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 고마운 친구 꽃들과 함께 [일상스케치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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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친구, 고마운 친구 꽃들과 함께 [일상스케치㊴]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6.05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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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존재는 절대적 가치
외로울 때 함께 하는 동반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계절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다. 연둣빛이 청록색으로 짙어지고, 봄이 농익어 여름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다. 산야는 계절의 여왕을 만끽하듯 화려함이 넘친다. 뜨락의 꽃들은 다양한 향긋함을 뽐내고 코끝을 싱그럽게 자극한다.

이에 시골집 언저리에 핀, 혹은 내가 심어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여기는 소박한 꽃들을 소개해본다.

자연이 그리는 수채화

이른 봄꽃이 지고나면 산야 온통 피어나는 찔레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이른 봄꽃이 지고나면 산야 온통 피어나는 찔레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찔레꽃 피는 언덕 남쪽나라 내 고향... 이란 유행가 가사가 절로 입에서 맴돌며 흘러나오니, 5월의 주인공은 단연 찔레꽃으로 꼽고 싶다. 화려한 장미보단 소박한 모양새를 지니고 있지만, 천지를 뒤흔드는 은은하고 향긋한 꽃내음은 단연 최고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정겨운 새소리와 함께 날 깨운다.

애기똥풀이 지천에 깔렸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애기똥풀이 지천에 깔렸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이어 주변 논두렁과 산기슭, 집 언저리엔 애기똥풀이 지천에 깔리며 노란 귀여움을 뿜어내고 있다. 4월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온갖 꽃들이 지고 새로운 들꽃이 자리를 대신하는 시점, 애기똥풀이 양지바른 곳이며 낮은 산, 들에 또 동네 주변 길가에서도 온통 존재감을 드러낸다. 덕분에 연초록 캔버스에 샛노란 터치로 채색된 자연 정원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가족 같은 꽃들과 만남

만개하여 풍성한 조팝나무꽃들의 향연. ⓒ정명화 자유기고가
만개하여 풍성한 조팝나무꽃들의 향연. ⓒ정명화 자유기고가

예전, 만약 아파트를 벗어나 전원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게 된다면 조팝나무를 심어야지 생각한 적이 있다. 수수하면서도 탐스런 하얀 송이 꽃이 유독 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때가 되어 두 그루를 심었더니 매년 풍성한 새하얀 꽃이 바람에 일렁이며 아름다운 선과 그림을 그려낸다.

로즈마리의 보랏빛 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로즈마리의 보랏빛 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그리고 몇 년 전에 심은 허브, 로즈마리. 이제 거의 수목같이 자라 듬직한데, 풍채와 모양새완 어울리지 않게 매년 앙증맞은 꽃을 피운다. 일 년 내내 푸르러, 향긋한 잎을 뜯어 허브티로 맛보던 것을 넘어 꽃까지 보여주니 정말 고마운 존재다.

아름다운 생명체들

정열적인 붉은 장미.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열적인 붉은 장미. ⓒ정명화 자유기고가

그럼에도 정원의 헤로인은 뭐니 뭐니 해도 장미가 아닐까. 꽃들의 여왕 장미는 화려한 본새와 함께 향기로 날 유혹한다. 슬며시 다가가 코끝에 닿으면 어린 손주 볼살처럼 보들보들하다.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더 유명한 모란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더 유명한 모란꽃. ⓒ정명화 자유기고가

또 다른 친구 모란. 마치 백목련처럼 잠시 피었다 지는 짧은 만남이지만, 화려함과 도도함을 두루 갖춘 듯 해 유독 아낀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 심긴 커다란 꽃송이 인상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남아서일까.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꽃망울을 드러내, 반가움에 들여다보다 절로 그 고혹미에 빠져든다.

그와 동시에 시인의 흐느낌이 절로 들리는듯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원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의 어느 날 그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지고

뻗어 오르던 내 보람은 서운케 무너졌느냐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태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자연의 생명력을 배우고파

꽃이 유난히 예쁜 마삭줄. ⓒ정명화 자유기고가
꽃이 유난히 예쁜 마삭줄. ⓒ정명화 자유기고가

잡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마삭줄. 마삭줄이 피워내는 꽃들은 찔레꽃과 조화를 이루며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가 가히 환상적이다. 어린 꽃이 풍성한 잎 사이로 얼굴을 내밀면 무척 반갑다.

마삭줄은 끝없이 뻗어나간다. 번식력이 대단해 뒷마당이나 담장을 타고 마치 점령군처럼 영역을 넓힌다. 그래서 어디까지 주변을 잠식하나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단아하고 깔끔한 백장미. ⓒ정명화 자유기고가
단아하고 깔끔한 백장미.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고하고 단아한 백장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렇게 각양각색 꽃들의 시간차 등장으로 나의 시야를 풍족하게 채워준다. 한 송이 한 송이 소중한 친구들이 정말 위로가 된다. 다만, 꽃들과 만남은 짜릿한 행복을 주나 짧아서 슬프고 애달프다. 다음 해를 기약하긴 해도 더욱 간절하고 귀하다.

수십 년 오랫동안 가꾼 특별한 정원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작은 수고에 이만큼 화답해주는 자연에 감사함이 절로 느껴지며 때론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밀밭의 풍성함이 시선을 끈다. 농군들이 일구는 논두렁에 심긴 밀밭길을 따라 걷노라면 심신이 평온해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밀밭의 풍성함이 시선을 끈다. 농군들이 일구는 논두렁에 심긴 밀밭길을 따라 걷노라면 심신이 평온해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으로의 회귀

불안하고 답답함에 뜰을 요모조모 살펴보니, 이토록 어여쁜 화초들이 위로하듯 미소 짓고 있었다. 대수술을 앞둔 내 마음의 심난함을 아는 걸까. 곱고 선연한 풍경을 보면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순수하고 계산적이지 않은 자연의 품, 푸근하고 따스해 진정한 안식에 이른다. 게다가 아낌없이 무한제공되는 청량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야, 비로소 깊고 편안한 숨을 쉴 수 있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그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도시로 떠나곤 한다. 도심과 시골을 오가며 지내보면, 도시의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은 이기적이고 삭막한 인간관계처럼 드라이하다. 아무리 현대화되어 편리성과 효율성을 보장 한다한들, 자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 하위 개념 같단 생각이 든다.

인간사가 만만치 않다. 돈보다 명예를, 명예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하지 않나. 또 한 번의 수술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며 상념에 잠겼다. 이 지루한 끝은 어디인가 하고. 그때 불현듯 떠오르며 외롭고 힘들 때 진정한 용기를 주는 꽃들의 존재.

자연과 꽃들은 긴장되고 답답한 심경을 어루만지며 뻥 뚫어준다. 화초만큼 더 좋은 친구가 있을까. 영원한 내 편인 그들 속에서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내가 찾아주길 목 놓아 기다릴 고마운 친구이자 안식처. 자연으로 돌아가면 날 반길 꽃들이 있다 여겨지니 외롭지 않다. 여건이 되면 평생 정원을 가꾸며 꽃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여망에 불탄다. 잠시 떨어져 있다 만나도 항상 곁에서 든든한 우군이 되는 다양한 꽃들과의 교감, 이 소중한 만남을 영원히 이어가리라. 자연 예찬을 넘어 결국 머물 마지막 종착지인 자연 속으로.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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