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㉘] 고향의 맛기행(2)-지리산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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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㉘] 고향의 맛기행(2)-지리산이 주는 선물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2.20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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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 수액에 녹차, 매실까지
풍성한 자연의 선물 한상 가득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계절이 어쩜 이토록 변덕스러울까. 봄이 고개 넘어오는 듯해 버선발로 달려가다 멈춰 섰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니 봄이 어디론가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머잖아 봄의 전성시대가 오리라.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봄이 가까워지면 유독 그리운 그대, 고향의 봄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섬진강이 온갖 생명을 키워낼 동안 지리산도 동면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며 꿈틀거린다.

봄, 지리산의 대축제 시작

3월, 풍경이 있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주변엔 봄의 전령사 산수유 개화를 시작으로 매화, 벚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고향 마을 어귀 여기저기 가장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 때로 아름다움의 극치다. (일상 스케치, 섬진강이 부른다 편 참조)

고로쇠 수액을 뽑고 있다. 2월 하순에서 경칩이 있는 3월 상순 사이에 주로 채취한다. ⓒ연합뉴스
고로쇠 수액을 뽑고 있다. 2월 하순에서 경칩이 있는 3월 상순 사이에 주로 채취한다. ⓒ연합뉴스

자연이 황량한 겨울 옷을 벗고 산들산들 봄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할 즈음, 고향 뒷산 지리산에선 고로쇠 수액 뽑는 일이 진행된다.

'뼈에 이로운 물' 골리수(骨利水)

2월 하순에서 경칩이 있는 3월 상순 사이에 주로 채취하던 고로쇠 수액을 최근 들어 1월부터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 온난화 속에 이상기후가 이어지는 것이 핵심 요인이다.

'뼈에 이로운 물'로 골리수(骨利水)라고도 불리는 고로쇠 수액은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리실 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각종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여 관절염, 골다공증, 고혈압 개선에 효과가 있다.

단맛과 계란 향이 함께 어우러져 입안에 맴도는 고로쇠 수액,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식수로 마시는 방법과 요리 시 물 대신 사용한다. 밥 지을 때 넣으면 감칠맛을 살려 한층 부드러운 맛을 낸다.

봄 방학이 되면 고로쇠 수액 먹으러 내려 오라는 엄마 부름에 수차례 내려갔다. 뜨거운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커다란 수통에 담긴 수액을 하루 종일 들이키느라 고역이었지만. 약효를 볼려면 따뜻한 온돌방이나 찜질방 등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켜켜이 고랑마다 조성된 지리산 차밭. 농경지가 적은 지리산 기슭의 급경사에 다원이 형성돼 있어 우수한 경관도 자랑거리다. ⓒ연합뉴스
켜켜이 고랑마다 조성된 지리산 차밭. 농경지가 적은 지리산 기슭의 급경사에 다원이 형성돼 있어 우수한 경관도 자랑거리다. ⓒ연합뉴스

'왕의 녹차'

이어 섬진강변과 쌍계사 십리벚꽃길, 지리산 자락 벚꽃이 온통 만개하여 꽃비를 날릴 무렵, 지리산에선 녹차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녹차의 계절인 4월 초부터 하동 농가들의 야생 햇차 수확이 한창이다. 하동은 전남 보성군과 쌍벽을 이루는 녹차의 명산지로, 일제강점기 때 차나무를 심은 보성과는 차의 품종이 다르다.

하동 야생차 군락은 신라 흥덕왕 3년(828) 대렴 공(公)이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차 씨앗을 왕명에 따라 지리산에 심으면서 형성돼, 이후 1천 200여 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하동 야생차는 수확 시기에 따라 24 절기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음 4월 4일) 이전에 수확하는 차 ‘명전(明前)’,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4월 20일) 이전에 수확하는 ‘우전(雨前)’,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4월 5일) 이전에 따는 ‘세작(細雀)’, 5월 20일 이전에 생산하는 ‘중작(中雀)’을 거쳐 이후 6월까지 따는 ‘대작(大雀)’으로 불린다.

전국 차 생산량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하동 녹차는 다른 지역 녹차보다 성분은 물론이고 맛과 품질이 우수해 삼국시대부터 왕에게 진상된 '왕의 녹차'로 널리 알려졌다. 2017년 세계 중요 농업유산에 등재된 이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2년 5월에 열리는 하동 세계 차(茶) 엑스포와 맞물려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에 약 127t의 녹차가 수출될 전망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중이다.

