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세계 대통령의 탄핵·사임 사유…“광기, 권력투쟁, 성추문, 도청, 무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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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 보기] 세계 대통령의 탄핵·사임 사유…“광기, 권력투쟁, 성추문, 도청, 무능”
  • 곽수연 기자
  • 승인 2022.03.07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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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무능과 정책실패로 해임된 에콰도르 대통령
권력 싸움에서 쫓겨난 이란 대통령, 프랑스로 망명
성(性)스캔들에 위증까지…11개 탄핵사유 美클린턴
부패 청산 외치던 브라질 대통령, 거짓말로 드러나
재선 위해 도청 동원…워터게이트로 사임한 美닉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곽수연 기자]

탄핵 또는 탄핵 직전까지 갔던 역대 대통령들 ⓒ시사오늘 김유종
탄핵 또는 탄핵 직전까지 갔던 역대 대통령들 ⓒ시사오늘 김유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주일째 지속되고 있다. 대(對) 러시아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서, 유럽연합·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극에 도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신(新) 냉전 구도가 뚜렷해지면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은 양대 진영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문가의 예견도 나오고 있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도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지표가 연일 발표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20일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지난 2년간 재정적자가 100조 원을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240조 원으로 불어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안보·경제가 절체절명 위기에 놓여있는 가운데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원해줄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국운이 결정된다. 이에 <시사오늘>은 유권자들이 혜안을 갖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과거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대통령 탄핵·사임 사유를 정리해봤다.

 

1. '정신적 무능' 탄핵 에콰도르 대통령…"기행·족벌정책·부패" 



1997년 2월 9일 에콰도르 의회는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을 '정신적 무능'을 이유로 해임했다. 앞서 의회는 지난 7일 부카람 대통령의 온갖 기행과 정책 실패를 이유로 탄핵했다.

실제로 '엘 로코(광인)'라는 별명을 가진 부카람은 6개월 전 대선에서 우루과이 록밴드를 데리고 나서 춤과 노래로 선거운동을 펼쳐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집권 뒤에도 <사랑에 빠진 광인>이라는 음반을 내고, 전라에 가까운 무희들과 춤을 추고 머리에 물을 끼얹는 해프닝을 벌이며 음반 판매에 나서는 기행을 보였다.

부카람 대통령은 남편의 성기를 잘라 미국에서 화제가 됐던 자국 출신 로리나 보비트를 대통령궁으로 초청해 "자신의 원칙과 가치를 지킬 줄 아는 여인"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정적들에게는 깡패, 바보 등의 극한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의 정책에 있다. '빈자들의 챔피언'이라고 불리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급변했다. 부카람 대통령은 공기업의 민영화, 정부 보조금 삭감, 해고를 불가능하게 했던 고용법의 폐지 등으로 서민들에 대한 정부의 보호장치를 거둬버렸다. 또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전화·가스·기름·전기요금 등을 거의 300%나 올려 서민들의 생활을 파탄시켰다. 여기에 동생을 각료로 임명함으로써 족벌주의와 부정부패까지 자행했다.

 

에콰도르 부카람 대통령 해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에콰도르 부카람 대통령 해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남미의 빈국 에콰도르가 잘못 뽑은 대통령 때문에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에콰도르 의회는 9일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을 해임하고, 로살리아 아르테아가 부통령을 임시 대통령에 임명했다. 그의 해임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2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대중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8일 국방장관이 사임을 발표하면서 지난 79년 문민정부에 권력을 넘겼던 군부가 다시 정치에 개입할 태세를 보인 것이 부카람의 사퇴를 불러온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카람은 결국 내실 있는 정치논리와 정책의지가 없이 인기몰이식 정치만 추구하려 한 지도자의 종말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1997.02.10

 

2. 온건파 VS 강경파의 정치 권력 싸움 끝 포위된 대통령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후 첫 대통령을 지낸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종교자의 아들로 태어난 바니사드르는 반(反)정부활동을 추진해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196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는 이슬람혁명의 아버지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끌던 저항조직에 참가했으며 1979년 2월 호메이니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바니사드르는 재무장관과 외무장관 대행을 거쳐 1980년 1월 실시된 대선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중도파에 가까웠던 그는 강경파 성직자들이 장악한 의회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그 결과 그는 호메이니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1981년 6월 '정치적 무능함'을 이유로 탄핵당했다.

그해 7월 그는 반(反)정부 단체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망명했고, 이란의 '신정일치'를 비판해왔다.

 

사드르 대통령 사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사드르 대통령 사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옹은 2500년간의 이란 역사상 최초 민선대통령으로서 의회의 탄핵결정을 받은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대통령을 해임하고 이와 동시에 바니사드르 대통령이 과거의 죄를 깨우치고 회교혁명의 품안으로 복귀할 경우 그를 사면할 것임을 시사했다." <경향신문> 1981.06.23

 

3. 성추문, 위증, 사법방해 등 11가지 혐의로 탄핵 위기에 놓였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전 백악관 인턴 여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고, 이를 조사하는 폴라존스 성희롱 사건 관련 변호사들에게 거짓 증언을 하도록 종용한 혐의로 탄핵 직전까지 추락했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면한 바 있다

