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이 하나 더 붙었다”…고개 든 ‘2022 조상우들’ [한탕사회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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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이 하나 더 붙었다”…고개 든 ‘2022 조상우들’ [한탕사회➂]
  • 장대한 기자 한설희 기자
  • 승인 2022.05.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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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템임플란트·우리은행·LG유플러스·클리오·아모레퍼시픽 등 연일 횡령
내부 제재 수단 미비…내부고발 인센티브 지급·경제사범 처벌 강화 목소리
2010년대 9급 공시족, 코인충이 되다…구직 없이 '빚투'하는 2030 늘어나
노동소득 경시 분위기, 한탕주의 꽃피워…'쾌락적 소비'에 중독된 MZ세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장대한 기자 한설희 기자]

횡령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내부 감시나 통제가 허술한 틈을 노려 회삿돈을 빼돌렸고, 이를 주식·코인·불법도박 등 투자 밑천에 사용했다. 실제로 오스템임플란트 전 팀장은 횡령금액 중 1400억 원 이상을 동진쎄미캠 주식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봤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횡령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내부 감시나 통제가 허술한 틈을 노려 회삿돈을 빼돌렸고, 이를 주식·코인·불법도박 등 투자 밑천에 사용했다. 실제로 오스템임플란트 전 팀장은 횡령금액 중 1400억 원 이상을 동진쎄미캠 주식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봤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2022년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조상우의 시대다.

최근 전(全)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조상우(박해수 분)는 서울대 경영대학에 수석 합격해 승승장구한 엘리트다. 하지만 그는 욕심에 눈이 멀어 회삿돈을 횡령, 위험 상품에 투자했다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명예가 실추된 채 게임에 참가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올해 들어서만 기업 횡령 사건이 벌써 10여 건에 달한다. 지난 1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재무관리 직원이 회삿돈 2215억 원을 빼돌린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은행(614억 원) △서울 강동구청(115억 원) △계양전기(245억 원) △LG유플러스(80억 원) △클리오(19억 원) △아모레퍼시픽(35억 원) 등에서 임직원이 회삿돈을 횡령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최근에는 신한은행, MG새마을금고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펼쳐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다고 해도 횡령 규모가 너무 크다. 이전 세대에서 발생했던 횡령 사건보다 ‘0’이 하나 이상 더 붙어 있는 금액”이라며 “개인의 도덕적 해이 정도로 취급할 수 없는 사회병리현상에 가깝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횡령 혐의를 받는 직원들 대부분이 상당 금액을 ‘한탕’을 위해 썼다는 사실이다. 횡령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내부 감시나 통제가 허술한 틈을 노려 회삿돈을 빼돌렸고, 이를 주식·코인·불법 도박 등 투자 밑천에 사용했다.

실제로 오스템임플란트 전 팀장은 횡령금액 중 1400억 원 이상을 동진쎄미캠 주식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봤다. 계양전기 직원은 비트코인에, 우리은행 직원은 고위험 파생상품에 회삿돈을 투입했다.

비단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동구청 공무원도 폐기물처리시설 설치기금 115억 원을 횡령했다가 77억 원 가량을 주식 투자로 잃었다. 공직 사회라 해서 한탕주의를 비켜갈 순 없던 것이다.

 

횡령범 키운 기업·사회 시스템…내부관리·형량 강화 목소리↑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탕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일차적 이유로 제재 수단의 미비를 꼽는다.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고삐가 회사와 사회 시스템 안에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강화를 선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회계 시스템이 전산화되면서 전문 인력이 줄어든 현상을 고려해 추가적인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횡령 동기를 원천 억제하기 위해선 엄격한 회계 검토 절차가 필요하며, 이와 동시에 인센티브·포상금 등 내부고발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일각에선 경제사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형법상 경제사범이 범죄행위로 취득한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득이 50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된다. 다만 무기징역 없이 5년 이상의 징역에서 형량이 결정되는 일이 많아, 법의 실효성 논란이 지속 제기돼 왔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시장리포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횡령·배임죄에 대한 권고형량 기준은 2009년 시행안에 머물러 있다”며 “범죄 이득액이 300억 원 이상으로 권고형량이 가장 높은 ‘제5유형’에 해당하더라도, 기본 형량기준은 5~8년이다. 어느 정도의 형량이 합리적일지 대한 구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이상직 전 의원의 경우, 500억 원대 횡령·배임죄를 저질렀음에도 징역 6년형 선고에 그쳤다. 1년에 80억 원을 탕감받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경제범죄는 몇 년 살다 나오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특히 술·담배 관련 범죄와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다른 나라에 비해 관대한 편이다. 이 역시 최근 빈번해진 횡령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시족, 코인충이 되다…한탕주의 득세 배경엔 ‘경제 불평등’


'MZ세대'로 구분되는 2030 청년들은 구직활동에 나서는 대신 단기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시족'에서 '코인충'(蟲)으로 변했다 ⓒ 연합뉴스
'MZ세대'로 구분되는 2030 청년들은 구직활동에 나서는 대신 단기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청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시족'에서 '코인충'(蟲)으로 변했다 ⓒ 연합뉴스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10년대 대한민국은 청년실업이 고질화되면서 공무원 열풍이 심화됐다. 모두가 공시에 매달리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공시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가장 낮은 직급인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11년 93.3대 1까지 치솟았다.

