍지였다. 많은 것을 내어주고도 겉으론 고요하고 평온한 엄마 같은 강 섬진강. 봄엔 섬진강으로 달려가 고향의 맛을 음미하며 섬진강 품에 안겨보리라.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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