대통령의 성추문을 조사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조사보고서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은 최대 정치적 위기를 직면했다. 445쪽의 보고서는 의회 웹사이트 등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게 될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열람이 가능하다. 스타검사의 보고서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간의 12차례 성관계에 대한 상세한 진술이 담겨있어서, 클린턴 대통령의 권위와 도덕성을 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또한, 보고서는 탄핵사유로 △위증 △공무집행 방해 △증인 회유 △권력 남용 등 11가지를 꼽으며 탄핵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했다. 스타 검사는 클린턴이 지난달 17일 대국민 사과 발표전에 이뤄진 연방대배심 증언에서는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9년 2월 12월 상원 탄핵재판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1년 1개월이나 끌어온 탄핵재판은 불과 40분 만에 끝났다. 탄핵안의 의결정족수인 67표는 물론 단순 과반수인 51표도 얻지 못하자 대통령을 기소한 하원 공화당 소추팀 13명은 황급히 의사당을 빠져나갔다.

 

클린턴 탄핵재판 부결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클린턴 탄핵재판 부결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탄핵재판이 부결되면서 미 정가는 일단 평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백악관과 공화당 사이에 감정의 골이 크게 패었다. 공화당 톰 들레이 하원의원은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어떤 말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 역시 "공화당이 스탈린과 같은 독재를 저지르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동아일보> 1999.02.14

 

4. 부패청산과 족벌주의 타파하던 콜로르 대통령…수의계약 가담 등으로 부정축재 쌓아



브라질 국민은 30년간의 군정을 종식시키고 민선 대통령을 뽑는 첫 선거에서 40대 페르난도 콜로르를 선택했다. 부패의 청산을 외쳐대는 콜로르가 민주주의의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로르가 공약한 부패청산과 족벌주의 타파는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남동생 페드루가 사업 확장에 따른 집안싸움 끝에 콜로르의 부정축재 사실을 폭로하면서다. 페드루는 콜로르 대통령이 정부의 각종 조달사업과 인허가 업무에 개입해 기업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검은돈을 챙기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한 페드루는 콜로르 대통령이 1989년 선거 당시 친구이자 재정참모였던 파리이스를 통해 이권사업을 벌여왔으며 재선운동 비용으로 이미 1억 달러를 끌어모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파리아스가 콜로르 대통령의 비호를 등에 없고 협박과 청탁수수 방법으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아 대통령과 나눴다는 것이다.

이에 브라질 의회 산하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콜로르 대통령은 각종 상납과 수의계약 등 권력형 부정에 가담해 약 650만 달러의 부정축재를 챙겼다는 것이 드러났다.  

 

부정축재 콜로르 대통령 규탄 시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부정축재 콜로르 대통령 규탄 시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당시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만 15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콜로르 정부의 장례를 나타내는 관을 세우고 검은 손수건을 흔들며 '콜로르 축출'을 외쳤다. 아울러 1992년 9월 29일 콜로르 대통령은 브라질 하원에서는 찬성 441, 반대 38의 압도적인 표차로 탄핵 소추됐다. 이후 12월 29일 상원에서 콜로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리가 시작되자 대통령은 몇 분 후 사임했다. <조선일보> 1992.8.31

 

5.재선위해 비밀공작요원 시켜 도정창지 동원한 닉슨 대통령…적발돼 사임


1972년 6월 17일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소가 위치해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으로 남성 5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닉슨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반으로 상대 정당인 민주당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초기 경찰이 조사를 했던 '워터 게이트' 사건에 FBI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마크 펠트 FBI 부국장은 백악관이 사건을 은폐하지 못하도록 정부 고위직만 알 수 있는 정보를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에게 넘겼다. 마크 펠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닉슨 대통령 측근인 하워드 헌트가 연루돼있는 것을 밥 우드워드에게 확인시켜줬다. 이에 우드워드는 동료 칼 번스타인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과 백악관의 비리를 보도했다.

두 기자의 폭로로 1973년 닉슨 대통령과 참모진의 불법 도청, 선거방해, 불법 정치자금, 탈세 등 범죄행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탄핵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려 자진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 사임 발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닉슨 대통령 사임 발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닉슨 대통령의 사임이 발표된 1974년 8월 9일 오전 10시 신문사 벽보판에는 길가던 시민들이 너나없이 발길을 멈췄다. 세계의 대통령 사임은 태평양 건너 멀리 서울의 시민들에게도 충격적인 듯 지게꾼도 샐러리맨차림의 신사도 한결같이 무더위도 잠시 잊고 속포판 앞에 잇달아 모여들었다. 이날 관청 회사 다방 거리마다 닉슨 사임이 큰 화제가 됐다. 시민들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임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이며 AFKN을 통해 닉슨의 육성을 듣기도 했다.
<동아일보> 1974.8.9

 

6.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


-<프레시안>의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 8가지' 기사 中-

첫째,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은 역사와 국민을 믿고 진심으로 국민을 존경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은 정치신조가 분명해야 한다.
넷째, 대통령은 철학과 역사의식,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는 통찰력과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대통령은 신념과 용기,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절대고독을 인내할 내적 힘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대통령은 민주적, 국제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일곱째, 대통령은 헌법과 헌법 제정의 철학 및 가치를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여덟째, 대통령은 이미 도래한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정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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