초등학생들은 언젠가부터 장래 희망란에 공무원을 적어냈고, 대학에 가지 않고 곧장 노량진 학원가로 향하는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사상 최악의 고용 불안과 취업난으로 연결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철밥통’ 공무원이 각광받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 간의 사회 현상을 비웃듯, 202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투자 열풍, 아니 광풍이 시작됐다. 그렇다 보니, 9급 공무원 경쟁률은 지난 2019년 39.2대 1에서 올해 29.2대 1까지 떨어졌다. 이는 최근 25년간의 기록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안정된 공무원의 삶을 꿈꾸던 청년들은 점점 취업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청년세대(15~29세) 구직단념자는 2015년 대비 18.3%나 늘었다. 20대 노동자(경제활동참여인구) 비율은 62.2%로,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63.8%)보다도 떨어졌다.

반대로 2020년 하반기 기준 20대의 누적 증권계좌 수는 전년 대비 240만 개 늘었고, 신용거래는 133% 올랐으며, 신규 대출액은 8조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증권계좌 잔고와 예수금도 전년 대비 각각 57%, 193% 증가했다. 신용으로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빚투’ 20대가 폭증한 셈이다.

‘코인판’에 뛰어드는 MZ세대 움직임도 도드라지고 있다.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이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투자자 현황을 조사해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2021년 1분기 암호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249만5289명) 중 20대는 32.7%(81만6039명), 30대는 30.8%(76만8775명)로 나타났다. 신규 투자자 10명 중 6명 이상이 2030 청년 세대인 것이다.

이제 ‘MZ세대’로 구분되는 2020년대 청년들은 구직활동에 나서는 대신 단기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청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시족’에서 ‘코인충(蟲)’으로 변모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0대가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갈수록 심화되는 자산격차와 사회 전체적으로 공고해지는 불평등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020년대 MZ세대의 빚투 열풍과 연이은 횡령 사건은 자라난 토양(土壤)이 같다. 둘은 ‘노동소득 경시’라는 씨앗에서 피어났다. 노동소득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탕주의가 꽃피고, 직장을 투기와 도박의 장으로 활용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칼럼을 통해 “경제적 불안정을 느낄 때 욕구불만이 생기고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경제적 불안감이 높을수록 도박을 시도하는 빈도와 돈을 잃을 확률이 높아지며 횡령 같은 부정행위를 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노동소득 경시하는 사회…“월급 모아도 의식주 보장하기 어려운 나라”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자산격차 확대와 공고해진 불평등은 사회 불안정성을 키웠다. 한탕주의는 만발한 불안감을 먹고 덩치를 키웠고, 횡령을 배설한 셈이다. 사회에선 이번 횡령 사건을 두고 ‘착실하게 돈 모으는 사람이 바보 되는 세상’이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자산격차 확대와 공고해진 불평등은 사회 불안정성을 키웠다. 한탕주의는 만발한 불안감을 먹고 덩치를 키웠고, 횡령을 배설한 셈이다. 사회에선 이번 횡령 사건을 두고 ‘착실하게 돈 모으는 사람이 바보 되는 세상’이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시사오늘 그래픽=김유종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근로소득만으론 집 한 채 사지 못하고,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서울 내 11만5000가구의 아파트 가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30평형 기준 매매가는 2017년 5월 6억2000만 원에서 2021년 5월 11억9000만 원까지 2배 가까이 올랐다. KB부동산 월간 부동산 통계치에선 올해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2억7722만 원으로 집계된다.

2020년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서 확인된 대한민국 근로자 1인당 평균 연봉이 3828만 원임을 감안할 때,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돈 한 푼 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33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더라도 누구나 내 집 마련의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이 같은 현실을 꼬집어 인기를 끌었다. 윤 대통령은 “3억5000만 원이면 하남에서 아파트 하나 못 사는데, 대장동 사업에선 그 돈으로 지금까지 8500억 원을 땄다”며 “정치인, 공무원들과 유착해서 ‘한탕’하면 10대에 걸쳐 먹고살 텐데 누가 일을 하겠느냐”고 일갈한 바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가계 재무 상태가 적자인 가구 수는 전체 2052만 가구의 17.2% 수준(354만 가구)으로 집계된다. 적자 가구의 평균 연간 경상소득은 4600만 원이지만, 이중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4500만 원으로 98%에 달한다.

돈을 벌어도 빚 갚기 빠듯하니, 결국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쉽게 현혹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자산격차 확대와 공고해진 불평등은 극도의 사회 불안정성을 키웠다. 한탕주의는 만발한 불안감을 먹고 덩치를 키웠고, 횡령을 배설한 셈이다.

실제로 사회에선 이번 횡령 사건을 두고 ‘착실하게 돈 모으는 사람이 바보 되는 세상’이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온라인에선 “방금 100만 원 넣어서 5000원 벌었다고 자랑한 내가 한심해질 지경”(@jji*****), “실질소득 정체, 취직은 어렵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고, 물가양육비용은 계속 올라가니 탈출구가 필요하다. 한탕주의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SKL*****), “횡령·주식·코인·투기 등 한탕주의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월급을 착실하게 모아서 안정적인 의식주를 누린다는 보장이 이 나라엔 없다”(@gre*****)는 반응이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들이 MZ세대의 낮은 미래 지향성과 높은 소비 성향으로도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평생을 저축하며 가정을 일궈온 부모세대와는 달리, MZ세대가 투자소득에 무게를 두고 일확천금 또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꿈꾸며 살아가는 경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젊은 세대는 이제 입사를 해도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달로) 미래는 길어졌는데, 직업 수명은 짧아지고 경제 성장률은 2%대에 머물러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며 “반면 브랜드(명품) 선호도나 소비 열망은 더 높다. 현재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없으니 쾌락적 소비에 집중하고, 그러다보니 기회주의와 한탕주의에 빠지려는 위험성이 더욱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횡령 사건이 임직원간 신뢰 상실과 세대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크다”며 “사건의 경제사회적 맥락을 읽어 시대를 이해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담당업무 : 자동차, 항공, 철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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