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읽기] ‘흐르는 강물처럼’, 퇴장하는 김영춘…“꿈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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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읽기] ‘흐르는 강물처럼’, 퇴장하는 김영춘…“꿈은요?”
  • 정세운 기자
  • 승인 2022.03.22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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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정계 입문 후 YS와 반독재투쟁
지역주의 타파 정치행보 속 역사로 퇴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김영춘이 정계를 떠났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도 정치무대에서 사라진다.
필자의 뇌리에 ‘젊은 정치인’으로만 기억되는 김영춘의 정치 이력은 무려 35년이다.

1987년 1월 상도동 비서로 입문했다. 부산출신으로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1984년 12월 민정당사 농성사건 배후조종혐의로 구속됐다. 다음해 3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영춘 앞에 나타난 사람은 YS 비서진으로 들어가 활약하고 있던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이성헌이었다. 김영춘에게 상도동 합류를 권유했다. 하지만 김영춘은 거절했다. 보수적인 정치판에서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김덕룡 권유로 상도동 비서진 합류 후 정치꿈 실현위해 동분서주


1년 6개월 뒤 1986년 12월 김덕룡을 만나 상도동 입문을 결정했다. 김덕룡은 “현실적인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현시키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김영춘은 이후 1994년 11월 민자당 지구당 조직책 선정 때 서울 성동병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돼 최연소 여당 위원장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문민정부에서 정무비서관을 거쳐 15대 총선 때 광진갑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16대 총선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필자는 당시 김영춘에게 ‘정치적 이상이 뭐냐’고 묻곤 했다. 김영춘은 “YS가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니, 독재정권이 만든 지역주의를 깨는 게 나의 꿈”이라고 답하곤 했다.
 

김영춘은 87년 상도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35년간 싸워왔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그도 21일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시사오늘 김유종
김영춘은 87년 상도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35년간 싸워왔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그도 21일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시사오늘 김유종

 

김영춘 역사 속 퇴장이 아쉬운 까닭


김영춘은 이상실현을 위해 나섰다. 영남당으로 불린 한나라당에서 호남인사인 김덕룡 당대표 만들기에 나섰다. 역부족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훌훌 털고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깃발을 올렸다. 하지만 노무현의 인기가 추락하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갈기갈기 찢겼다.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문국현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여러 문제만을 남기고 문국현과 갈라섰다. 우여곡절 끝에 당 대표였던 손학규의 권유로 다시 민주당에 들어왔다.

서울 지역구를 버렸다. 본인이 직접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부산진갑으로 내려갔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2020년 총선에서 당선돼 3선고지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초대 해수부 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섰지만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에 밀렸다.

민주당으로부터 6월 지방선거 출마를 권유 받던 김영춘은 21일 정치무대에서 퇴장한다고 밝혔다. 김영춘은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 거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자문자답해 봤다”고 퇴장의 변을 설명했다.

그는 현실정치에 들어와 자신의 이상을 얼마 만큼이나 실현했을까? 그의 꿈을 완성해 줄 제2의, 제3의 김영춘은 있을까?

YS가 즐겨 불렀던 ‘메기의 추억’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김영춘과 함께 같이 불러보고 싶다. 그의 퇴장이 아쉽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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