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옷 논란에 특활비는 뒷전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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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옷 논란에 특활비는 뒷전 [주간필담]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2.04.1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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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연맹, “언론과 정치권, 납세자 선의를 진영싸움으로 호도" 비판
개인 도덕성 아닌 ‘잘못된 제도’ 문제…盧·MB·朴 정부 때도 문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2018년 프랑스 국빈방문 당시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샤넬 한글 재킷이 30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전시돼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8년 10월 15일 김정숙 여사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김정숙 여사가 착용한 옷과 액세서리를 두고 이른바 '옷 값' 논란이 일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2월 10일 특활비와 김정숙 여사의 의전 비용 관련 내역 정보 공개를 청구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줘서인데요. 청와대는 이같은 법원 판결에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후 언론의 기사 제목은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으로 뒤덮였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김정숙 여사가 공개석상에서 입은 옷과 액세서리 수 등을 분석한 게시물이 올라왔고, 언론은 이를 기사에 인용했습니다. 김정숙 여사가 착용한 브로치 진품 여부, 박물관에 기증된 명품 브랜드 의복의 진위 여부 등을 문제 삼는 기사들이 올라왔고, 청와대는 이를 해명하기 바빴습니다. 비슷한 시기 김건희 여사가 후드티와 청치마 차림으로 서초동 자택 근처에서 목격된 사진을 김정숙 여사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행정 소송을 제기한 한국납세자연맹이 쟁점으로 삼은 '특활비 오남용' 문제는 관심에서 밀려났습니다. 납세자연맹이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내 “언론과 정치권이 ‘특수활동비 공개’ 승소는 뒷전이고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며 "사회진보를 위한 납세자들의 선의를 진영싸움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말로 언론 행태를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옷 값 논란의 본질은 청와대가 그간 국민 세금으로 편성한 특수활동비의 투명성을 지키지 못한 데 있습니다. 김정숙 여사 의류 구입에 특활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충분히 제공했다면 논란이 불거졌을까요. 청와대는 법원의 “청와대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과 김정숙 여사의 옷값 등 의전비용, 워크숍에서 제공한 도시락 가격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국민은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수활동비 오남용 가능성으로 문제가 제기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상문 전 비서관이 특활비를 횡령했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이 있었습니다. 

특활비는 국방·외교·안보 등 사유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적절치 않은 용도로 사용된다 해도 국민들이 알 도리가 없습니다. 영수증 첨부 없이도 예산을 쓸 수 있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안보·외교·수사·사생활 관련 내용은 비공개로 하지만 한국처럼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는 건 예외적이라고 합니다.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특활비가 사적으로 남용돼도 확인할 길이 없고, 수사 없이 청와대 해명 진위를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신혜현 부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배우자로서 의류 구입 목적으로 특수활동비 등 국가 예산을 편성하여 사용한 적이 없고, 사비로 부담했다"고 말하는 동시에 "영부인으로서의 외교 활동을 위한 의전비용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예산을 일부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 수준'의 기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납세자연맹은 "특활비 오남용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 보다 잘못된 제도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비공개로 쓸 수 있는 감시 사각지대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면 쉽게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는 거죠. '옷 값', '명품 진위 여부' 등 가십만 논해서는 이 일이 근본적으로 '제도의 문제' 때문에 불거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2016년 12월 당시 민주당 유송화 부대변인은 "4년간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새 옷 총액이 7억 400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예산으로 옷값을 냈다면 공금횡령이고 다른 이가 옷값을 냈다면 뇌물을 받은 것. 1만원 쓰는 데도 고민하는 서민 심정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옷을 문제 삼은 적 있습니다. 정권 교체를 앞둔 지금 당시 발언이 부메랑처럼 현 정권에게 돌아왔습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은 뒤로 한 채 자극적인 내용으로 트집 잡아 심판하는 방식은 여·야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옷은 국내와 다른 방식으로 언론에 조명됐습니다. 그녀 옷에 관한 기사는 5년 연속 같은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긴 바지 차림을 한 모습, 16년간 색깔만 다른 같은 디자인의 재킷을 돌려 입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이 국격을 높이는 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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