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박주선 “지금 민주당, DJ 때와는 뿌리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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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박주선 “지금 민주당, DJ 때와는 뿌리가 달라”
  • 정세운 기자,윤진석 기자,김자영 기자
  • 승인 2022.04.1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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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준비위원장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회)

“DJ 살아있었으면 민주당 가지 말라고 했을 거라고 봐”
“정통 DJ맨이지만 나는 독자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검찰 엘리트조직인 것 인정, 나야 검찰티 벗은지 오래”
“대통령 되는 건 천운 있어야…호남 한계론도 없지 않아”
“정권교체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윤석열 지지 결단한 것”
“호남, 구국의 결단으로 용서와 화해의 정신 복원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윤진석 기자, 김자영 기자]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취임 슬로건에 대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고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취임 슬로건에 대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고 밝혔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이 정해졌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이달 11일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슬로건과 함께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한 “취임식 주인공은 바로 국민”이라는 점을 전했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취임식 준비를 시사했다.

“취지는 아무래도 국민통합이죠?”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국민 화합의 상징적 이미지 발굴 찾기에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국민 중에서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인물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미래와 희망, 꿈을 녹여내고 싶다는 바람을 보탰다.

 

1. 정통 DJ맨


“똑같은 말을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오. 허허.”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이날만 세 번째 인터뷰였다. <시사오늘>이 마지막 순. 취임식 준비 관련 물음들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빼곡히 회의하랴, 기자들 질문에 답하랴 입에서 단내가 날 만도 했다.

“취임식 얘기 말고요. 다른 걸 좀 물을게요.”

자못 진지하게 두 대변인(안혜진·김연주)이 배석한 가운데 이 말부터 꺼냈다.

“동교동계 인사들을 만나봤더니 대선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한다고 하더라고요”

운을 떼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 정대철 고문도 윤석열 당선인과 잘 알지만, 민주당이 뿌리니 그쪽으로 돌아간다 하고, 권노갑 고문도 DJ(故김대중 대통령)가 살아있었으면 민주당 가라고 했을 거다, 하더라고요.

“DJ가 살아 계셨으면 거기(민주당)를 왜 가느냐고 했을 것 같은데.”

혼잣말하듯 말했다.

- 어째서인가요.

“내가 새정치민주연합까지 있다가 독자 탈당을 했잖소.”

2015년도 9월 22일이었다.

“그 당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DJ 민주당과는 다른, 너무 차이가 나는 당이었어요.”

“이름은 같더라도 정통성과 가치, 철학이 완전히 다른 당”이라는 지적이었다. “도저히 같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탈당한 거예요.”

- DJ 민주당은 뭘 말합니까.

“중도 개혁, 민생 실용 정당이오.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당이 DJ당이에요.”

새천년민주당 시절을 말했다. 반면에 “이쪽 민주당은 급진 좌파 민주당이었어요.”

- 지금의 586 주도 세력을 말하는 거죠?

“네.”

끄덕였다. “당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박주선은 2016년 1월 국민의당 창당에 가담했다. 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동교동계, 비주류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당이었다. 이들은 친문 패권을 비판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호남에서만 23석을 석권했다. 단 세 곳만 민주당에 내주고 싹쓸이했다. 그만큼 DJ 진영과 친문 간 갈등의 골이 깊을 때였다.

- 지금도 민주당을 급진 좌파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단언했다.

“민주당은 헌법 개정안을 낼 때도 자유를 빼고 민주질서라고만 표기해뒀어요. 자유시장 경제와 동떨어진 정책들을 너무 많이 시도했어요. 내가 탈당해 국민의당에 있다가 지금에 이르게 된 이유예요.”

여기까지 말하다, “이름만 같은 민주당과 나는 뿌리가 달라요.” 그러니 “나보고 왜 그 당으로 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맞지 않은 거예요. 확실한 소신과 가치를 가지고 탈당했던 거니까요.”

- 권노갑 고문이나 정대철 대표도 그런 것을 우려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나한테는 가자는 소리를 못 했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정통 DJ맨’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교동계는 아니다. 본인도 안다. “나는 동교동 계파가 아니에요.” 말을 이었다.

“한화갑 대표(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가 2018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카데미를 개설했을 때예요. 특강을 해달라고 그렇습디다. 그때 나를 소개하기를….”

