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물가와 최저임금, 어디로 가야하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물가와 최저임금, 어디로 가야하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2.04.09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의 시작…상생(相生) 균형점 찾아야
소득양극화 더 키운 文정부
차등화, 더 이상 미룰 이유 없다
자영업자 현실 반영해 속도 조절해야
물가상승률 10년 만에 최고…민생 비상
후폭풍 막을 종합대책을
인플레 억제가 새 정부 최대과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올해 첫 전원회의ⓒ연합뉴스

새 정권의 정책 화두는 '실용주의'다. 최근 민생(民生)을 위협하며 폭등하고 있는 물가, 그리고 격렬한 산고가 예상되는 최저임금 협상은 가장 큰 현안이다.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무엇이 문제의 본질이며, 참된 처방책이 되어야 할 지, 집중 점검이 필요하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관한 공식 논의가 시작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8월 5일까지 윤석열 정부의 첫 최저임금이 될 2023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이번 최저임금 협상에서는 물가 변수가 가장 크다. 노동계는 물가를 내세우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경영계는 같은 이유로 동결 혹은 인하를 주장할 게 뻔하다. 정부의 섬세한 중재가 요구됨과 동시에 사회 갈등 해소 차원에서라도 물가 안정이 시급하다. 

고물가는 그 자체로도 민생경제를 위협하지만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온다는 점이 무섭다. 새 정부 첫 최저 임금에 대한 심의가 시작됐는데, 경영계는 현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임금을 41.5%(2690원)나 오르게 했다며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가파른 물가 상승을 들어 9160원의 현 최저 임금을 애초 목표였던 1만원으로 높일 것을 주장한다. 물가의 고공행진이 최저 임금 향방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물가 상승은 내수 감소와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 투자활동의 위축을 초래해 경제운용을 더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비상이다.

총체적 비상 상황

물가 안정은 역시 경기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벌이가 좋아진다 해도 지출이 더 많으면 가계부는 적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수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무역수지는 한 달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치솟는 원자재 가격에 따른 수입액 급증 탓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월별 무역적자만 세 차례다. 현 정부의 재정 퍼주기와 코로나19 대응으로 4년 연속 재정적자인 상황에서 무역수지까지 적자로 돌아서면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된다. 쌍둥이 적자는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며 정부와 기업의 금융비용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새 정부의 정책 과욕도 자제해야 한다.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대출 완화 등을 내세우지만 모두 시장금리 및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책들이다. 선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정작 서민에게 고통을 준 어설픈 정책의 부작용은 文 정부에서 수없이 목격했다. 시행착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고물가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을 더 힘들게 해 양극화 문제를 악화시킨다. 원자재 값 상승으로 기업, 자영업자의 수익성이 나빠지면 일자리도 줄어든다.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물가 불안에 발목이 잡히면 명분이 좋은 개혁정책도 추진력을 잃게 된다. 경제는 지금 총체적 비상 상황이다. 거창한 목표를 제시하기보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도움이 될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실용주의' 정책의 요체다.

전면 수술 불가피

최저임금 협상에서 인상 폭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의 수술이다. 1988년 시행 이후 34년 동안 구시대 모형을 유지해온 최저임금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손질해야 할 때이다.

윤 당선인은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연공급제) 대신 직무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 개편까지 약속했다. 구시대 낡은 임금 관행은 이제 전면 수술이 불가피하다. 시대에 맞는 탄력적인 임금제도를 서둘러 정착시켜야 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그 출발점이길 바란다. 관건은 노동계를 설득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의 추진력과 실행력에 기대를 건다.

최저임금위의 법적 의결 시한은 오는 6월 29일이지만 지금까지 법정기한 내에 안을 도출한 경우가 거의 없다. 매년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공익위원이 시한을 넘겨 인상안을 사실상 결정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최저임금 정책의 기조 변화로 노사가 더욱 날카롭게 맞부딪칠 공산이 크다.

소득양극화 악화

1988년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노동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자는 취지이다. 최근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무섭게 오르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자산 양극화는 더 심각해 이 정도 최저임금으로는 일해서 번 돈을 평생 쓰지 않고 모아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추가됐다. 신한은행이 펴낸 '2022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는 소득양극화의 심화를 선명히 드러낸다. 

