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타살의혹으로 본 박정희 정권의 4대 테러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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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타살의혹으로 본 박정희 정권의 4대 테러 의혹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08.17 08:0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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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DJ 초산테러와 납치 등으로 고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기자)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일어난 크고 작은 정치인 테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는 테러 의혹은 1969년 일어난 ‘김영삼 초산테러’에서부터 19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암살사건’까지 다양하다. <편집자 주>

▲ 타살의혹이 일고 있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 ⓒ뉴시스

1969년엔 김영삼(YS)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가 상도동 집으로 귀가 하던 중 승용차에 괴한들이 초산을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YS는 집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의식적으로 차문을 잠궜다. 다가선 괴한들은 YS의 차문을 열라고 소리쳤고, 그래도 문을 열지 않자 차 문에다 초산을 뿌리고 달아났다.

1973년 8월에는 일본에 체류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일본 도쿄의 팔래스 호텔에서 납치돼 외교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다.

백주대낮에 일본 수도인 도쿄 한복판에서 일어난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은 중앙정보부의 소행으로 심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슬이 퍼런 상황에서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보다못한 YS가 1973년 9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총리 김종필, 내무장관 김현옥, 법무장관 신직수를 상대로 한달여 전 일본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다.

YS의 추궁 이후,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범행 배후로 의심됐고 미국과 일본 정부도 이를 확인했지만, 정부는 이름뿐인 수사본부를 꾸리고 보도 통제에만 급급했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중앙정보부의 개입은 확인됐다. 하지만 살해 목적이 있는 납치였는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 있다.

1975년에는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장준하 선생이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지난 37년 간 타살의혹이 일었다.

장 선생은 유신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당시 민주회복을 위한 제2차 100만인 개헌 서명운동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60~70년대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민주회복을 위해 박정희 정권과 싸웠다.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이 사라졌다. 이른바‘김형욱 암살사건’으로 알려져 사실자체가 오랫동안 미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05년 국정원에서 과거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김형욱을 프랑스에서 암살했다고 발표해 전모가 드러났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 “박정희 정권 때 자행된 테러는 따지고 들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초산테러나 김대중 납치 장준하 죽음 등은 우리 정치권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꼭 밝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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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사 2012-08-17 15:11:35
칠흙같던 어둠속에서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치지도자들이 반성문 써놓고 모두 외국으로 도망갔을 때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직선제 개헌에 물꼬를 트고, 03이의 생애를 보면 1111님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겁니다.

1111 2012-08-17 12:30:26
늙어선 아니죠..그가 대통령 된 이후 나라가 산으로 갔음. 신자유주의 원흉, 친재벌 반 정당개혁..ㅋ

오옷 2012-08-17 08:27:35
김영삼이 젊었을 때는 멋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