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당대표, 독이 든 성배’ 현실화?…여당 대표 수난사 계속 되나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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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당대표, 독이 든 성배’ 현실화?…여당 대표 수난사 계속 되나 [옛날신문 보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2.06.29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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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 수난사…이회창·한화갑·정동영·김무성·이낙연까지
정치력 내공 부족시 대권 앞에서 번번히 낙마…특유 돌파력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여당 대표는 당 의사결정과 공천 과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당 안팎에서 견제를 받는 자리다. <시사오늘>은 여당 대표직을 맡은 이후 험로를 걸은 정치인에 대해 알아봤다. ⓒ 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징계 문제를 둘러싸고 당 내부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대표는 ‘성 상납-뇌물수수 및 증거 인멸 교사 의혹’으로 윤리위에 회부됐으나 징계 여부 결정은 내달 7일로 미뤄진 상태다. 가장 낮은 수준 징계인 경고를 받더라도 총선 출마 등 이 대표의 차기 행보에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당 대표 자리에 오르기 전 “오히려 저에게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의 우려가 현실이 돼가는 모습이다. 대선과 지선을 모두 승리한 당의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정진석 의원에 이어 안철수·배현진·장제원 의원과 갈등을 빚는 모습은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의 ‘비공개 회동설’이 나오자 대통령실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여당 대표는 당 의사결정과 공천 과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소위 의전서열 7위로 인식된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인 만큼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 선거 승리를 이끌어야 하고 당내에 얽힌 계파 갈등이나 권력 투쟁 등도 해결해야 한다. 당 안팎에서 견제를 받는 만큼 위험 부담도 안고 있다. 실제로 여당 대표직을 맡은 이후 험로를 걸은 정치인이 많다. 

문민정부 이회창 전 총리, 국민의정부 한화갑 전 의원, 참여정부 정동영 전 장관, 이명박(MB)정부 정몽준 전 의원, 박근혜 정부 김무성·이정현 전 의원, 문재인 정부 이낙연 전 총리 모두 여당 대표를 맡았다. 다수가 대권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신한국당 총재 맡은 이회창 ’포용력 부족’ 평가多…15·16·17대 대선 패


이회창 전 총리는 1997년 신한국당 총재를 맡았다. 그는 서울대·경기고 출신에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화려한 이력과 청렴함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유력 대선 주자로 나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5대·16대·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낙선한다. 

이 전 총리는 다수에게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기 3개월여 전 <한겨레>의 1997년 6월 26일자 기사를 보면 당 내부에서 “논리를 앞세우다 보니 유연하지 못하다”, “꼭 도와줘야 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포용력’이 문제가 됐다. 신한국당 내 범민주계 모임(정발협)에서 ‘이 대표 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1997년 6월 26일 한겨레 ‘이회창 속앓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97년 6월 26일 한겨레 ‘대세몰이 멈칫 이회창 속앓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확보나 대의원들의 지지도에선 다른 후보들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당내엔 좀처럼 ‘대세를 잡았다’는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로 보면 ‘이회창 대세론’이 굳어질만 한데 실제로는 계속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물론 당내 최대 계보라 할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가 이 대표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이 대표 진영의 전략과 정치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중략)

이 대표 개인의 ‘성격’도 대세론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예비주자들을 두루 만난 민주계의 중진의원은 “이 대표와 다른 주자들간에 감정의 골이 너무 깊이 팬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감정의 골은 우선 대표직 사퇴문제를 둘러싼 공방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단 한사람의 주자도 중립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결국 ‘포용력’ 등 성격의 문제를 제기해 이 대표 자신의 귀책사유로 귀결된다. 

어느 고위당직자는 이 대표를 “너무 논리적으로 행동하려 한다”고 평했다. 비교적 중립적인 성향의 한 당무위원은 “논리를 너무 앞세우다보니 유연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이 “이 대표를 만나면 내가 꼭 도와줘야 할 사람이란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부터 ’반이회창’이 아니었던 정발협을 철저한 ‘반이회창’으로 만든 데엔 이런 탓이 크다는 게 당 주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1997년 6월 26일 <한겨레> 대세몰이 멈칫 이회창 속앓이 

이 전 총리는 19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경쟁자인 이인제 전 의원을 20% 차로 이긴다. 하지만 경선 결과에 불복한 이 전 의원이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대선 후보로 출마하며 위기를 겪는다. 대선이 김대중(DJ)-이회창-이인제 삼각구도로 재편되며 최종적으로 DJ(40.27%)에 1.53% 차로 패한다. 이인제 전 의원은 15대 대선에서 19.2% 지지율을 얻었다. 

이 전 총리는 김영삼(YS) 전 대통령과도 DJ 비자금 수사 및 IMF 경제 위기와 관련해 충돌하며 갈라선다. 대선 과정에서 ‘3김 정치 청산’을 강하게 주장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민련 김종필 전 총리와 ‘DJP 연합’을 공조해 승리를 이끌었다. 

 

민주당 한화갑 경선서 盧에 패…대권 포기
3金 시대 이후 당권-대권 분리 일반화 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8월 15일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8월 15일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말기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한화갑 전 의원이었다. 그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만 정치적 기반인 광주에서 노풍에 의해 3위로 패한 뒤 경선을 포기한다. 