지난해 9~10월 전국 만 20~64세 경제활동자 1만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가구 소득 하위 20% 1구간 응답자의 월 평균 소득은 전년 대비 2만원 감소한 181만원인데 반해, 상위 20% 5구간은 53만원 늘어 948만원이었다. 두 계층 간 소득배율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4.8배 수준이었으나 2021년 5.23배로 벌어졌다. 소득격차 해소를 핵심 정책 목표로 삼았던 문 정부에서 오히려 소득격차가 더 확대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신한은행 자료 뿐 아니라 통계청, 국세청 등 정부기관들의 데이터마저 소득양극화가 악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친서민을 내세우다가 소득양극화를 더 키운 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뼈저린다.

정책실패 상징 ‘소득 주도 성장’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근본적으로 소득을 뒷받침하는 일자리 정책과 부동산정책의 실패 요인이 가장 크다. 소위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며 지난 4년 동안 42%나 급격히 인상한 최저임금은 최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은 실패한 정책의 상징인 ‘소득 주도 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집권 첫해(2018년 적용) 16.4% 수직 인상한 데 이어 이듬해에도 10.9%나 올렸다. 집권 5년 동안 41.5%나 올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9160원에 이르렀다. 목표했던 1만 원에 근접했지만 노동 시장은 외려 퇴행했다. 자영업자들이 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종업원을 줄이자 정부는 세금을 동원해 단기 공공 일자리를 양산했다. 이념을 앞세운 정책 실험은 자영업자 몰락과 일자리 쇼크를 초래했다.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 고용이 대거 줄어들면서 일자리 참사와 소득 격차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제는 ‘소득 주도 성장’ 같은 어떤 형식의 이념적 억지 논리에도 구속되지 말고 노동자와 사용자 양쪽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160원)은 근로자 중위 임금의 61% 수준으로, 일본(44%)·미국(30%) 등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못 받고 일하는 근로자가 6명 중 1명꼴이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법정 임금과 현실의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도 숙제다.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한 것도 소득 격차를 더 벌리는 효과를 초래했다. 이번 조사는 하위 20% 부동산 자산이 2018년부터 3년간 30% 감소한 반면, 상위 20%의 부동산 자산은 39.2% 증가해 부동산 자산 격차가 125배에서 251배로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계층별 자산소득 차이를 확대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만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최저임금 심의는 비틀린 노동정책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지난달 기업 설문에서 ‘새 정부의 중점 추진 노동 개혁 과제’로 최저임금을 꼽은 이유를 새겨야 한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 논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대기업과 같은 최저임금을 지불할 경우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저임금보다 적더라도 일하겠다는 근로자가 있다"고 말하는 등 최저임금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과 같은 제도 개선 필요성도 언급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기업이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결과가 와서 서로 루즈(Lose)-루즈 게임이 된다"고 말했다. 인상 자제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이런 분위기가 심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의 첫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만큼 심의 과정에서 노사간 겨루기가 어느 해 못지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업종·지역별 차등화를 공약해 놓은 터라, 인상 폭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제도 자체의 변경에 관한 논란도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논리적 순서로는 인상 폭보다 차등화 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인상 폭 논의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가 차등화에 극력 반대하고 있어 실제로 그렇게 될 지는 미지수다. 차등화 중 업종별 차등화는 최저임금법상 가능하지만 1988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시행된 바 없어 해당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한 상태다. 지역별 차등화는 최저임금법을 개정해야 가능해진다. 사용자 측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은 둘 다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업종별 차등화까지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법 개정을 국회에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예년에 흔히 그랬듯이 노사가 막판까지 서로 뻗대다가 퇴장하고, 공익위원들끼리만 절충안을 내고 표결해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도중에 차등화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심의 자체가 공전할 수도 있다.

업종별 차등적용 현행법상 가능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기자들에게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감당하기 힘든 기업들은 결국 고용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그런 사례는 빈번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저임금 5% 인상 시 사라지는 일자리가 10만개에 이른다. 줄어든 일자리 상당수는 숙박·음식업 등 소규모 사업장에 해당한다. 업종이나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인상분을 적용할 경우 이런 폐해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현행법상 가능하다. 최저임금법 제4조에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 경공업과 중공업을 구분해 업종별 차등적용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여러 반대 목소리로 적용되지 못했다.