야생차밭으로 조성된 화개·악양면 일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에 인접해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 시기에 밤낮의 기온 차가 커 차나무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었다. 또 이곳은 점토 구성비가 낮은 마사질 양토로 이뤄져 차나무 생육에 이롭고 고품질 녹차 생산에 적합하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덖음’ 기술을 활용해 고급 녹차를 생산한다.

녹차 그리고 작설차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작설차라며 하루 종일 거실 난로 위에 얹힌 주전자에 끓여 수시로 마셨다. 그러던 작설차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거의 사라지고 녹차로 통용되고 있다.

이 두 개의 차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작설차'와 '녹차', 차나무의 종류는 같다.

엄밀히 말하면 우선 녹차(綠茶)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을 사용해서 만든 차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작설차(雀舌茶)는 차나무의 어린잎이 연 자색을 띠고 참새 혀끝만큼 짧게 자랐을 때의 찻잎으로 만든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어린 잎으로 우려낸 녹차다. 작설차는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차나무의 새싹을 따 만든 것으로, 찻잎의 크기와 모양에 따른 차의 분류 방법이다.

어린 잎은 카테킨 함량이 적고 단맛이 나기 때문에 채취 시기가 빠를수록 품질이 좋고 고급차로 여긴다. 작설차의 효능은 숙취를 줄이고 물질대사를 촉진시켜주며, 관상동맥 경화증 당뇨병 고혈압 이질 충치 등을 예방하고, 빈혈을 치료하는 효과가 크다. 또 각성, 이뇨작용, 해독과 소염작용, 살균작용 등에 효과가 있다.

초록빛 열매, 매실

청량한 내음과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매실. ⓒ연합뉴스
청량한 내음과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매실. ⓒ연합뉴스

3월 고귀한 자태와 향긋한 매화가 지고 나면 머잖아 매화가 진 자리에 매실이 달리기 시작한다. 청매실의 수확 적기는 꽃이 핀 뒤 80~90일쯤, 홍매실의 경우 꽃이 핀 뒤 110~120일쯤이라고 한다. 대개 5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다 자란 매화를 수확한다.

지리산 자락 청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매실은 맛이 시고 독이 없으며, 하동 매실은 청매실이라 하여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오는 것으로 열매는 작지만 향이 아주 강하다.

전국 가정마다 6월이면 매실 진액을 기본으로 담아 요리마다 천연 양념으로 쓴다. 하동 고향 집에선 매실주를 매년 담가 가정용 술로 손님 접대 시 이용했다.

화개장터와 지리산 산물들

과거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 등의 각종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조기 들이 올라오곤 하여, 꽤 성한 장이 서던 곳이  화개장터다. 

외지 사람들이 하동은 몰라도 화개장터는 안다고 할 정도인 영호남이 교차하는 곳이라 음식도 풍부하다. 섬진강에서 나는 은어, 참게, 재첩 외에 지리산 각종 산나물로 넘쳐난다.

이와 함께 하동을 대표하는 과일 중 하나인 하동배는 1920년대부터 하동군 화심리 신지 지역의 섬진강 변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지금은 하동읍, 화개면, 악양면 등으로 확산되어 재배되고 있다.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의 사질양토에서 생산되어 무공해로 당도가 높고, 육질이 연하며 즙이 많다. 향긋한 맛을 인증받아 일본 등 해외로도 널리 수출하고 있으며, 정부 품질 인증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충분한 일조량으로 생산되는 악양 대봉감은 감칠맛과 색깔, 모양이 아름다워 예부터 이름난 하동의 농특산물로 비타민 A, B, C가 풍부하다.

그 외, 하동엔 섬진강 하구를 중심으로 김 양식과 같은 어업도 성행했는데, 광양제철소 및 관련 산업단지 조성으로 물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면서 전멸하였다고 한다.

풍족했던 하동 김의 흔적이 사라지고 김부각의 추억만 남았다. 가을이면 할머니는 찹쌀풀을 잔뜩 쑤어 평상 가득 펼친 김 위에 바르고 통깨를 뿌린 후 꾸들꾸들 말렸다. 다 마른 김부각을 잘라 튀기면 좋은 술안주이자 간식거리가 된다.

이렇듯 섬진강과 지리산이 어우러져 온갖 생명을 키워내니, 고향 산천이 차린 밥상은 일 년 내내 넘치게 풍요로웠다. 그저 당연시한 성장 환경이라 여겼던 고향의 자연과 먹거리들, 그때는 몰랐으나 선물이었다. 지금은 진정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온갖 추억의 맛이 입가를 스친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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