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자살] 무너지는 삶, 문턱 못 넘는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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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자살] 무너지는 삶, 문턱 못 넘는 ‘법안’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2.02.16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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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최진실법(사이버 모욕죄)…반대
2019년, 설리법(악플금지법)…임기만료폐기
2022년, 해외 SNS 옮겨간 악플러…규제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김유종
정치권은 악플로 인한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시사오늘 김유종

정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입법부인 국회는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 의무가 있다. 법안 제·개정 속에 하나의 시스템이 형성되고, 국민들은 그러한 법제적 노력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그중에서도 ‘악플’에 어떻게 대응해왔을까. 과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악플로 인한 죽음은 여전히 자살일까. 아니면 정치권의 미흡한 대응이 낳은 타살일까.

 

서막. YS·DJ가 연 ‘정보화 시대’


ⓒ연합뉴스
1996년 YS는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며 정보화추진회의를 설치하고, 정보화 사업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악플 혹은 악성 댓글의 장(場)은 온라인이다. 정보화 시대는 김영삼(YS)과 김대중(DJ) 정부 시절에 시작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명(明)과, 악플에 따른 ‘자살공화국’이란 암(暗)이 공존하게 된 시기다.

YS는 1994년 처음으로 정보통신부를 출범시켜 IT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후 당선된 DJ 또한 IMF 경제 위기를 타파할 분야로 IT를 꼽았다. YS 정부 시절 마련한 IT 산업 기틀 위에서, DJ 정부는 꽃을 피워나갔다.

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는 한 강연에서 “오늘날 IT 강국이 되기까지 문민정부의 공(功)이 컸다”며 “DJ의 국민의 정부에 앞서 초고속 광케이블을 전국에 설치하고, 핸드폰을 보급한 것도 YS의 문민정부에서 시작한 것”이라 말했다.

 

2008년, 정치권에서 처음 떠오른 ‘악플’


ⓒ연합뉴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그가 무너진 건 악플 때문이었다.ⓒ연합뉴스

양 김이 이뤄낸 정보화 시대는 수많은 국민들의 ‘밥줄’을 낳았다. 사회는 점차 빨라졌고, 더 편리해졌다. 세계적인 수준의 인터넷도 발달했다. 그러나 인터넷 윤리 의식이 정착되지 않아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시대였다. 정치권이 악플의 문제점을 인식한 건 2008년 10월의 일이었다.

국민 배우였던 최진실은 작품을 통해 국민들을 웃고 울렸다. 이른바 최진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그가 무너진 건 악플 때문이었다. 근거 없는 의혹들을 담은 한 줄의 문장들이 모여 확대 재생산됐고, 부풀려진 여론은 그의 삶을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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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최진실법과 관련해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통과 의지를 밝혔다.ⓒ연합뉴스

같은 해 11월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처음으로 악플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사이버 모욕죄’가 논의됐다.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은 정치권에서도 치열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승수는 “사이버 공간은 비대면적이고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일상 공간과는 다르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 선상에서 이뤄지는 명예훼손은 행위의 피해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광범위하며, 또 사후에 복구가 아주 어렵다”며 사이버 모독죄에 찬성했다.

반면 당시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사이버 공간은 우리 일상 생활이 옮겨간 것”이라며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때 우리가 IT 국가로서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현실 공간에서 명예 훼손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공간에서 특별히 달리 처벌할 사항은 아니라고 봤다.

아래는 2008년 11월 5일 278회 본회의록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 이용경 의원: “본 의원은 우리나라의 주요 포털 사이트가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난번 자살 사건 때 각종 악플이 실제로 돌아다닌 내용을 검토해 보면 실명제를 하고 있는 사이트나 시행하지 않은 사이트나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본 의원은 사이버 모욕죄 도입은 빈대를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우는 과잉 반응이고, 혹여나 인터넷의 잠재력을 반감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총리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국무총리 한승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이 의원님과 견해를 달리 합니다. 인터넷 선상에서 이뤄지는 명예훼손은 행위의 피해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또 광범위합니다. 또 사후에 복구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대응 방안도 달라져야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아시다시피 (악플이) 굉장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모욕죄 신설에 대해서는 저희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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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이었던 민주당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위선이라며 사이버 모독제 제정에 반대했다.ⓒ연합뉴스

그해 국회에서는 ‘최진실법’의 이름으로 사이버 모욕죄가 발의됐다. 그러나 결국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야당이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는 법원이 현실 공간의 형법상 모욕죄를 사이버로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2019년, 수많은 악플방지법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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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또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악플러들이 쓴 글들에 무너졌다.ⓒ연합뉴스

입법 내용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했던 사이버 모욕죄. 그 이후 8년 동안 여러 별들은 이름 모를 누군가가 쓴 글들에 스러져갔다. 악플러들을 고소하며 당당히 맞서는 이들도 있었으나, 처벌만으로 이들이 당한 고통과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진 못했다.

그러다 2019년, 또 하나의 별이 졌다. 가수 설리 또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악플러들이 쓴 글들에 무너졌다.

포털은 폐해를 막기 위해 개편을 시작했다. 인물 관련 검색어를 폐지하고, 연예 뉴스 댓글창도 삭제했다. 이어 실검 서비스도 폐지됐다. 예전부터 부작용을 갖고 있었던 서비스가 그의 죽음 이후 본격적인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에 적어도 포털 사이트에서만큼은 악플과 근거 없는 의혹 확산을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치권의 노력은 미약했다. 이슈에 올라탄 수많은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입법까지 책임진 정치인은 그 누구도 없었다. 결국 2019년에 통과된 다양한 이름의 ‘설리법’은 임기만료폐기, 즉 국회 임기 종료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당시 ‘동물 국회’와 ‘식물 국회’를 반복했던 제20대 국회는 무의미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법안에는 유의미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이용자의 아이디 및 프로토콜 주소를 함께 표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같은 당 김재원 의원은 명예 훼손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은 불법 정보에 혐오 표현을 포함하고, 이용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이를 삭제하는, ‘혐오 표현 유통 방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 모든 법안들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22년, 해외 SNS로 옮겨간 악플러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우리는 14년 전 최진실법과 3년 전 설리법이 발의되던 그때 이후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했다. 여전히 악플에 시달리는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양상이다. 배구 선수 김인혁이나 유튜버이자 스위치 스트리머였던 잼미 등은 해외 SNS를 통해 발생했다는 차이가 있다. 연예인들이 국내 포털 사이트의 게시물이나 기사 댓글을 통해 고통을 받았다면,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스포츠 선수나 유튜버 등 유명인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트위치와 같은 해외 SNS를 통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껏 발의돼온 법안들은 국내 포털 사이트에 한정돼있기 때문에, 폐기된 법안들이 통과되더라도 사실상 해외 SNS에 남긴 댓글들까지 제한할 수 없다. 그나마 지난 국회에서 정보통신망법을 발의했던 박대출 의원은 21대 국회가 열린 뒤 ‘인터넷 준실명제’ 법안을 재발의했다.

박 의원은 “익명을 내세운 숨은 폭력이자 간접살인인 악성댓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댓글 작성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터넷 준실명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이 법안은 20대 국회 때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최근에도 악성댓글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실정으로 개정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법안은 2년 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처리되지 못한 상태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 2년이지만, 악플 자살을 막으려는 그 어떤 법안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 우울감 등 주변에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정신건강상담전화 △한국생명의전화 △자살예방핫라인 △희망의전화 등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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