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기업인 대권도전史…정주영의 꿈, 누가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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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 보기] 기업인 대권도전史…정주영의 꿈, 누가 받을까?
  • 방글 기자
  • 승인 2022.03.06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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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하고 skinship 좋은 정용진 보는 국힘
정주영에서 정용진까지…최고는 ‘경제대통령’?
기업인 대망론에 다시보는 1992 정주영 대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방글 기자]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재벌 총수, 그 옛 이야기를 돌아본다. ⓒ시사오늘 김유종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재벌 총수, 그 옛 이야기를 돌아본다. ⓒ시사오늘 김유종

#1970년생 #경제전문가 #존재감 #파괴력 #소통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설명하는 말이다. 정 부회장은 SNS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젊은 경제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77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다. 

오는 9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인물이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면서 차기, 혹은 차차기 대선주자로 ‘정용진은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정치권 주변을 둘러싸고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런 아이디어에 부응하듯 정치적 발언으로 ‘가능성’을 드러냈다. #멸공.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일 뒤, 이마트를 방문해 장보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다.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각에서는 장 본 목록의 앞글자를 따면 #달파멸공 이라는 뜻이 된다고 주장했다. 달파는 '문재인 타파'라는 의미고, 멸공은 공산주의를 멸한다는 뜻이다. 결국 윤 후보가 정용진 발 멸공에 공감하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재계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정용진의 멸공 논란은 총수들의 정치적 발언 금기를 깬 사례”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재계 수장을 탐내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심지어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완주했던 인물도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재벌 총수, 그 옛 이야기를 돌아본다.


‘대통령의 꿈’ 정주영의 도전

“이봐, 해봤어?” 세기의 도전자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실패한 한 가지가 있다. 그 마지막 도전 하나가 ‘잘 나가던’, ‘명실상부 재계1위’ 현대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이봐, 해봤어?” 그에게는 정치도 그랬다. 일단 저지르고 봤다. 무엇보다 먼저 출마해 당선된 똑똑한 아들 정몽준이 있었고, 정치에 꼭 필요하다는 3가지 중 하나인 돈은 넘치도록 있었다.

전국에 현대와 관련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 세어 봐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정 회장은 사실 현대를 여섯째아들인 정몽준에게 넘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정 회장에겐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콤플렉스를 정몽준이 서울대학교에 가면서 해소해줬다. 31세 어린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장 자리에 앉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 뜻이 있다는 아들의 말에 그 길을 응원했다. 자신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1988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8년 3월 12일자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3대 국회 노크하는 재계 인사들

(중략) 우선 재벌2세의 정계노크는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6남인 몽준 씨(37·현대중공업 회장)의 무소속 출마가 눈길을 끈다. 

정 씨는 거주인구의 80%가 현대와 관련이 있다는 울산동구에서의 출마결심을 이미 굳혔다. 본인 스스로가 정계진출을 원하고 있고, 정주영 씨도 아들 중 정치감각이 뛰어난 몽준 씨의 정계입문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12대 때에도 출마를 적극 검토했으나, 정주영 회장의 셋째동생인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과 사돈인 노신영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 나서서 출마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민정당에서는 정 씨의 출마와 관련, 정 씨의 민정당 공천도 예의검토했으나, 민정당과 재벌의 유착으로 상징 지어질까봐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일보> 1988.03.12.

그런데 첫 번째 도전부터 뱃지를 달았다. 

6남 정계진출 꿈이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6남 정몽준 씨(37)가 4.26총선에서 당선, 정계 진출 꿈을 이루자 크게 흐뭇해 했다고. 

정 회장은 밤을 새워가며 울산에서의 보고를 받고 TV 개표결과를 지켜보았는데 27일 상오 몽준 씨의 당선이 확정되자 축하 전화를 받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

더욱이 정몽준 회장은 내년에 국제정치에 관련된 논문으로 일본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으로 있어 정 회장이 걸었던 두 가지 기대를 모두 이룩해낸 셈. 

정몽준 회장은 당선 후 “좀 더 멋있고 수준 있는 정치를 해보겠다”며 전공을 살려 우리나라의 국제무역 확대에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피력.

-<매일경제> 1988.04.28.

정 회장은 여기서 기회를 봤다. 사실 그가 정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품은 건 아들 정몽준이 정치에 발을 들인 것보다 먼저였다. 81년 2월 28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산업합리화 정책 때였다. 정 회장은 그 때, 경제가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 그가 한 인터뷰 중 일부를 가져왔다. 1992년 1월 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내용 중 일부다. 

-정치 참여 동기는 무엇이며 구상은 언제부터 했는가. 

“지난 80년 산업 통·폐합 당시 기업인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기업을 제대로 하려면 언젠가는 정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정주영은 정치권에 꾸준히,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던 인물 중 한명이다.

