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따라 바뀌는 여야 당명 변천사…3연패 민주당은?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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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 따라 바뀌는 여야 당명 변천사…3연패 민주당은? [옛날신문 보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2.06.22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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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민주자유당→1997년 한나라당→2020년 국민의힘까지
1987년 평화민주당에서 DJ 정계 복귀 선언한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부터 분당 반복…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까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시사오늘>은 1987년 이후를 기점으로 여야의 당명 뿌리를 살펴봤다. ⓒ 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정계개편과 정당의 당명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합당과 분당 세포분열을 거치며 당명도 변천사를 겪어왔다. 뿌리가 돼준 당명도 있고, 선거 전후 탈바꿈에 활용된 경우도 있다. 어느 당명일 때는 연승을 거뒀다. 연패한 적도 있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당명도 있고, 단기간 교체되기도 했다. 지도자와 주류가 누구냐에 따라, 선거 성패에 따라 명칭도 갈렸다. 당명은 그렇게 정당의 발자취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지금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이르는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 왔을까. <시사오늘>은 1987년 이후를 기점으로 옛날신문을 통해 여야 당명 뿌리부터 거슬러 올라가 봤다. 
 

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명 뿌리를 살펴봤다. ⓒ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명 뿌리를 살펴봤다. ⓒ 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1990년 1월 3당 합당해 ‘민주자유당’ 출범…보수 정당 뿌리
5·6공 잔재청산 목적 ‘신한국당’으로 변경…15대 총선 선전
1997년 신한국당+민주통합당→‘한나라당’ 변경…15년간 유지


1987년 이후 보수 정당도 변화를 겪는다. 3당 합당을 거치며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당으로 거듭난다. 이에 현 국민의힘 뿌리는 19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이다.

1993년 2월 김영삼은 민자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14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다. 집권 3년차인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다. 문민정부는 ‘5·6공 잔재청산’ 등을 구호로 내걸고 민자당 쇄신작업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5·6공 흔적이 남아 있는 민자당이라는 당명을 바꾸자는 의견이 모아져 1995년 12월 6일 ‘신한국당’으로 변경한다.

 

-1995년 12월 7일 아일보 「검은과거 단절」이 최대과제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95년 12월 7일 <동아일보> 「검은과거 단절」이 최대과제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민자당은 6일 당무회의를 열고 당명을 신한국당(가칭)으로 변경했다. 90년 1월 22일 민정당의 노태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출범시킨지 5년 10개월만이다. … 손학규 대변인은 “우리 당은 당명 변경을 계기로 잘못된 과거 관행과의 영원한 단절을 통해 깨끗한 정치, 대화합의 정치를 구현해 「통일된 21세기 일류국가」를 건설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1995년 12월 7일 <동아일보> 「검은과거 단절」이 최대과제

당명 변경 후 치러진 첫 선거인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139석(46.48%)을 차지하며 선전한다. 하지만 1997년 YS 차남 비리 사건,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 파동, 외환위기 등 사건이 겹치며 문민정부 임기말 지지율이 떨어진다.

15대 대선 직전인 1997년 11월 21일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는 통합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한다. 통합민주당은 김대중과 동교동계가 1995년 민주당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로 독립할 때 따라가지 않고 잔류한 인사들이 남아있던 정당이다.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겸 명예총재로 추대됐고, 조순 민주당 총재가 초대 총재로 선출됐다. 

1997년 11월 22일자 한겨레 ‘한나라당 공식 출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97년 11월 22일자 한겨레 ‘한나라당 공식 출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21일 합당 전당대회를 열어 합당을 의결함으로써 한나라당이 공식 출범했다. (중략)

한나라당은 이날 9개항의 강령과 62개 항의 기본정책을 의결해, 대통령제를 고수하고 금융실명제 및 부동산 실명제를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창당 선언문에서 “이 땅의 정치를 40여 년이나 지배해온 낡고 부패한 3김 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한나라당의 기치를 들어올린다”며 “국민대통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정치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1997년 11월 22일자 <한겨레> ‘한나라당 공식 출범’

한나라당은 창당선언문에서 “이 땅의 정치를 40여 년이나 지배해온 낡고 부패한 3김 정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한나라당 기치를 들어올린다”고 밝히며 출범했다. 

