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대재해처벌법, ‘오너일가’ 빠지면 효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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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대재해처벌법, ‘오너일가’ 빠지면 효과 없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2.14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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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달 10일 산재 사망 근로자 추모집회가 열린 모습. ⓒ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지난해 5월 10일 산재 사망 근로자 추모집회가 열린 모습. ⓒ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 시행 이후 불과 약 2주 만에 삼표산업, 요진건설산업·현대엘리베이터, 여천NCC, 한솔페이퍼텍 등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해당 사건들에 과연 동법이 적용될지, 적용된다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며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일지를 두고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 시행 초기인 데다, 법 자체가 기준이 불분명한 규정으로 구성된 만큼 어떤 결론이 나든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여지가 상당해서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 내에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했거나 안전보건 관리가 부실해 중대재해가 터져 인명피해가 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업주란 '개인사업자',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즉, 개인사업자인 사업주 또는 대표이사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 책임자 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때문에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에 중대재해가 터진 법인들의 오너일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삼표산업은 표면적으로 그룹 오너일가인 정도원 회장, 정대현 사장 등의 관리 하에 있는 업체가 아니며, 요진건설산업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8월 최준명 창업주 아들인 최은상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또한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이앤씨(구 대림산업)의 합작법인이어서 김승연 회장이나 이해욱 회장 등 오너일가에게까지 법 적용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한솔페이퍼텍도 조동길 회장 등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관리·지배구조다.

어쩌면 이게 합리적인 법 적용, 제도 운용인지도 모른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는 이유로 행정수반이자 국가 안전관리 총책임자인 대통령, 국무총리, 또는 행정안전부나 국토교통부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반문에 적절한 답을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 현실을 감안하면 이 같은 법 적용은 분명 비합리적이다. 국내 기업, 특히 대기업의 전문경영인(CEO) 중 대부분이 재벌 오너일가의 '머슴'이나 '집사' 역할을 맡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더 속된 말로 '바지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오너일가의 영향력 하에 이사회가 돌아가고, 분할된 지주사가 사업회사의 중요한 경영계획들을 결정한다. 전문경영인에게 주어진 역할은 단가를 후려치든, 저가 자재를 쓰든, 물량을 밀어내든 간에 수익을 창출하고, 이익을 극대화해 오너일가에게 돌아가는 돈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연임은 불가능하다. 이런 환경에서 오너일가가 중대재해 책임에서 빠지는 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입법 취지를 고려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근본 취지는 '징벌'이 아니라 '예방'에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법을 통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사망사고가 일어나지 않게끔 안전보건상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지만 이게 잘 먹히지 않고 중대재해가 증가하고 있으니, '예전에는 윗대가리들까지 책임을 안 물으니까 안전보건 외면하고 비용 절감만 했지? 이젠 윗대가리도 처벌할 거야. 그러니까 사고 터지지 않도록 미리 안전보건에 집중 투자해'라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엄포에 각 기업 오너일가들은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아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오거나 CSO(최고안전책임자)를 별도로 선임하는 등 꼼수를 부렸다. 이들을 중대재해 책임에서 제외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의 실질적 대표자이자 경영 전반을 사실상 총괄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오너일가를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무조건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오너일가의 안전보건 조치 미흡을 입증하기 어려운 실정을 감안해 동법 3조 이하에서 규정하는 사업주의 범위를 확대해 중대재해 발생 시 오너일가의 책임 소지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6조와 15조 등에서 규정하는 벌금과 손해배상 책임 대상(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에 오너일가(대기업집단의 경우 동일인)를 포함시켜 회사와 공동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산안법, 건설기술진흥법 등에 비해 법 자체가 빈약하고 허술하며, 해석하기 모호한 조항도 많다. 앞으로 손봐야 할 부분이 있는 제도 하에 처벌이 이뤄지는데, 그 처벌조차 실제 책임이 없는 자에게 가해져선 안 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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