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파동 1년, ‘피해대책’ 책임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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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파동 1년, ‘피해대책’ 책임자는 없었다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8.3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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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1년 지나도록 대책 마련은 ‘떠 넘기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옥시레킷벤키저(거라브제인) 한빛화학(정의웅) 롯데마트(노병용) 용마산업사(김종군) 홈플러스(이승한) 크린코퍼레이션 버터플라이이펙트(오유진) 아토오가닉(지경민) 코스트코코리아(프레스톤씨 드래퍼) 글로엔엠(서정훈)

지난해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것으로 드러난 업체와 그 대표자들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의 유가족 등은 당사를 상대로 31일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수많은 산모와 태아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파동’이 있은 지 꼬박 1년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모임에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규모는 174건이며 이중 사망은 52건이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자를 낸 초유의 사고에도 해당 제품을 제조판매한 회사들은 물론 제품에 문제가 있음을 발표한 정부 역시 1년이 지나도록 피해자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들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고려하는 곳은 없고 오히려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사고 1년 지나도록 대책 마련은 ‘공 넘기기’

▲ 지난해 11월11일 보건복지부에서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이 6개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해 강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011년 8월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역학조사를 통해 유해 가능성을 발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당시 산모와 영아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원인미상 폐손상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관계부처(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지식경제부, 환경부, 식약청)와 합동으로 TF를 구축해 흡입 노출이 가능한 모든 제품 및 기타 제품들에 대한 현재의 안전관리 검증체계를 점검하고 강화할 것을 밝히기도 했다.

그 사이 보건복지부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고 문제의 가습기살균제를 강제 수거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또 정부 차원의 피해대책 마련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지난해 11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개최한 ‘가습기살균제 2차 피해사례발표와 정확한 실태조사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윤승기 역학조사과장은 “국무총리실 주관의 관계부처간 범부처 TF를 구성해 공동대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복지부 “피해대책 관련은 지경부 소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2년 8월31일. 정부 차원의 ‘공동대응’은 과연 마련되고 있는 것일까. <시사오늘>의 취재 결과 유사사건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있었지만 피해 대책을 위한 TF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가장 우선시돼야 할 피해규모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관계부처간 책임소재도 불분명했다.

피해사례와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인과관계를 밝힌 보건복지부는 피해규모 조사와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지식경제부 관할”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피해사례 접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당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보건복지부는 당초 제품의 유해성을 발표하며 관계부처 간 범부처 TF를 구성할 것을 밝혔지만, 피해 대책 등에 관해서는 “TF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윤승기 역학조사과장은 <시사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관계부처 간 TF 활동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면서도 “피해규모와 보상문제 등과 관련 TF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지만 지식경제부에서 피해조사와 보상문제를 검토, 총리실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검토된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174건(사망이 52건)의 사례 중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유사사례는 79건, 나머지 94건은 미인지 신규사례라고 밝혔다.

지경부 “피해대책 관련은 복지부 소관”

바통을 넘겨받은 지식경제부는 “피해대책 관련은 모두 보건복지부 소관”이라고 말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피해사례와 관련 보건복지부가 접수를 받는 것 외에 지식경제부가 담당하는 것은 없다”며 “피해사례 등과 관련 총리실에 보고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또 TF는 “몇 차례 구성 돼 지난해 말 ‘생활용품안전관리대책’ 결과발표를 전부”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등에 관해서는 “소송의 결과에 따라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9일 국무총리실은 관계부처와 함께 서민생활대책점검회의를 마련하고 ‘생활용품안전관리대책’을 발표했다.

보고된 대책은 △안전 우려 생활화학가정용품 원료물질 위해성 재평가(지경부·환경부·식약청) △비관리 품목이나 신규 생활화학용품에 대한 종합대응(지경부·환경부·식약청) △생활화학가정용품 안전관리 공통기준 개선(지경부) △의약외품 추가 지정계획(복지부·식약청) △가습기 살균제 추가 실험계획(복지부) 등의 내용이 있었다.

즉, 복지부와 지경부 관계자가 언급한 ‘TF’는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구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부차원 피해대책 마련 없었다
 

▲ ▲ 지난 6월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신지숙 씨가 '사람 죽이는 화학물질과의 전쟁'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뉴시스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한 대책이 아닌,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관련 유해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역시 피해에 대한 검토는 없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상과 소송건은 지경부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입장은 ‘제조물을 만들 때 안전성을 확인하지 못한 업체에 책임이 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지어지는 듯 하다”며 “제조사의 책임이 크다는 방향으로 지경부가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 사안을 놓고 관계부처가 서로 얽히는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에 대한 방점을 찍은 것은 총리실이다. TF를 조성하는 등 문제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총리실은 “TF가 열린 바 없으며 피해 대책 관련 논의 된 바 없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사회총괄정책관실 관계자는 “지난해 말 총리실 주관으로 관계부처들과의 회의를 통해 생활용품안전에 관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재발 방지 차원일 뿐, 피해대책을 위한 TF가 구성된 것은 아니다”며 “‘피해대책을 위한 TF구성’ 발언도 복지부 측에서 나온 것이고, 총리실 주관 별도의 TF는 운영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복지부에서 피해사례 접수를 받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피해조사가 이뤄진 것은 없다”며 “정부의 입장이 제조업체의 과실로 결론지어지는 것도 사실이 아니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정부 차원에서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제조판매업체 “법대로 할 것”

제품을 제조판매한 업체들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발표 이후 정부 발표를 인정하지 않는 업체들도 있었다. 현재는 보다 조심스러워진 입장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1년이 지나도록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모색한 곳은 없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옥시레킨벤키저는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다만 모든 법적 책임에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롯데마트, 한빛화학 등 업체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고, 홈플러스의 경우도 “향후 검찰 고발에 따른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모든 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며 “공식적인 최종 결과가 나오면 적극 검토 후 보상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174건의 피해사례와 52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에 대해 현재 가해 기업은 물론 정부도,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소송보다도 문제의 책임 소재를 먼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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