침을 삼켰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의 보호 아래 성장해왔는데, 우리 박주선 (국회) 부의장은 오로지 독자적으로 활동해 여기까지 온 독특한 이력을 소유한 분입니다, 그렇게 소개를 합디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계파 정치인들과는 행보가 달랐다.

- 한화갑 대표 인터뷰할 때 그러더라고요. 자신을 일컬어 ‘지나고 보니 DJ의 기생충이더라.’ ‘DJ가 없으니 본인도 정치생명을 잃었다’고요. 계파 정치인으로서 지도자에 의지한 측면이 컸음을 소회한 게 아닌가 싶어요.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이야기 안 했지만….” 갸웃하고는 “암튼 나는 민주당에 애증도 없지만, 그 당에 얽매어있을 이유도 없는 사람이에요.” 잘라 말했다. “민주당으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에서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독자적인 주장을 많이 할 수 있었죠.”

 

2. DJ와의 인연


그가 왜 독자적인지는 정치 행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DJ와의 인연부터가 그렇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둘 때였어요.”

하루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던 박주선에게 DJ 비자금 수사가 떨어졌다. 당시 그는 엘리트 검사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호남 100년의 인재로 불릴 만큼 수재였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광주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다. 자신의 피를 뽑아 등록금을 마련해 줄 정도로 헌신적인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요?”

지난날을 회상하는 눈빛이 현실로 돌아왔다.

“여권에서 검찰에 요청한 내용이 한 번만 DJ를 뇌물 피의자로 소환해 포토라인에만 세워달라는 거였어요. 그것만 해주면 수사해도 좋고 사건을 없애도 좋다는 거예요.”

한나라당이 이회창 대선후보 아들 병역 논란으로 수세에 몰릴 때였다. DJ 친인척 계좌를 샅샅이 뒤져 사건을 키우려 했다는 설명이었다.

“검찰을 이용해 대선 정국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건데 있을 수가 없는 일이란 말이에요.”

박주선은 가만있지 않고, 광주고 선배인 김태정 검찰총장을 찾았다.

“총장님. 이건 대통령 선거 끝난 뒤에 수사해야 합니다. 지금 하게 되면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선 정국에 부당한 영향만 미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삼(YS) 대통령을 만나 수사유보 동의를 구하십시오.”

박주선의 설득 끝에 검찰총장은 청와대를 향했다.

“좋소.”

YS는 흔쾌히 수락했다. 옥신각신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검찰총장이 면담을 요청하기 전 대통령은 이미 수사를 유보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수사유보가 발표됐다. 박주선이 발표문을 직접 작성했다.

DJ는 감명을 받았다. 당선된 뒤 그를 불러 어찌 그리 용감한 행동을 했느냐며 감사를 표했다. DJ와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차기 검찰총장 0순위, 법무부 장관 유력설이 파다했다.

 

박주선 위원장은 DJ에 대한 수사유보에 결정적 기여를 하면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발탁됐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주선 위원장은 DJ에 대한 수사유보에 결정적 기여를 하면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발탁됐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하지만 청와대로 갔잖아요?

“1998년 2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어요.”

지금의 민정수석 역할이었다. DJ가 민정수석비서관을 폐지한다는 공약을 한 상태여서 법무비서관이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박주선은 민정수석 외에도 인사수석을 겸했다.

- 원래 검찰총장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뭐 검찰총장 하고 싶다는 것보다도….”

말끝을 흐렸다.

“처음엔 (청와대에) 안 가려고 했어요. (DJ는) 내가 강단 있는 검사라며 청와대에 오라고 했지만 안 가려고 버텼습니다.”

- 왜 그런 건가요.

“그분이 평생 민주화 투사를 한 분이잖소. 카리스마로 대장정을 이끈 분이에요. 권위적일 수 있다고 봤어요. 참모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

- 그런데 갔네요?

“검찰에서 밀고, 청와대서 당겨 가게 됐지요.”

설명을 이어나갔다.

“검찰 내부에서는 DJ와의 악연으로 정권 교체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걱정을 태산으로 했어요. 검찰 출신을 요직에 발탁하니까, 네가 가서 검찰을 위해 변호도 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게 아니냐고 한 거죠.”