제주에서 1위 득표로 기세등등하게 출발한 한 후보가 결정적으로 사퇴를 결심하게 된 것은 광주 경선의 참패 때문으로 풀이된다.자신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에서 3위로 처지면서 다른 지역 경선에서도 더이상 희망을 갖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중략)

한 고문은 그동안 대권에만 도전한다고 장담했지만 이는 경선 과정에서의 득표를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당권에 대한 의욕을 버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한후보는 본보와의 회견에서 “대권과 당권 모두 출마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당권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2002년 3월 19일 <국민일보> [한화갑 사퇴배경·문답] 당권 도전 ‘상처 줄이기’

한 전 의원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당 대표직을 사퇴한다. 이후 친노계를 비롯한 민주당 신주류 측이 새천년민주당을 대거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데 한화갑 전 의원은 신당 창당을 반대하며 새천년민주당을 지킨다. 새천년민주당은 쇠락을 거듭한다. 

2006년 12월 한화갑 전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의원직을 상실한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18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지만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다. 

3김 시대 이후로는 당권과 대권 분리가 일반화되며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하는 관례도 사라진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17대 대선 이어 4개월 뒤 총선 패배로 타격
한나라당 정몽준 6회 지선 서울시장 13% 차 패배…사실상 정계 은퇴  


ⓒ 연합뉴스
(사진 왼쪽부터) 정몽준 전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정동영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했으나 대권 창출은 하지 못했다. ⓒ 연합뉴스

열린우리당 2·6대 의장을 역임한 정동영 전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20% 이상 차이로 참패한다. 대선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4월 17대 총선에 서울 동작을로 출마하지만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한다. 이로 인해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크게 잃는다. 2009년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전주시 덕진구 출마로 18대 국회의원, 20대 전북 전주시병 국회의원에 국민의당 후보로 당선되지만 2020년 민생당을 창당하고 21대 총선에서 낙선하는 등 험로를 걸었다. 

정몽준 전 의원도 2009년 9월부터 2010년 6월까지 국민통합21 대표최고위원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동작을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2014년 6월 6회 지선에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며 의원직을 사퇴한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13%나 되는 득표율 차이로 패한다. 당시 차남의 시민의식 비하 발언에 이어 현대가 3·4세들이 연이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비난을 받기도 했다. 

6·4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현직 프리미엄에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으면서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로 꼽혀온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제친 것으로 분석됐다. (중략)

정 후보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뒤 지하철 공기질 문제와 ‘농약 급식’ 등 박 당선자의 아픈 곳을 찌르며 반전을 노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도 10%포인트 정도로 줄었으나 끝내 박 당선자의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

-2014년 6월 5일자 <한국경제> [6·4 국민의 선택] 현직 프리미엄·세월호 민심…박원순, 차기 대권주자 발판 놨다

7선 의원인 정 전 의원도 서울시장 낙선으로 치명타를 맞으며 대권 행보가 불투명해졌다. 이후 정치권에 거리를 두고 외교, 현대중공업 경영 등에 전념했다. 20대 총선에는 출마도 하지 않았다. 국정 농단 사태가 벌어진 2016년 12월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 김무성 ‘옥새파동’·19대 총선 패배에 대선 불출마까지 
친박계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국정농단 사태로 사퇴·탈당까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에 대선 경선 패배이후 외국행


ⓒ 연합뉴스
무공천을 선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2016년 3월 24일 오후 부산 영도구 사무실에 도착한 뒤 영도다리를 걷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을 맡은 김무성 전 의원도 유력한 대권 주자였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 전 친박계와 공천권을 두고 갈등한다. 김 전 의원은 ‘상향식 공천’을 주장했고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현역 물갈이’를 내세웠다. 공천관리위는 친유승민계·비박계 의원을 대거 잘라냈다. 

유승민·이재오 의원 등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김 전 대표가 이들의 지역구 세 곳에 공천 의결을 거부하며 이른바 ‘옥새 투쟁’을 벌였다.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을 포함한 지역구 세 곳은 결국 무공천 지역이 됐다. 이 사건은 친박·비박계간 불신이 심해지며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우세할 것이란 당초 예상을 깨고 더불어민주당에게 1석을 더 내줬다. 16년 만에 여소야대를 맞이한 것. 김 전 의원은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다. 그해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를 크게 비판하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김무성 전 의원 사퇴 이후 2016년 8월부터 12월 말까지 이정현 전 대표가 새누리당 대표직을 맡았다. 대표적인 친박계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물러난다. 2017년 1월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2022년 국민의힘에 복당하기까지 일체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 연합뉴스
20대 대선 유세에서 이재명 의원과 이낙연 전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전 대표는 2020년 8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를 맡았다. 그는 전남 지역 4선에 전남도지사를 맡은 데 이어 정치 1번지 종로에서 5선에 성공한 정치 거물이다.  총리 시절인 2020년 상반기만 해도 1년 가까이 대권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렸다.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지만 당 대표를 맡은 뒤 지지율이 하락했다. 21대 총선 이후 이재명 의원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39.14% 지지를 받아 '이재명'(50.29%)에 패한다. 

이 전 대표는 대선과 지선을 마치고 난 지난 7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공부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이야기는 삼갔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28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여당 대표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지도자형 리더와 관리형 리더로 나뉘는데 대권을 노리는 경우 당내 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위치 선점이 유리한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며 당 대표가 지닌 힘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당 안팎의 집중견제를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 대표를 발판 삼아 대권에 오르려는 자는 탄탄한 정치력, 뱃심, 특유의 돌파력 등을 다 갖춰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YS는 3당 합당을 통해 민정계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신민주계) 그 추진력으로 대권까지 올랐지만 이회창 전 총리의 경우 갑자기 대권주자로 떠올라 집중 견제를 견디지 못했다. 김무성 전 대표도 친박계와 청와대에 견제를 받았다.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낙연 전 총리도 정치생활을 오래 했지만 호남에서 알려졌을 뿐 전국에 이름을 알린 건 총리를 맡으면서다. 견딜만한 내공이 약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담당업무 : 정경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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