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 가격 하락에도…국내 식당가, ‘밀가루 사재기’ 시작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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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밀 가격 하락에도…국내 식당가, ‘밀가루 사재기’ 시작된 이유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7.04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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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 "한 번 오르면 떨어지기 쉽지 않아"
外 "수확·파종 문제 잔존, 수요 폭증 예상"
"상황 악화 전에 정부 감시·감독 나서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1. 수도권 북부 지역에서 면을 직접 뽑아 국수를 파는 자영업자 A씨는 2주에 12포대씩 구매하던 밀가루를 최근 20포대씩 사들이고 있다. 밀가루는 관리만 잘 하면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으니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쟁여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음식값을 인상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2. 서울에서 제법 큰 중식당을 경영하는 자영업자 B씨는 얼마 전 단골 도매상에 현금으로 웃돈을 주고 식용유, 춘장, 라드(돼지기름) 등 식자재를 톤(t)단위로 계약했다. 특히 그는 밀가루 물량을 가장 많이 잡아놨다고 한다. 다른 재료들은 국내외 상황이 해소되면 안정화 기미가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밀가루 대란은 최소 2년 가량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밀가루 사재기에 나선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눈치다. 사진은 잔치국수 ⓒ pixabay
밀가루 사재기에 나선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눈치다. 사진은 잔치국수 ⓒ pixabay

국제 밀값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식당을 운영하는 국내 자영업자들이 밀가루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자영업자들 스스로 사재기를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와 함께, 관계당국이 단속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곡물시장정보에 따르면 1일 기준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밀(SRW, 연질밀, 박력분) 선물 가격은 톤당 305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 3월 7일(524달러)과 비교했을 때 41.79% 하락한 수준이다. 캔자스시티상품거래소(KCBT) 밀(HRW, 경질밀, 강력분) 거래가도 지난 5월 17일 503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이날 335달러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동안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국제 밀 가격이 안정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건 날씨로 인해 밀 수확량이 크게 늘어서다. 러시아 농무부는 지난겨울 온난한 날씨, 봄철 추운 날씨로 인해 올해 전체 밀 수확량이 사상 최대인 87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미국 농무부와 호주 농림수산환경부도 날씨 영향에 따라 밀 생산량 추정치를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은 최근 밀가루 매집에 안간힘을 쏟는 분위기다. 국내 물가 조정이 쉽지 않은 데다, 해외 사정도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로 보인다.

수도권 북부 지역에서 도넛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C씨는 "저번에 식자재 마트에 가서 밀가루를 3포대만 사려다가 2포대를 더 집었다. 1포대에 1만5000~7000원 하던 게 2만 원대 중반을 넘기더니 이젠 3만 원짜리도 간혹 보인다"며 "중간 유통업자들이 마진을 많이 붙이기 때문에 한 번 오른 가격은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도 늘고 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앞선 B씨는 "전쟁 때문에 사람이 많이 없을 텐데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수확이나 파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농사는 때를 놓치면 1~2년이 어렵다. 밀 농사는 해본 적이 없지만 다른 농사를 지어봐서 안다"며 "당분간 밀가루 가격이 계속 뛸 것 같아서 웃돈을 주고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밀 선물 가격 추이. 최근 상승세가 꺾이고 되레 급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곡물시장정보 캡처 ⓒ 시사오늘
2022년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밀 선물 가격 추이. 최근 상승세가 꺾이고 되레 급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곡물시장정보 캡처 ⓒ 시사오늘

전문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메건 헤스케스 영국 농업원예개발협회 애널리스트는 "경기 둔화, 물가 상승 등으로 소비자들이 비싼 육류보다는 곡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강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한 러시아 현지 곡물분야 분석기관 프로제르노의 CEO인 블라디미르 페트리첸코 사장은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밀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보면서도 "수확은 이제부터 이뤄진다"는 뼈 있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내 요식업계 내에선 더 상황이 안 좋아지기 전에 사재기를 삼가야 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당국이 사전에 감시·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또 다른 자영업자 D씨는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면 가격이 더 오른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3~4개 더 사고 싶은 거 1개만 더 사고 그랬으면 좋겠다"며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정부에서 뒤늦게 수급 문제로 판매 제한을 걸면 자영업자들 정말 어려워진다. 범정부 차원에서 사전에 밀가루 유통 과정이나 사재기 문제에 대해 단속했으면 한다"고 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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