청와대로 간 박주선에게 DJ는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신임하고 총애했다고 전해진다.

 

3. 구사일생


여기까지가 독자적으로 DJ와 인연을 맺게 된 경과다. 다음은 정계 입문 후 독자 행보에 관한 얘기로 이어졌다.

- 이후 수난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랬죠.”

그를 두고 풍운아, 불사조, 인동초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DJ 임기 때다. 풍파에 휘말려 법무비서관직에서 물러났다. 옷 로비 사건이었다. 무죄로 판결 났지만,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고뇌 끝에 무소속으로 나갈 결심을 했다. 명예회복을 위해서였다. 전남 화순·보성으로 출마했다. 박주선의 인기는 높았다.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 지도부가 내려와 맞불 유세에 총력을 쏟을 정도였다. DJ 아성이라고 하는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에서 입당하라며 손을 내밀었다. DJ를 보좌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안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참여정부 초 열린우리당 창당을 반대했던 박주선, 한광옥, 한화갑, 권노갑, 김운용, 이훈평, 이인제 등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다. 이들을 상대로 표적수사가 진행됐고, 싹쓸이 구속됐다.

박주선에 대해서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및 현대건설 후원금 사건이 뇌물로 둔갑됐다. 17대 총선에서는 정치적 탄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옥중 출마를 감행했다. 2005년 5월 27일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통합민주당 시절, 제대로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18대 총선에서였다. 광주 동구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88.7%라는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간의 옥고가 잠시나마 씻긴 듯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그에게 사과했다. 2008년 7월 12일이었다. “어떻게 현역 국회의원을 무고하게 두 번이나 구속할 수 있느냐, 배후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따졌다. “민주당과 박주선 의원과는 구별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우리 집에서 소주 한잔하면서 회포를 풉시다.” 술잔이 오갔다.

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린 것까지 합하면 헌정사상 최초 4번 구속에 4번 무죄였다. KRI(한국기록원)에서 신기록 인증서도 받았다. 16년 실형 구형에 336일 넘는 기간이 옥중이었다. 화병으로 심장병까지 생겼다. 어린 시절 물에 빠지고 차에 치였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대수술 끝에 심장병을 고쳐 목숨을 건지게 됐다.

돌아보면 구사일생(九死一生)이었다. 4선에 이르는 동안 무소속 당선만 2번에 이르렀다. 모두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였다. 그가 독자파라고 말한 데에는 험난한 정치 여정을 뚫고 홀로 섰기 때문이리라.

 

4. 엘리트 조직


4번 구속에 4번 무죄를 받은 박주선 위원장은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4번 구속에 4번 무죄를 받은 박주선 위원장은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 네 번 구속당했을 때 말이죠. 검찰끼리 봐준 것은 없었나요?

“봐준 게 아니라 미안하다고 합디다. 우리 뜻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는 거예요. 수사하는 과정에서 양심 있는 검사들은 ‘이 수사는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기소해 본들 무죄라고 말입니다.”

착잡함이 어렸다.

“검찰에 있었잖아요?” 화제를 돌렸다.

- 검찰개혁이 뭐라고 보나요.

“죄 없는 사람을 표적수사하고 구속해서 나중에 무죄 받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

그는 지난 2018년 본지와의 대화에서 “제2의 박주선을 만들지 않는 게 정치적 사명”이라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났다. “다시 말해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지키면서 엄정한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검찰개혁이죠.”

요즘 검수완박(검찰수사권폐지)이 이슈다.

- 어떻게 보세요.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은 이미 무력화됐어요. 이제는 경찰 개혁을 이야기해야 해요. 경찰이 기소권은 없지만, 수사권을 갖고 있잖아요. 그다음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생겼어요. 검찰을 감시하는 기구가 또 하나 생긴 거예요.”

불필요하다는 말로 들렸다.

- 공수처에 대해서는요.

“나는 공수처에 끝까지 반대표를 던진 사람입니다.”

왜냐고 물었다.

“검찰을 본질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수처가 답이 아니라고 봤어요. 중요한 건 검찰권 행사 방법, 검사 정신·자세 등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에요. 법과 원칙에 맞게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게 검찰의 할 일 아닌가요? 진짜 검찰 스타일로만 간다면 문제없는 거죠.”