해외 선진국은 다르다. 일본의 경우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목표치를 제시하면 지방최저심의회가 이를 참고해 결정한다. 업종별 최저임금은 지역 내 노사 요청을 받아 심의를 거쳐 정해진다. 미국은 정부가 연방 최저임금을 정하면 주별로 지역과 산업특성에 맞게 다시 조정한다. 호주는 120여개 직업군에 대한 직업별·연령별 세분화된 규정을 따르고 있다. 이렇듯 기업이 처한 처지와 여건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는 선진국 방식을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차등화가 법 개정 문제로 쉽지 않다면 업종별 차등화라도 서둘러야 한다. 원자재 값 급등과 금리 인상으로 힘든데 과도한 노동 비용까지 추가되면 기업들은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새 정부는 ‘노동 개혁’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다는 각오로 최저임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노동계도 ‘회사가 살아야 일자리도 지킨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지역별 차등화, 국회 나서야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얼어붙은 고용 시장이 더욱 위축해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경영계는 근로자와 서민층이 나락으로 떨어질 경우 기업의 존립 기반까지 흔들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한 편의 주장이 관철되더라도 과도하면 승자가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먼저 최저임금위 차원에서 업종별 차등화가 시도되기를 바란다.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인상을 무작정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업종별로 가능한 인상 안을 성의껏 제시해야 한다. 노동계는 업종별 차등화의 순기능에 눈을 돌리기를 바란다. 일률적으로 단기간에 껑충 오른 최저임금 탓에 자영업 일자리가 크게 위축됐던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역별 차등화 도입은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가 노동자들의 불이익 우려를 가라앉힐 수 있는 보완대책과 패키지로 최저임금법 개정에 나서주기 바란다.

34년 낡은 제도 고칠 때

무엇보다 개선이 시급한 것이 일률적 최저임금이다. 고용주의 규모나 업종, 대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물가, 고용 여건과 지불 능력이 크게 다른데 전국 모든 작업장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주도록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을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 

일본에선 업종·지역별로 따로 산정한 차등 최저임금제를 시행 중이고, 미국·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에선 청소년 아르바이트 근로자에겐 성인 최저임금의 30~75%(네덜란드 기준)를 적용하는 식으로 근로자 연령별로도 차등화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도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은 고용뿐 아니라 실업급여 지급액, 형사 피해자 보상금, 백신 부작용 보상금 등 16개 분야의 보상금 수준을 좌우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 1988년 첫 시행 후 34년이 지나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제도를 고칠 때가 됐다.

고용이 악화되면 임시직 노동자나 단기 알바생 등 취약계층부터 더 피해를 보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저임금이 5% 오르면 일자리가 10만개 줄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의욕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최임위는 자영업자의 지급 능력과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최저임금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체계 문제

노동자·사용자 대표와 정부 임명 공익 위원이 9명씩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 체계도 문제가 많다. 노와 사측의 의견이 항상 양 극단으로 치닫고 결국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 위원들이 결정하면 양쪽 모두 불복을 선언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국회나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미국·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 현재의 최저임금 결정체계도 손볼 때가 됐다. 최저임금위는 노동계·사용자 대표와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됐다. 노사 입장이 팽팽히 맞서기 때문에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하지만 공익위원 결정에 노사가 승복하지 않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최저임금위를 이원화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노동계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국회 등이 나서 하루빨리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면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물가가 말 그대로 미쳤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 급등했다. 4%대 상승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석유류·국제곡물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서민들 사이에서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외식물가는 6.6% 상승하며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가히 ‘쇼크’ 수준이다. 

