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2022년 3월 16일 러시아 부도설…1998년 금융위기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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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 보기] 2022년 3월 16일 러시아 부도설…1998년 금융위기 재조명
  • 곽수연 기자
  • 승인 2022.03.11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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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금융위기 여파와 재정적자…단기부채 발행 남발
단기국채 의존·상환부담 가중…못견뎌 1998년 지불유예
루블화 평가절하·은행 연쇄도산…국민 35% 빈곤층 전락
16일 러시아 부도설…금융지원해줬던 서방, 이제는 제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곽수연 기자]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2022년 3월 16일 러시아 부도설 ⓒ시사오늘 김유종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2022년 3월 16일 러시아 부도설 ⓒ시사오늘 김유종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지난 8일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단계로 강등했다. 서방의 제재와 무역제한으로 러시아의 채무상환 의지가 약화됐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 이날 피치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에서 C 단계로 낮췄다. 피치의 C등급은 사실상 국가부도를 의미하는 D등급의 직전 단계다. 앞서 다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때문에 러시아 국가부도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오는 16일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날은 러시아의 약 7억 달러 채권의 만기일인데, 러시아가 이를 상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6430억 달러 중 4000억 달러는 미국, 영국 등 주요 금융기관에 예치돼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동결된 상태다. 따라서 러시아가 부채 상환이 어렵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세간의 우려처럼 러시아가 부도날 경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해보기 위해 1998년 러시아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되짚어봤다. 아울러 2022년 러시아 경제위기는 1998년도와 어떻게 다를지 정리해봤다.

 

낮은 세금 징수율…재정적자 보전하려고 단기채 발행 남발…상환부담 가중


1998년 8월 17일 러시아는 루블화 표시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어떻게 하다가 러시아는 채무상환 유예를 공언하게 됐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대내외적인 이유로 나뉜다.

외적 요인으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를 들 수 있다.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로 확산했다.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의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심리 불안이 고조됐다. 투자자들은 선진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약 50억 달러의 외국자본이 1997년 10~12월 사이, 약 20억 달러가 1998년 1~2월 사이에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가며 러시아 외환시장을 동요시켰다. 여기에 러시아 수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원자재의 가격의 하락은 무역수지 흑자를 급감시켜 정부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외환보유고를 축소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러시아 금융위기는 재정적자의 누적과 단기부채의 급증에서 기인했다. 먼저 재정적자 누적은 조세체계의 미비로 인해 최대 재정 수입원인 세금의 징수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진 데서 비롯됐다. 불합리한 조세제도, 보편화된 특혜조치와 만연한 부패로 러시아 정부의 세금의 징수율이 매우 낮은 상태였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단기 국채를 발행하게 됐고, 더욱더 단기 부채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단기 국채 중 1998년 상환 도래분이 약 2500억 루블로, 이는 1997년 러시아 GDP의 9%를 초과하는 금액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러시아 자본시장을 이탈하면서 루블화 단기 채권의 수익률이 급등해, 러시아 정부의 상환부담은 계속 가중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자, 러시아 정부는 8월 17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모라토리엄 선언 후 3개월…"먹을 것도, 희망도 없다"


지급유예를 선언한 이후 러시아 경제상황은 악화됐다. 

러시아 은행 수 백개가 도산 위기에 놓였다. 러시아 내 50여 개 지방정부들이 경제 악화로 내국채 상환을 이행하지 않아서다.

여기에 루블화 평가절화는 심화됐다. 달러당 6.3 루블이던 환율은 수출대금의 50% 강제 예치라는 극단 조처에 힘입어 16 루블 선에서 겨우 안정됐다. 지방에서 가치를 상실한 루블화 대신 물물교환이 성행한 가운데,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이 끊긴 지방정부는 잇달아 파산했다. 반면 물가는 폭등을 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미 50% 이상 뛴 물가가 연말까지 240~290%까지 폭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곡식 수확량이 예년보다 저조했다. 1998년 곡식 수확량은 작년의 절반 수준인 4700만~5200만 톤에 그쳤다. 더 나아가 추산된 재고량은 1700~2600만 톤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 것도, 희망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러시아 은행 연쇄 도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러시아 은행 연쇄 도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아시아 경제위기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 증시 활황으로 89개 지방 중 71개 지방이 200억 루블 규모의 내국채를 발행했으나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50개 지방정부가 이미 채권의 전체 혹은 일부를 상환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를 인수한 러시아 시중은행들과 채권중개업자들이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 연방정부 채권을 소유한 외국은행 측과 러시아 연방정부 관리들이 지난주 런던에서 채무상환 재조정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동아일보> 1998.10.26

 

경제위기 이후 모스크바 시내에 부쩍 늘어난 거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제위기 이후 모스크바 시내에 부쩍 늘어난 거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정부는 1999년 말까지 상환해야 할 약 210억 달러에 대한 지급불능을 시사했다. 유일한 자금줄이다시피 한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226달러의 9월 인도분 지급을 연기함으로써 재정이 바닥난 러시아 정부를 더욱 옥죄고 있다. 4분기 예산안의 재정수입은 지출의 절반에도 못 미쳐 통화 발행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통화기금은 구제금융 재개의 조건으로 1999년 긴축예산을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러시아인은 8월 3280만 명에서 9월 4440만 명으로 늘었으며, 이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소련 붕괴 직후 1991~1992년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러시아인들은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오늘날엔 수년 내에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한겨레> 1998.11.10

 

1년 후 상황…은행 첫 디폴트 시인·대폭정리·경제고립 심각


1999년에도 러시아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유럽 신용평가 기관은 사실상 러시아에 파산선고를 했다. 구체적으로 유럽 신용평가 기관 피치 IBCA사는 러시아의 소련 시대 채무 일부 등급을 CD에서 DD로 낮췄다. DD는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상태를 의미한다. 국제사회도 사태를 개선시키지 못한 러시아 정부에 등을 돌리며, 외자도입이 어려워졌고, 경제 고립은 심각해졌다. 여기에 러시아 시중은행은 디폴트를 시인했다. 예컨대 러시아 은행이 파산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은행예금 8만 달러를 몽땅 날려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은행 대폭 정리에 돌입했다.  