덧붙여 “그러려면 권력에 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필요해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 윤석열 당선인이라고 생각하고요.”

- 검찰 출신이 대통령 되니 일각서는 검찰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하잖아요. 그런데 엘리트 조직인 것만큼은 분명하더라고요. 한편에선 그들한테 국정운영을 맡겨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왜 나한테 그걸 물어요.”

얄궂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표적 수사에 올라 네 번 구속당하고 네 번 무죄를 받으면서 검사의 넋과 얼이 다 빠진 사람이에요. 검사의 사고와 가치는 완전하게 세탁된 사람입니다.”

한때 검사로 자부심을 느끼며 맹활약했던 그이지만, 이후 겪은 수난으로 애증을 떨쳐내기엔 어려운 듯했다.

- 엘리트 조직이라는 것만큼은 맞지 않나요.

“그건 인정해 줘야죠.”

수긍했다. 윤 당선인 캠프 내 주진우, 이완규, 손경식, 이원모 등이 검찰 출신 그룹이다. 새정부 출범을 준비하면서 들려온 얘기가 그들이 매우 유능하다는 평가였다. 그래서 꺼낸 말이었다.

 

5. 정권교체 신념


선거 때만 되면 정당별로 영호남이 나뉜다. 20대 대선 역시 영남은 국민의힘을,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에 큰 표를 몰아줬다. 박 위원장은 이 점을 의식해 윤 후보 지지 당시 그에게 당부한 것이 있었다.

“호남에서 기대한 만큼 표가 안 나오더라도 냉대하거나 홀대하지 말아 달라. 그 취지로 말했고 약속을 받아냈죠.”

뚜껑을 열어봤다. 호남에서는 윤석열 후보 득표율이 문민정부 이후 역대 국민의힘 후보 중 최고였다. 광주는 12.9%가 나왔다. 역대 보수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이었다. 기존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7.6%)이 최고였다. 윤 후보는 그보다 5% 이상 더 받았다. 광주를 지역구로 뒀던 박주선, 김동철, 김경진과 같이 호남 정치인들의 지지 선언이 큰 반향을 일으켜줬다는 평가다. 박 위원장은 광주전남 총괄 선대위원장이었다.

- 지역을 돌면서는 주로 어떤 말을 했나요.

“정권이 교체된다면 내가 호남을 수익자로 하는 보험 가입을 하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주라고 호소하고 다녔죠.”

선거가 끝나고서도 그는 광주를 돌았다. ‘윤 당선인 공약이 전부 빈말이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식시키려고 내려간 것’이었다. “호남의 변화와 선택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호남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밀어주고 끌어줘야 한다. 새정부가 성공하면 호남도 열매를 차지할 수 있다. 실패하면 악과(惡果)를 얻게 된다. 우리가 과일을 얻어야지 악과를 얻어서야 되겠느냐.”

 

박 위원장은 정권교체에 대한 신념으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전남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 위원장은 정권교체에 대한 신념으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전남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호남 인사니까 아무래도 윤 후보 지지하는데 거리낌은 없었나요.

“사실이긴 한데….” 부연해나갔다. “정권이 반드시 교체돼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어요. 또 교체될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내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 선언한 겁니다.”

- 왜 정권교체가 돼야 한다고 봤습니까.

“국가의 기본이 많이 훼손됐고, 민생 관련 정책도 실패했어요. 인사는 망사가 됐고, 안보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상태까지 온 거예요.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정권의 출현을 기대해왔고,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정권교체를 위해 밀알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 때문에 지지한 거예요.”

입당하지는 않았다. 외곽에서 도왔다.


-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세우고 있습니까.

“나는 정치할 계획이 없어요.”

선출직에 나갈 일이 없다고 했다.

- 그런 경우는 마음 놓고 윤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겠지만, 호남 내 지역구를 염두에 둔 정치인들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김경진 전 의원은 ‘광주의 다리를 끊고 왔다’고 표현할 정도였어요.

“나종일 씨라고 전에 국가안보보좌관하고, 주일대사, 주영대사, 우석대학 총장 했던 분이 나한테 그렇습디다.”

- 뭐라고요.

