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국내 산업계, 반미·반중 정서 확산에 위기감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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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국내 산업계, 반미·반중 정서 확산에 위기감 고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2.18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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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부장 무기화' vs. '중국 '원자재 무기화'
대한민국, 혼자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나라
차기정부, 수급망 다극화-양국 협력증진 병행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인 동북아의 조그만 나라 한국이 주변국과 척을 지고, 미국과 거리를 두면 혼자서 살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어요. 올림픽으로 국민들이 공분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정치권에서 왜 이렇게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도 표면적으론 원팀이고, 진주만을 폭격하고 핵을 쏜 미국과 일본도 전쟁이 끝나니까 서로 손을 잡잖아요.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 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차기 대선 무대에 오른 거대양당 대통령 후보자들의 외교·안보관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진영논리가 바탕이 된 반미(反미국) 또는 반중(反중국) 정서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김치, 한복 등 대한민국 고유 문화에 대한 중국의 동북공정과 동계올림픽 판정 후폭풍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인데요. 또한 이 같은 정서를 다시 여야 지지세력들이 선거 운동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반미·반중 여론이 맹목적·극단적으로 치닫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는 우려가 깊습니다. 속도 탄다고 합니다. 선거가 코앞인 민감한 시기인지라 정치권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자칫 불매운동 등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다소 궤가 다르고 올림픽 전이긴 합니다만 실제 사례도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이마트 등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야기한 '멸공'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또한 정 부회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담긴 기사를 멸공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게시했다가 하루 만에 삭제하자 불매운동이 반대진영으로까지 번지기도 했습니다. 속된 말로 중국에 '쫄았냐'는 이유에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정 부회장이 '쫄아서' 시진핑 사진을 지운 게 과연 놀림거리가 될까요. 오히려 무작정 반미 또는 반중을 외치는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빠른(하루) 결단을 내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소개한 국내 산업계의 한 관계자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산업구조상 미국과 중국 없인 생존이 불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생존 가능성조차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양국이 최근 '산업 무기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서죠.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경제의 근간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기술력이 부족하고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은 생산을 맡고, 임금은 비싸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선진국은 첨단 기술과 지식 서비스를 수출하는 국제 분업 관계에 대한 조정이 시작된 겁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디지털전환이 빠르게 이뤄져 무인 자동화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전염병 창궐로 각 국가가 내수 경기 진작에 혈안이 되면서 생산기지 귀환을 추진하는, 이른바 '리쇼어링' 현상이 발생해서죠. 공정 자동화로 굳이 개도국 저임금 노동력을 쓸 필요가 없게 된 데다, 물류비용도 아낄 수 있고, 취업난 해소 등으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도 있으니 생산기지를 국내로 옮기는 겁니다. 하지만 리쇼어링은 단순 생산기지 귀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귀국 일성처럼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대응하고자 산업 생태계 정책을 재편하고, 동맹국 중심으로 새로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플랫폼 경제를 구축했습니다. 미국의 자체 역량과 각 동맹국의 핵심 산업·기술을 활용해 중국에 취약한 산업 생태계를 정비하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대만, 일본 등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동북아 국가가 그 소부장 플랫폼 경제의 축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 배터리 등을 생산해 미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자국 생산기지 귀환은 물론, 동맹국의 제조시설까지 자신들의 땅에 세우라고 압박한 겁니다. 중국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르니 국내 생산 기반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삼성, SK, LG 등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이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대규모 투자와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대만, 일본, 유럽 등 다른 우호국에게 우리의 역할을 줄 테니까요. 우리나라 입장에선 미국의 대(對)중국 '소부장 무기화' 전략에 동참하는 동시에 미국한테 목을 내준 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반도체가 없으면 국가경제 자체가 무너지는 반면, 미국의 전체 수입 중 반도체는 3% 수준에 불과하니까요. 우리나라의 처지는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핵심 소부장 산업의 전략 무기화 추세가 강화되고,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의 중국 차단 고립화 정책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그 틈바구니 한복판에 있는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 pixabay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그 틈바구니 한복판에 있는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 pixabay

미국이 소부장 무기화에 나선 이유는 중국의 '원자재 무기화' 때문인데요.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주요 소재·부품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선진국 의존도를 크게 줄였습니다. 중국의 전체 수입 중 소재·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반 60% 이상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0년 기준으로는 30%대까지 줄었습니다. 일부 첨단 제품을 제외한 소재와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으니 원자재를 굳이 해외에 수출할 필요가 없겠죠. 오히려 원자재 수입량까지 급격히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미중 무역분쟁과 팬데믹은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 중국의 원자재 무기화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난 16일 국제금융센터가 내놓은 '글로벌 원자재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중국의 철광석, 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 수입 규모는 40% 이상 늘었습니다. 글로벌 원자재 소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50%를 넘었고요. 원자재 공급자로서의 지위도 굳건해졌습니다. 마그네슘, 텅스텐 등 제조업에 활용되는 주요 30개 광물 중 66%에 해당하는 품목에서 중국이 최대 공급자로 떠오른 겁니다. 만성적 에너지 부족 현상 속에 '일대일로'를 앞세워 아프리카, 남미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해외자원을 대거 확보한 데다, 미중 무역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이 첨단산업 자립 정책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미국의 소부장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소재·부품 국산화에 투입될 원자재를 확보하는 행보인 셈이죠.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 같은 행보가 △자원 무기화 △세계적 자원민족주의 확산 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내다봅니다. 국제금융센터 측은 "중국이 기업 대형화,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특히 열세인 반도체 대응을 위해 희토류 등 여타 광물공급을 제한하면서 가격결정력도 높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팬데믹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과거처럼 자원 국수주의, 진영 갈등을 초래하는 현상이 뚜렷해져 향후 자원 관련 분쟁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전이되는 현상이 빈번해질 소지가 있다"며 "중국이 자원 무기화를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각국의 자원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불안 요인으로 부각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같은 시나리오대로면 얼마 전 발생한 요소수 대란은 빙산의 일각인 셈입니다. 일례로 중국이 단열재와 같이 건축물에 반드시 쓰이는 자재로 무기화를 시도한다면 우리나라 집값은 또다시 폭등할 수밖에 없겠죠.  

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온갖 전략과 술수를 펼치고 있고, 우리는 그 틈바구니 한복판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좁은 국토와 분단국이라는 한계로 인해 양국의 소부장 무기화, 원자재 무기화 등에 대놓고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그런데 차기 대선 후보들이 반미 또는 반중에 목소리를 높인다는 건 정말 앞선 관계자의 말대로 '위험한 플레이' 그 자체가 아닐까요.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양당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더 늦기 전에 목소리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머리 바로 위에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어차피 다음 정부에서는 소부장·자재 수급망 다각화를 최대한 꾀해 미중 의존도를 줄여 나가는 동시에 양국과 외교·안보·경제협력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반드시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진 말이죠.

아울러 화가 나고 열불이 터지는 건 백번 천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친미·반중이나 친중·반미 성향이라는 이유로, 오로지 진영논리 때문에 반미 또는 반중을 외치는 건 분명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선이 끝나도 조만간 지방선거가 또 열리는데, 맹목적·극단적 반미·반중 여론이 상반기 내내 이어질까 국내 산업계의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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