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표만 좇는 대선 후보들…‘부동산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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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표만 좇는 대선 후보들…‘부동산 희망고문’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3.08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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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겠다"면서 철학도 없고, 현실성도 없어
오히려 '후진국형 정치'로 '국민 잡을까' 우려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전국에 31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기본주택을 짓겠다. 1주택자 위주로 보유세를 완화하고,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겠다. 대출 규제 풀겠다. 재건축안전진단 문제를 개선하고, 일부 주거지역의 용적률을 상향하겠다. GTX(수도권광영급행철도)를 연장·신설하고,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겠다.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명문화하겠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계획을 수립하겠다."


"전국에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원가주택을 짓겠다. 보유세를 완화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2년)으로 배제하겠다. 대출 규제 풀겠다. 30년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정밀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역세권 민간재건축의 용적률을 상향하겠다. GTX를 연장·신설하고,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겠다. 세종시에 청와대 집무실과 국회의사당을 마련하겠다. 부울경에 광역교통망을 확충해 클러스터화하겠다."


차이점이 느껴지십니까. 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이고, 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입니다. 참 신기하죠.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하루 앞둔 지금까지도 서로 헐뜯기 바쁜 두 유력 대권주자인데, 정작 이번 대선에서 가장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분야인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과 구체적 방안이 어쩜 이렇게 비슷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당, 보수를 표방하는 국민의힘이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의견 합치로 국민통합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봐야 할까요. 공약이 너무나 흡사해서 누가 당선되든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는 두 후보와 거대양당이 대선 공약에 자신들의 철학을 담지 않고 오로지 표심만 좇은 결과로 보입니다. 부동산 공약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 후보와 윤 후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얼마나 표만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와 정비사업자를 '적폐 투기세력'으로 규정했던 민주당은 세제와 규제 완화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용적률까지 올리겠답니다.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난색을 표했던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이제 선거철 단골 공약이 됐네요.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은 '국면전환용'이라고 비판했던 국민의힘은 청와대 세종집무실, 국회 세종의사당을 내걸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이번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로 여겨지는 부울경에 각별히 집중하는 부분도 눈에 띄네요. 

철학이 빈곤하다 보니 공약의 현실성도 떨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공급 대책부터 물음표가 붙는데요. 3기 신도시도 제대로 조성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마당에, 과연 전국에 250만~311만 가구를 공급하는 게 가능할까요. 양측 모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아무리 용을 써도 임기 내 부지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각각 대표 부동산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본주택, 원가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급하겠다는 말만 있고, 재원을 어디서 마련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기본주택은 임대 위주 공급에 따른 자산격차 벌어짐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을, 원가주택은 민간 건설사들이 참여를 꺼리면서 제대로 추진조차 못할 것이라는 비판을 각각 받고 있죠. 대출 규제 완화는 또 어떨까요. 미국발(發) 금리 인상 가능성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적인 인플레까지 우려되는데 시장에 돈을 더 푼다, 되레 문재인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에 묶였던 매매심리가 팝콘처럼 튀면서 부동산시장 안정을 저해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연합뉴스(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모두 현 정권의 부동산 실정을 규탄하면서 자신이야말로 집값을 잡을 적임자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명운을 결고 부동산을 해결하겠다"고, 윤 후보는 "청년과 서민을 위해 집값을 확실히 잡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도대체 철학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정책으로 어떻게 집값을 잡고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건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또한 참으로 걱정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약 10년 동안 철학과 현실성이 없는 정책을 앞세운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나라가 얼마나 휘청거리는지 목도해 왔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앞뒤 안 맞는 공약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은 곧장 증세 위주 정책을 펼쳤고, 창조경제 운운하다 정경유착과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했습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세우고도 당선된 대통령은 "부동산 자신있다"고 장담하더니 결국 집값 폭등의 주범이 돼 '40%의 정치'만 하고 있고요. 이 후보 또는 윤 후보, 민주당 또는 국민의힘도 괜히 국민을 잡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대선정국 속에서 국민들은 '부동산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주택자들은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나면 집값이 제자리(2017년 5월께 시세)를 찾겠지. 상급지에 공급도 많이 하고, 대출 규제도 푼다고 했어. 지금은 집을 살 때가 아니야'라면서, 유주택자들은 '대통령이 바뀌면 규제가 완화될 거야. 그때 집도 팔고, 갈아타기도 하고, 투자도 해야지'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현재 공약으로 내세운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펼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워 보입니다. 표만 좇아 급조한 공약이니까요. 아마 상황에 따라 큰 고민 없이 여론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때그때 정책과 방향성을 바꾸고,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위해 지금 선거판에서처럼 중상모략이나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전형적인 '후진국 정치'죠.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이번 대선이 끝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나라는 표만 좇고 철학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후진국형 정치세력을 15년이나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도 대내외적 경제환경이 굉장히 악화된 시기에서 말이죠.

이런 시국에는 위험한 선동가가 득세하기 마련입니다. 19세기 통일독일은 우리나라와 무척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근대국가로 뒤늦게 진입했고, 산업화를 너무나 빠른 속도로 추진하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 했죠. 변변한 식민지도 없어서 대외 의존도가 무척 높았고요. 그런 와중에 명재상인 비스마르크 총리가 해임되고 독일은 대공황을 겪게 되는데요. 과거에는 득표율이 2~3%에 불과했던 나치당이 바로 그때 일당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먹고 사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독일인들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선동가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하게 된 거죠. 그리고 역사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정치인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2014년 경제위기 당시 크림반도 공략으로 민족주의를 재자극해 지지율을 높인 추억을 떠올리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니까요. 물론, 미국에 맞서기 위한 중국과의 식량무기화 연대 전략, 아프리카 등과의 친남방정책의 일환이기도 할 거고요. 

두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으로 시작해서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이번 시사텔링처럼 우리나라 정치문화도 도대체 어디까지 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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