러시아 시중은행 첫 디폴트 시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러시아 시중은행 첫 디폴트 시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우넥심 은행은 8일 성명을 통해 지난 1월 24일 만기가 도래한 변동금리부 채권 이자 199만 달러와 2월 1일 도래한 1200만 달러 규모의 유로채권에 대한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러시아 은행들이 추가로 디폴트 상태에 들어설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러시아 은행들이 7월 이전에 상환 도래하는 이자 총액만 57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매일경제> 1999년 2월 10일

 

러시아 대폭 정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러시아 대폭 정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빅토르 게라시첸코 러시아 중앙은행은 9일 "연내 은행수를 현재의 4분의 1 이하 수준인 200~300개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시중은행은 지난해 9월 1500개였으나, 이미 200여 개로 폐쇄됐고, 다른 200여 은행도 곧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금융개혁 등 각종 카드를 잇달아 내놓은 것은 국제사회지원을 위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일경제> 1999년 2월 11일

 

러시아인 전체인구의 35%, 최저 생계비 월 4만 원 미만…2000년대에는 플러스 성장 낙관론 제기돼


금융위기 동안 러시아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1999년 7월 30일 러시아 통계청은 최저 생계비 872 루블(약 4만 3200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35%인 517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한 달 800 루블(약 4만 원)의 연금으로 살고 있는 류다 안토 노브나 할머니(71)는 "70년 동안 공산당이 아무리 선전해도 안 믿던 사회주의 경제의 장점을 사회주의 포기한 후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말로 요즘 자신이 겪고 있는 생활고를 설명하기도 했다.

러시아 실업률은 지난해 11.8%에서 올해 1분기 12.3%로 높아졌고, 루블화 가치 폭락은 여전히 심각하다. 루블화 환율은 달러당 6 루블에서 1년 새 24 루블로 치솟았다. 어려운 경제상황에 러시아 총리는 러시아가 이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푸틴 러시아 총리는 "우리는 이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고, 무기 제작을 빼면 몇몇 부문은 영원히 처졌다"고 말했다. 푸틴 총리는 러시아와 다른 금융기관 합한 총자산이 세계 100대 투자펀드 하나의 자산에도 못 미친다며 러시아의 경제현실을 통탄했다.
<동아일보> 1999.10.29

그러나 2000년이 지나면 러시아 경제가 회복세로 전환하면서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됐다.

러시아 경제 어디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러시아 경제 어디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김병연 영국 에섹스대 교수는 러시아가 앞으로 국내산업 보호 등에 주력하면서 외국의 간섭을 배제한 독자적인 경제발전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경제는 올해들어 루블화 폭락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의류·식품 등의 분야가 살아나고, 최대 수출품목이 원유 가격이 상승해 2~3%을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아일보> 1999년 11월 9일 

 

러시아 시장경제 확대 가능성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러시아 시장경제 확대 가능성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일 실시된 러시아 총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지지하는 신생 연합당과 우파연합이 약진함에 따라 러시아의  정책에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총선 결과는 시장경제를 원하는 러시아 대중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총선 결과는 이미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20일 러시아주가가 8%나 치솟았다. 해외에 증시된 러시아기업의 주가도 올랐다.
<동아일보>1999.12.22

실제로 러시아 경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꾸준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 5월 취임한 푸틴은 민간에 매각된 에너지업체를 국유화했고, 대대적인 개발에 나섰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상승해 러시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벗어나 매년 6~7% 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2000~2013년까지 장기간 경제 호황을 누렸고, 세계경제 11위권에 올랐다.

 

채무감면과 구제금융해줬던 서방국가…이제는 제재로 러시아 경제 '수렁'에 빠뜨려


2022년 3월 16일, 러시아는 7억(약 8500억 원) 상당의 러시아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러시아가 국채를 상환하지 않더라도 30일간의 유예기간은 있다. 그러나 이 기간 후에도 상환하지 않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현실이 된다.

1998년 이후 24년 만에 디폴트 위기가 재현될 경우 과연 러시아는 이번에도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이번에는 1998년과는 다르고 더 심각한 경제위기를 직면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1998년 당시에는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의 대외부채 감면과 구제금융을 지원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과 EU(유럽연합) 등이 러시아 경제제재에 앞장서고, 중립국인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까지 동참하고 있다. 러시아의 금융위기를 구제하거나 지원해줄 나라는 중국 등 극소수의 나라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는 러시아 은행 7곳을 오는 12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시킨다. 이로인해 러시아는 달러를 받거나 송금하기가 어렵게 됐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금지를 발표했다. 영국은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연말까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3분의 2로 줄이고 2030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러시아 국채 보증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시장에서는 러시아의 1년 내 디폴트 가능성을 71%, 5년 내 부도 가능성은 81%로 관측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바 IMF 총재도 10일 러시아의 디폴트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라며 “러시아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방의 제재로)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금융협회(IFF)도 “서방 제재 때문에 금융여건이 급격하고 전례 없이 긴축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경제 위축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2배 이상 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정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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