한나라당은 15년간 존속한 당명이다. 등기상으로는 1997년부터 2020년까지 22년 3개월 동안 존속한 최장수 정당이기도 하다. 15년간 2·3·4·5회 지선과 16·17·18대 총선을 모두 ‘한나라당’ 이름으로 치렀다. 성공사도 있고 흑역사도 있는 등 산전수전을 겪으며 오래도록 살아남은 당명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창당 이후 치러진 첫 선거는 1998년 6월 2회 지방선거였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공동정권을 구성한지 4개월 지난 시점이었다. 한나라당은 수도권·호남·충청권 등 광역단체장 16곳 중 10곳을 공동여당이 가져가며 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집권 여당의 허니문 기간인 점을 고려하면 야당으로서 비교적 선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당시 야당일 때도 존재감이 컸다고 평가받는데,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는 133석(48.71%)을 차지해 132석(48.35%)을 차지한 연립여당에 1석 차이로 제1당을 차지한다. 2002년 3회 지선, 2006년 4회 지선에서 압승을 거둔다. 여당에 31석 차이로 패한 2004년 17대 총선은 제외다. 당시 한나라당은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역풍을 맞았다. 

 

MB정부 말기 박근혜 비대위 체제 돌입…‘새누리당’ 변경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탄핵…‘자유한국당’ 돼
중도·보수 세력 합당해 ‘미래통합당’ 창당→‘국민의힘’ 까지


‘한나라당’ 당명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무렵인 2012년 2월 13일까지 유지된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디도스 사건 등을 겪고 레임덕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한다.

2011년 당시 한나라당은 재보궐 선거 패배에 이어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접속을 막기 위해 디도스(DDoS) 공격을 가한 의혹, 이명박 정부 레임덕 등에 맞물린 위기 상황이었다. 이에 박근혜 당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당명 변경을 결정한 비대위 회의에서 “우리 당이 당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시대 정신에 맞게 당의 가치와 방향을 전면 수정했고 또 국민 눈높이에 맞게 국민이 정말 원하는 인물을 공천할 수 있는 공추위 구성도 다 마쳤다”며 “이제 당의 간판인 당명까지 바꾸게 된다. 이렇게 생각과 사람과 이름까지 바꾸게 된다면 우리 당은 완전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명 변경 뿐만 아니라 김종인, 이준석, 손수조, 이자스민 등 새로운 인사를 대거 영입하고 공천에도 변화를 준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휘두르며 친박(친박근혜)계를 ‘학살’했던 친이(친이명박)계는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공천 탈락이 확정된 지역구 현역 의원 16명 중 13명이 범친이계로 분류된다. 공천을 주도한 친박계는 2008년 총선 공천에서는 당시 40여 명의 현역 의원 중 16명이 공천에 탈락했다. 그러나 박근혜 돌풍에 힘입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등으로 18대 국회에 60여 명이 진출해 오히려 세를 확대했다. 

-2012년 3월 6일 <동아일보> [4·11총선 여야 대진표 윤곽]새누리당 ‘복수당한 친이’… 민주통합당 ‘눈물의 호남선’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과반이 넘는 152석(50.66%)을 차지하고 12월 18대 대선에서 51.55% 득표율로 승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몰락한다. 이에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전면 쇄신하고자 2017년 2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명 후보군으로 ‘보수당’, ‘보수의힘’ 등을 검토하는 등 타깃을 노골적으로 보수층에 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1월에는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탈당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하는데 중도우파들이 사라지자 자유한국당 내부 극우화는 더욱 심화됐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5월 19대 대선, 2018년 6월 7회 지방선거, 2018년 재보궐 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한다. 

2020년 2월 총선을 앞두고는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이들이 창당한 새로운보수당과 미래를향한 전진4.0, 자유한국당 등 분열된 중도·보수 세력이 합당해 ‘미래통합당’을 창당한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안철수계 의원 일부도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180석(60%)을 내주며 미래통합당은 103석(34.33%)만 확보하며 참패했다. 