그러다 한번은 정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이 발생한다. 보복성 세금 징수에 불복하며 전쟁을 선언한 것.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11월 19일자 한겨레.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현대 추징세금 거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8일 국세청의 1천3백61억 원의 추징과 관련해 “돈을 내지 않고 법에 따른 불복절차를 밟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본사 12층 대회의실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국세청이 관례나 법규를 뛰어넘어 현대에만 처음으로 무리하게 과세했다”며 “앞으로 법원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중략)또 정 회장은 “현대는 87년 4월 정부의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 상호 출자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식을 불가피하게 처분한 것”이라며 “세금을 의도적으로 탈세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며, 상속‧증여와 관련해 지금까지 2백60여억원의 세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금 불납이 불복의 의미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해석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겨레> 1991.11.19.

물론 이 전쟁은 3일만에 현대의 ‘항복선언’으로 마무리된다. 

현대 “추징세 내겠다”

국세청의 과세조치에 정면으로 반발해온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세금 납부 거부를 공식 선언한 지 사흘만에 방침을 급선회, 1천3백61억 원의 추징세액 중 9백12억 원을 납부키로 했다. 

현대그룹은 원칙적으로 추징세금을 가능한한 모두 납부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현대그룹 내의 자금동원 능력을 점검한 결과 동원가능한 액수가 9백억여원에 그치고 있다고 보고 우선 9백12억 원을 납기 내에 납부하고 나머지 4백49억 원은 징수유예를 국세청에 요청키로 했다. 

국세청은 이같은 현대 측의 방침에 대해 “징수유예 등은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 현대 파문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대 측은 △현대건설 법인세 2백16억 원 △정몽구 씨의 소득세 1백64억 원 △정몽규 씨의 소득세 69억 원 등 모두 4백49억 원대 대해서는 국세청에 징수유예를 신청하고 나머지 9백12억 원은 납기 내에 납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 측은 이 같은 결정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현대 측이 추징세금을 인정하고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보임에 따라 현대 측에 징수유예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방침을 변경, 세금 납부의 연기를 적극 검토키로 했다. 

-<매일경제> 1991.11.21.

하지만 패배한 이 전쟁이 향후 정주영이 창당한 국민당이 총선에서 31석을 차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한 달, 정주영의 신당 창당설이 돈다. 

1991년 12월 25일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12월 25일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돈만 갖고 정당되나”
정주영 씨 창당설 정치권 시각
정치불신 편승 ‘가능성’ 상존
YS 탈당 사태 땐 연대할지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신당 창당설은 정 씨 일가에 대한 세금 추징으로 증폭된 정부와 현대와의 갈등 관계, 여권의 대권 암투에 따른 유동적인 정치 상황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렸던 게 사실이다. 

(중략)즉 여권의 대권 문제와 관련, 김영삼 대표 측의 집단 탈당사태가 발생하면 그의 신당 창당 등 정계진출은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끈질긴 정치참여 시도는 한마디로 6공 정부에 대한 재벌들의 누적된 불만과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 씨는 정치권이 총체적인 불신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자신의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한다면 정치권에 자신의 교두보를 만드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일각에서는 정 씨가 당초 내각제개헌을 염두에 두고 14대 총선 출마를 고려했었으나 개헌이 어렵게 되자 일단 정당을 만들어 원내 교두보를 마련한 다음 14대 총선 이후의 상황을 보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이 불신을 받고 있다손 치더라도 “재벌이 권력까지 공유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적 시각 대문에 구체적인 실천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향신문> 1991.12.25

정주영이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정주영의 창당설이 자신의 대통령 선거를 위한 것보다는 YS와의 연합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경제인의 정계 진출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많았고, 가능성도 적다고 여겨졌다. 정치를 위해서는 돈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정치적 상징성, 지지계층이 필요했다. 또 일각에서는 정주영의 정계 진출은 현대 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모든 우려를 뒤로하고 정주영은 자신의 뜻을 펼친다. 1월 3일 그룹 경영과 결별을 선언하고 정치참여 의사를 밝힌 것. 

1월 10일에는 ‘통일국민당’을 창당한다. 그러면서 3월에 치러질 선거에서 50~60명의 후보자에게 돈을 대겠다며 ‘돈선거’를 예고했고, 이와 함께 그간 정치권에서 겪었던 각종 수모를 까발린다. 

그리고 이 노골적 불만들이 현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14대 총선을 성공으로 이끈다. 

“연 2회씩 정치자금 제공”
3공부터 2년 전까지 계속
정주영 씨 추석-연말에 20억~1백억
“총성-대통령 선거 출마 안할 것”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8일 “3공 이후 현 6공 정권에 이르기까지 추석과 연말 때 등 연 2차례씩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면서 “그러나 2년 전부터 현 정권과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정치자금 기탁을 중단해왔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날 오후 청운동 자택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이 말하고 “3공 때는 연 10억~40억 원, 5공에는 연 50억~60억 원씩, 6공에는 60억~100억 원씩을 직접 통치자에게 건네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현 정권 초기에는 추석과 연말에 각각 20억, 30억 원씩 주었으나 육감적으로 적은 것 같다고 판단, 액수를 올려 모두 30억 원씩 주어오다가, 한 차례 50억 원을 낸 뒤 2년 전 맨 마지막에는 100억 원을 회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 자금은 내 뜻대로 불우이웃돕기에 쓰여졌을 것으로 믿는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자신의 14대 총선, 또는 대선출마설과 관련, “현재까지 출마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 뒤 10일 발기인 대회를 가질 예정인 신당은 총선에 대비, 70~80여 지역구에 공천을 해서 원내 교섭단체 구성 의석수(20석)이상을 당선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992.01.09.