이런 판국에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선거용 돈풀기에 열을 내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물가는 경제수준의 가늠자인 동시에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의 질과 직결된다. 굳이 재정이 필요없는 복지정책이 안정적인 물가관리다. 고삐 풀린 물가에 한숨 짓는 국민이나 관리할 정부나 답답하겠지만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국민이 온몸으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4.1%라는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다. 리터당 2000원을 넘어 휘발유 값에 근접하는 경유 값이 감당 안 돼 생계가 걸린 화물차 운행을 접은 차주가 늘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현행 20%에서 30%로 추가 인하하고,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을 3개월 한시 지원하는 등 고유가 부담 완화 3종세트를 발표한 배경이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지금보다 치솟으면 유류세 인하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전기·가스요금 동결 등으로 억지로 눌러놓은 것도 많고, 원자재 가격 등 소비자물가에 다 반영되지 못한 요인이 줄 서 있다. 더 면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물가가 민심이반을 낳는 도화선이 될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 본격화

물가 상승세가 진정될 것 같지 않다. 한국은행이 어제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바로 경고한 데 이어, 통계청도 “당분간 물가 상승세가 크게 둔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다. 우려를 더하는 것은 원자재난 등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 국면에서 기업의 설비투자마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가상승은 대외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로 원유·원자재·곡물 등 3대 자원의 공급이 병목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위축됐던 소비가 살아나면서 자원 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말 배럴당 60달러 대에 머물던 국제유가가 120달러에 육박하고 밀과 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이 40~50%나 올랐다. 니켈·리튬·구리·알루미늄 등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로 사용되는 주요 광물 값도 급등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타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근원물가로 전이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물가를 더 끌어올릴 요인이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무너진 글로벌 공급망 복구 시점은 불투명하다. 미국이 전략비축유를 풀어 국제유가가 잠시 떨어졌지만 산유국의 증산이 없으면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대선 뒤로 미뤄둔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더 방치할 경우 한국전력 등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노동계는 물가 급등을 이유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8.5∼10% 올리자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50조 원 추경’도 한꺼번에 시중에 풀릴 경우 물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중장기적 물가관리 관건

다음 달 출범할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 집권 첫해와 비슷한 상황을 맞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008년 국제유가가 140달러대까지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가 5%대까지 치솟자 이 정부는 ‘MB 물가지수’까지 만들어 물가를 관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때부터 경제정책이 꼬이기 시작해 임기 내내 고생해야 했다. 미국과 중-러의 신냉전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제 시작 단계란 점에서 현 상황은 14년 전과 비교할 때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한쪽에선 돈을 풀고, 다른 쪽에서 돈줄을 죄는 정책 엇박자는 없어야 한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기 재정당국과 통화당국 간 꼼꼼한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고물가의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을 위한 특단의 지원책도 내놔야 한다. 인플레와 싸우려면 인기 없는 정책이라고 외면해선 안된다. 윤석열정부도 공공요금 감면 등 재정에 부담을 주는 단기대책보다는 중장기적인 물가관리 방안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 경제주체 고통분담...선순환 추구를

지금의 물가 상승은 나라 밖 요인이 크고 일부는 현 정부의 ‘재정 살포’에 기인하지만 고물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다. 

우선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잠재우기 위한 통화정책이 전개되도록 한국은행과 원활히 소통해야 한다. 금리 인상으로 갖가지 비용이 늘어날 서민지원책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또 국내 물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자원 수입이 지장받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윤 당선인 측이 내세운 50조원짜리 추경이나 대출 규제 완화가 물가를 자극하지 않게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고물가와 투자 의욕 저하가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라 추세적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유류세제 인하나 공공요금 인상 억제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재정과 통화정책의 동시 긴축을 통해 기대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경제주체에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할 국정과제들을 다듬고 있지만 최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는 인플레를 잡는 일이다. 인플레는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소비 위축과 성장률 하락을 통해 고물가와 저성장의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투자활력 방안은 전방위로 수립해야 한다. 특히 기업들이 국내 투자는 외면하면서 해외 투자는 활발하게 진행하는 요인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선진국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리쇼어링 정책이 왜 한국에선 먹히지 않는지 알아야 한다. 기업 투자가 부족한 나라에 청년 일자리가 생겨날 리 없지 않은가. 

최저임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처한 제반 상황에 대한 고려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반하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사회와 경제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 노사 양측이 시야를 넓혀 역지사지의 자세로 전체를 조망하길 바란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