이후 당을 쇄신하고자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출범한다. 2020년 8월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은 보수정당 대표 최초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등 당 쇄신 작업을 확장한다. 태극기 집회와 결별, 이·박 전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도 이어졌다. 

정당정책 개정 등 중도 확장 정책을 이어온 김종인 비대위의 당 쇄신 작업은 당 조직 혁신과 ‘새 피 수혈’로 정점을 찍는다. 이어 미래통합당 비대위는 당명 개정에도 착수한다. 공모전을 통해 접수된 1만6000여 건 가운데 ‘국민’이 3300여 건으로 가장 많은 데 착안해 당명에 반영한다. 9월 ‘국민의힘’으로 변경됨에 따라 미래통합당은 7개월간 사용되는 데 그친 정당 이름이 됐다. 국민의힘은 당명 개정 이후 4·7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부산시장이 당선되며 4연패를 끊어낸다. 국민의힘 당명은 20대 대선, 제8회 지선을 승리하며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1987 ‘평화민주당’→1991 ‘신민주연합당‘→‘민주당’ 신설합당까지
1995년 DJ 정계복귀 선언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새천년민주당 변경


1987년 11월 12일 <동아일보> 김대중씨 총재-후보 추대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현재 민주당의 뿌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은 13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 문제로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과 대립한다. DJ와 동교동계 인사들은 1987년 10월 29일 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다. 그해 13대 대선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YS에 이어 3위에 머문다.

평화민주당은 12일 오전 … 창당전당대회와 대통령후보지명 전당대회를 잇따라 열고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을 당의 총재 및 대통령 후보로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김 총재는 이날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번 기회에 일부 정치군인의 정치개입 악습을 영원히 단절시키고 1천년 이상 유지돼 온 문민정치의 전통을 재확립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바로 이것이 내가 대통령 후보 추대를 수락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1987년 11월 12일 <동아일보> 김대중씨 총재-후보 추대

1991년 4월 8일자 &lt;경향신문&gt; ‘신민당 불안한 출범 행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91년 4월 8일자 <경향신문> ‘신민당 불안한 출범 행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91년 4월 9일 DJ는 평민당에 재야 인사를 영입해 ‘신민주연합당’으로 당명을 변경한다. 당시 평민당은 호남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전국 정당으로서 발돋움할 필요성이 있었다. 

평민당이 친 김대중계 재야세력(신민주연합)을 흡수해 새로 출범하는 신민당은 한마디로 광역의회의원 선거에서 지역당의 이미지를 탈피, 비호남권의 교두보를 장악하고 차기 대권주자로서 김대중 총재의 위상을 강화시킨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중략)

결국 신민당이 광역선거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 경우 김 총재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단일화 압력으로 주도권을 과시할 것이며 패배할 경우에는 통합론=2선 후퇴론의 증폭으로 대권 구상 자체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리라는 관측이다. 

-1991년 4월 8일 <경향신문> 신민당 「불안한 출범 행보」 지도체제 잡음·일부 이탈 움직임 겹쳐

그러나 신민주연합당은 1991년 6월 실시된 광역의회의원 선거결과 165석(19.05%)을 차지하며 민주자유당(564석·65.12%)에 크게 패한다. 이에 DJ의 신민주연합은 1991년 9월 16일 이기택 당시 총재가 이끌던 꼬마민주당과 신설합당해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다. 이후 1992년 민주당이 DJ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지만 YS에게 패하고,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1995년 7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9월에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다. 이때 동교동계 인사들이 민주당을 집단 탈당하며 국민회의로 넘어간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잔류 인사들은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한 뒤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된다. 

1997년 15대 대선은 DJ의 승리로 끝나는데, 새정치국민회의로 16대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DJ는 2000년 1월 386세대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각계 전문가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한다. 