“우리 박 의원은 진정한 정치가다. 정치인은 표를 의식하는데 정치가는 국민과 미래를 의식한다.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합디다.”

- 어려운 선택을 하긴 한 거죠.

“호남에서 욕을 얻어먹더라도 결국 호남도 국가의 일부다. 국가가 망하면 호남이고 영남이고 없어요. 국가가 흥하면 호남도 혜택을 볼 것이고 혜택을 본 다음에는 나의 충정과 책임감 있는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해 줄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해요.”

- 바른미래당 시절 함께했던 호남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 중 계속 정치할 사람들은 결국 민주당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자기 가치와 철학이 있으니까. 내가 옳다 그르다,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어요.”

한편에서는 윤 당선인이 직접 설득한 것도 지지 결심의 이유일 거로 짐작됐다. “만나 보니 어떻든가요.” 궁금했다.

“검찰 선후배 사이기 때문에 선배님이라고 부릅디다. 너무 깍듯이 예우해줘서 오히려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렇다고 선배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싫지 않은 표정. “하하.”

“어떤 사람 같나요.” 인물됨을 물었다. “조금만 다듬으면 보석이 될 수 있는 원석감이다. 대통령이 되더라도 본인이나 측근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거나 국정 농단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고 사심이 없다. 결단력도 있고 소탈하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 무엇보다 뱃심이 좋죠.

“실천에 대한 의지나 추진력, 배짱이 대단한 분 같아요.”

- 경험상 검사가 그렇게 현 정권에 맞서기가 쉽지 않잖아요.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검찰상을 확립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뒤이어 “비교하자면 나도 한 뱃심 했지.”

- 아, 그런가요.

“정권을 수사해서 사표를 세 번이나 내라고 압력을 받은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검찰 내부에서 막아주기도 하고….”

윤 당선인이나 좌천됐던 한동훈 검사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6. 호남정신의 복원


박주선 위원장은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호남이 피해자로서 용서하는 마음을 먼저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주선 위원장은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호남이 피해자로서 용서하는 마음을 먼저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또 한 가지. “나와 똑같은 뱃심이 있는 검사지만, 대통령까지 된 거 보면 천운을 타고난 것 같아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정치는 9할이 운이다.”

“나는 천운이 없으니까 이 모양이 된 거지. 남 취임식 준비나 하고 있고. 껄껄.”

그도 대망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부러울법했다. “아니지. 대견하죠.” 고개를 저었다.

“혹자는 그러더라고요.”

좀 더 파고들었다.

- 위원장께서도 충분히 될 수 있는데 결국 호남이 한계다, 라고요.

“호남이라서 안 되는 논리라면, 나는 호남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하늘의 뜻이고 그래서 안 되는 것도 하늘의 뜻이다, 하늘이 나를 시키려고 했으면 영남 사람으로 태어났어야지. 호남 사람으로 안 태어났을 거 아니야.”

초월한 듯했다.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대권주자 0순위인 적이 있었다.

- 그에게 왜 안 됐냐고 물었더니 솔직히 호남이 한계였다고 하대요. 그러니 호남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느꼈나 싶어 물어보는 거예요.

“현실적인 한계가 없는 건 아니죠.”

부정하지 않았다. “세간의 평가는 의식해야겠지만, 그럴수록 호남 출신으로는 왜 안 되는지를 분석해 DJ 외에 또 다른 사람이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고 봐요.”

-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호남인이 먼저 용서와 화해를 실천해야 해요. 섭섭한 감정을 가졌던 세력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품어줘야지 않겠는가. 그래야 상대가 참회의 눈물을 흘릴 줄도 알고, 용서를 빌 날이 오지 않겠는가. 화해와 화합이 되고 지지를 모아 통합으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말이오.”

DJ 지론과 겹쳐졌다. 박주선 또한 평소 동서화합이 국민통합의 길이라는 지론을 밝혀온 인물이다. “5·18 민주화 운동이 초석이 돼 결국은 기득권 세력이 교체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꽃피워낸 호남이 먼저 구국의 자세로 포용해야 할 때”라고 한 바 있다. “그것이 호남인의 정신과 가치를 복원하는 길 아니겠소.”

- 한화갑 대표 얘기 들어보니까 DJ가 국민통합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차기 지도자로 키워보려고 했었다는데요.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죠.”