그리고 그해 3월 총선에서 통일국민당은 31석을 확보한다. 이 때 정주영-정몽준 부자는 나란히 의원직을 얻어낸다. 

‘부자의원’1호…정경유착 종식은 미지수

국민당 정주영 대표와 정몽준 의원은 ‘부자 현역의원’ 제1호를 기록. 의원 아들이 대를 이은 경우는 많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의정단상에 오르기는 헌정사상 정 부자가 처음.

정 대표는 국민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초선 의원이 되었으며 정 의원은 울산동구에서 13대에 이어 연속 당선, 재선 의원으로 부상. 정 의원은 정 대표의 8남 1녀 중 6남.

-<조선일보> 1992.03.26.

정주영은 기세가 등등해졌고, 국회의원이 당선 되자마자 대통령 출마설이 나돈다. 그리고 4월 3일, 실제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다. 

92년도는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다. 정주영과 김영삼은 소문난 절친이었다. 막역한 친구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게 된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주영이 결국은 자신을 도울거라고 믿었다. 두 사람 사이 은밀한 거래가 오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민자당에서 김영삼에 공천을 주지 않으면 국민당에 합류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는 딜이 있었다는 소문이었다. 김영삼은 정주영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까지도 친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YS-박정희 회동③]“정치, 정직해야 한다”…김영삼 정치철학

이는 YS 정치스타일과 관련 있다. YS는 일단 약속하면 끝까지 믿는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와도 이를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스타일이다.
한 예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만들어 대선출마 선언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YS는 ‘정주영 회장이 나를 돕기 위해 국민당을 만들었고, 내가 민자당 대선후보가 됐으니까 조만간 후보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2011년 <시사오늘>이 다룬 기획 ‘민산되짚기’인터뷰에 나선 홍인길 전 의원은 YS의 낙천적인 성격을 그대로 증언했다.

“YS와 정주영 회장과의 친분이 깊었습니다. 아마도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민정계가 민자당 대선후보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국민당 대선후보로 당신(YS)을 영입할 생각이다’고 전한 것 같았어요. 국민당이 14대 총선서 돌풍을 이끌어내며 30석을 얻었잖아요. 그리고 바로 YS가 민자당 대선후보가 됐고요. 그러면서 정주영이 국민당 후보로 대선에 나온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그런데도 YS는 끝까지 ‘정주영 회장은 대선 안 나온다’고 하는 겁니다. YS, 참 순진합니다.”

-<시사오늘> 2012.01.18.

하지만 정주영은 그런 YS에 절교를 선언한다. 거침없는 언어와 함께.

“친분 끝났다” 절교 선언

정주영 국민당 대표는 23일 불쑥 기자실을 방문, “나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저질스럽고 치사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김영삼 민자당 대표를 인신 공격.

정 대표는 “김 대표가 지난 20일 비서를 통해 ‘비밀리에 만나 식사나 하자’고 먼저 제의해놓고 이를 고의로 언론에 유포시켰다”고 공개하며 “이는 내가 자기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악성 소문을 퍼뜨려 표를 더 얻어보겠따는 심사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격앙.

정 대표는 “정치는 정치고 친구는 친구인데 친구를 정치에 악용하고 있다”며 구이경지(오래 사귈수록 존경한다)하지 않는 김 대표와의 친분 관계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절교 선언. 

-<경향신문> 1992.05.24.

결국 정주영은 ‘단일화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하고 완주한다. 

결과는 김영삼의 승리.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파국으로 치닫은 후였다. 

김영삼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정주영의 출마로 표를 뺏겼다. 당시 “주영 찍으면 대중 된다”는 이야기가 파다할 때였다. 

정주영의 도피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YS의 되치기는 곧바로 시작됐다. 

△현대중공업 비자금 433억 원 횡령 △현대그룹 총수라는 특수관계를 이용한 임직원들의 선거운동원 △한국은행발권설 및 당시 김영삼 후보의 조총련관련설 발언 △현대중공업 등 소유주식의 불법주식 매각…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3년여 가량 이어진다. 

그러다 1995년 김영삼이 광복절특사로 정주영을 특별사면·복권 시키면서 관계가 회복된다. 

광복절 특사 이후 김영삼과 정주영은 공식 회동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제는 딴생각 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전념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치에 꿈을 품지 말고, 경제를 신경 써달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정주영 회장 역시 현대그룹을 발판으로 대권 장악을 시도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생은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의 꿈을 놓고 경제 분야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 하지만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나눈 것으로 알려진 대화에서 그가 얼마나 대통령을 꿈꿨는지 알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 “아직도 대통령이 하고 싶으냐”
정주영 회장 “그렇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당시 그의 나이 8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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