창당준비위원회는 법정지구당 창당대회를 서울 등 수도권과 경쟁자가 별로 없는 경북, 부산 등 영남권에서 집중 개최하고, 특히 조직책으로 참신성과 개혁성 및 전문성을 갖춘 40-50대 인사들을 대거 선정함으로써 신당의 개혁적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제고시켜 나갈 방침이다.

-1999년 12월 20일 <연합뉴스> 민주신당 창당준비 가속화

결과적으로 새천년민주당은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1석 차이로 제1당을 내준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말에 접어들며 아들 비리 사건이 발생하는 등 레임덕을 겪고 지지율이 하락하지만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명 ‘노풍’의 주인공이 된다. 이어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 

 

참여정부 이후 지역주의 타파·정치개혁 내걸고 ‘열린우리당’ 창당
17대 총선 이후 선거 연패…‘대통합민주신당’ 이후 분당·합당 반복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창당→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유시민 포함 개혁국민정당 일부가 합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 정치개혁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창당대회에 보낸 축하메시지를 통해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하는 열린우리당이 무엇보다 국민통합과 깨끗한 정치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자금 문제가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이상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정치개혁의 역사적인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악용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루속히 선거제도의 개선에 착수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잘못된 정치구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3년 11월 11일 <동아일보> 盧 대통령 “정치자금 모두 밝혀야”…열린우리당 창당 메시지

한나라당은 16대 대선 당시 일명 ‘차떼기’ 방식으로 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 국민의 질타를 받는데, 이어 2004년 3월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사건까지 벌어져 분노한 국민들이 잇따라 촛불시위를 행한다. 이러한 민심은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50.83%)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한나라당 121석(40.46%), 새천년민주당 9석(3.01%), 자민련 4석(1.33%)을 얻는데 그친다. 

열린우리당의 이러한 승리는 두 달 만에 반전되는데, 2004년 6월 재보선에서 패배를 시작으로 2006년 지방선거까지 연패하며 빠르게 쇠락한다. 

이후 ‘민주당’ 계열은 분당과 합당을 반복한다. 2007년 8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지만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당시 민주신당 대선후보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20% 이상 차이로 패배하며 야당이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8년 2월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하고 4월 18대 총선에서 81석(27.09%)을 차지해 153석(51.17%)을 차지한 한나라당에게 참패한다. 2008년 7월에는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하고 2012년 18대 대선 전 시민통합당과 ‘민주통합당’으로 신설합당하지만 패배하고 2013년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변경한다. 

2014년 3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는데 6회 지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데다 2014년 7월 재보궐에서 새누리당에게 크게 패한다. 이에 안철수·김한길 당시 공동대표는 패배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에서 사퇴했다. 2015년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로 당선되며 12월에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변경한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승리하며 10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청와대에 입성한다. 이후로 7년 가까이 같은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80석 확보라는 사상 초유의 선거 승리로 기록된 21대 총선 이후 3연패(4·27 재보선, 20대 대선, 6·1 지선)했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이재명) vs 친문(문재인)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일각서는 당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분당이라는 일촉즉발의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이후 민주당이 10년간 분열을 겪고 탈당, 신당 창당, 합당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창당까지 왔는데 지금 민주당은 그 이전으로 회귀한 상황”이라며 “민주당의 제1과제는 3연패이 본질적 요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 체계적 분석없이 당권을 누가 갖느냐만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간다면 민주당 역사는 2016년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대표는 ‘3연패 본질적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전략과 리더십 부재·팬덤정치’를 꼽았다. 그는 “당파적으로 주도되며 국민들이 정쟁 도구로 내몰리고 있는 데 피로감이 극심하다”며 “나라의 중장기적 미래를 위한 개혁, 대한민국 구조적 모순 해결에 당력을 모으고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연전연승하는 국민의힘 당명은 기세가 좋지만, 친문과 함께 성장했고 쇠하기도 했던 더불어민주당 당명은 바람 앞에 촛불일 수 있다. 신 주류의 등장과 함께 쇄신과 다른 세력과의 신설합당 등을 목표로 새로운 당명으로 변경될 날이 올지 모른다. 

담당업무 : 정경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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