18대 대선에서 한화갑은 한광옥‧김경재 등과 함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20년 9월 <시사오늘> 인터뷰에서 그는 “라종일 박사(DJ정부 때 국정원 1차장 역임)가 말이요. 그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며 “DJ를 만났는데 박근혜를 도와주라 그러더래요. DJ는 박근혜를 지도자로 키울 생각이었다”는 숨은 이야기를 전해 준 바 있다. 하지만 권노갑 고문의 이야기는 “DJ가 그런 적이 없다”고 해 사실 관계는 DJ만 알 수 있을 듯하다. 

- 그런데 호남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해서 박정희 정권부터 내려온 지역 차별이 쉽게 사그라들까요.

“쉽지는 않겠죠.”

아이러니한 것은 5대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대통령이 윤보선 대선후보에 18만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호남이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우리 호남에서만 42만 표를 더 줬어요.” 그럼에도 “박정희 시대에 호남에 대한 낙후, 차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 지역감정은 소위 김대중 탄압에서부터 고착화돼버렸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DJ 모실 때 그분이 맨날 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1971년도 대선 당시 영남 쪽으로 유세를 가면 통행금지 시간대에도 유권자들이 김대중 온다고 기다려 연설을 듣고 갔는데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는지 모르겠다.’ 통탄하고는 했어요.”

71년 대선에서 박정희 정권은 지역감정을 활용해 3선에 오를 수 있었다. 이후 지역감정은 더욱 굳어져 갔다는 게 정설이다.

- 결국, 해소될 수 있냐는 거죠.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호남이 피해자로서 용서하는 마음을 먼저 갖자는 거예요. 두 번째는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김무성 대표 같은 사람이 광주시장에 출마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 몸을 던져 논개 역할을 해보겠다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어요.”

- 왜인가요.

“DJ도 영호남 지역감정을 해소하겠다고, 영남 출신인 이수성 국무총리의 동생 이수인 씨를 데려다 전라남도 지역구에 공천해 당선시켰어요. 지역감정 해소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가 하면 지금 평가했을 때 미미하다고 봐야 해요. 근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영원한 갈등이 되풀이되는 거죠.”

 

7. 정치지형의 변화


박주선 위원장은 야당과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먼저 완벽한 정책과 인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주선 위원장은 야당과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먼저 완벽한 정책과 인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윤 당선인은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도 국민통합을 취임 준비의 제일 원칙으로 삼은 듯했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역대 최악의 젠더 갈등이 표출된 선거였다. 국론 역시 반으로 갈렸다. 여야 협치는커녕 난제가 산적하다.

- 거대 야당이잖아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삼권분립 국가에서 행정부는 입법부의 협조와 협력을 얻지 못하면 식물 정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여소야대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야당과는 흉금 없는 소통과 대화를 일상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 인사부터 정책이 제대로 돼야 야당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어요. 야당과의 협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완벽한 정책과 인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아까 586을 좌파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잖아요. 아무리 정책을 내놔도 서로의 사고가 다른데 협치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보나요.

“반대만 하는 야당이라면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예요.”

호남 민심도 과제다. 19대 총선 당시 호남 유권자로부터 심판론을 호되게 당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전남 출신의 이낙연 총리를 내세워 지지 복원의 지렛대로 삼았다.

- 정략적으로 보면 위원장 같은 분을 요직에 기용하면 호남 민심도 변할 것 같은데요.

“내가 이야기할 것은 아니죠.” 웃어넘겼다.

일어나기 전, 윤석열 정부의 숨은 실세로 불리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에 대해 물었다. “김한길 전 대표와는 소통은 잘하나요.” “네 잘 됩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체 회의 장면이 떠올랐다. 윤 당선인 좌우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자리했다. 여기에 국민의당 출신의 박주선 위원장까지 더하면. 국민의힘 인사가 아닌 반문의 집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중책을 맡았다. 이중 실세도 있을까? “실세도 열매를 얻을 실(實) 자가 있다면 잃을 실(失) 자도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잃을 실(失) 자야. 나도 실세는 실세예요. 한자가 달라서 그러지(웃음).”

“하하.” 배석자까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 또 봅시다.” “네.”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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