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죽음의 진실④>청년정신을 배운다…구국장정 6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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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죽음의 진실④>청년정신을 배운다…구국장정 6천리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2.09.1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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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사무국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시사오늘(사진 제공=장준하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오늘날의 청년들과 함께 <장준하, 구국 장정 6천 리> 여정을 떠나는 일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운동가, 그리고 재야의 대통령이라 불렸던 故 장준하 선생.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청년 시절의 그는 19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 파병되었다가 6개월 만에 일본군을 탈출, 임시정부를 찾아 6천 리 대장정에 올랐다.

이준영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지난 6일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와 지금의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광복에 대한 꿈을 안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면서까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장준하의 청년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6일 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 개최 배경은.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전환기적 가치혼란과 미래에 대한 비전 부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내일을 이끌어 갈 참된 지도자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장준하 선생의 청년 정신은 우리 청년들에게 참된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에 오늘날 청년들이 갖추어야 할 올바른 가치관, 역사관, 통일관, 미래에 대한 비전 등 이 시대 ‘청년정신’의 모범을 찾고자 고민했다. 그 해결책으로 '장준하의 청년정신'을 배우기로 했다.”

- 장준하의 ‘청년정신’은 무엇인지.

“1944년 26세의 청년 장준하는 애초 계획대로 중국 서주에 주둔했던 일본 스카다 부대에서 탈출, 중경 임시정부까지 고난과 피로 얼룩진 6천 리 장정을 감행했다. 어찌 보면, 광복을 염원한 탈출과 장정이라고 하는 가장 빛나는 청년정신이 우리 민족을 밝혀온 셈이다.

또한, 청년 시절에 형성된 장준하의 청년정신은 그가 1975년 8월 17일 비통한 죽음을 당할 때까지 한 치의 타협과 굴절 없이 평생을 올곧게 살아가는데 끊임없이 반영돼 왔다. 더욱이 항일독립운동에서 <사상계> 발간 시절, 그리고 박정희 군부독재정권과의 목숨을 건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의 청년정신은 뜨거운 불빛으로 타올랐다.”

ⓒ시사오늘 신상인 기자.
-오늘날 필요한 청년정신은, 장정에 오르는 그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청년 장준하가 민족과 독립을 품고 대장정에 올랐다면, 오늘날 우리 청년들은 청년 장준하가 감행했던 6천 리 중국을 되밟아보면서 1944년 7월 7일 '탈출'과 '장정'으로 명명되는 장준하의 '청년정신'을 되새기길 바랐다. 이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청년정신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구하길 바랐다. 이제 그가 갔던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끼는가는 장준하에 달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다.”

-구국 장정 6천 리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청년 장준하 일행은 6천 리 장정을 모두 마치는데 무려 7개월이 걸렸다. 물론 3개월 동안의 훈련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10여 일씩 머무르긴 했지만, 그냥 걷기만 해도 족히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이에 기념사업회가 개최하는 10박 11일 간의 장정에서는 청년 장준하 일행이 걸었던 곳은 차량으로 이동하고 선박과 항공으로 이동한 경로는 마찬가지로 선박과 항공으로 이동한다.

다만 차량이동 사이에 시간이 나면 행군을 하긴 하되 시간이 넉넉지 않아 그리 많이 할 수는 없다. 또한, 북경, 중경, 상해 등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도시는 물론 중국의 가난한 농촌을 두루 방문, 중국의 안과 밖을 모두 볼 수 있다.

ⓒ시사오늘.
-참여방법과 행사 기간 중 프로그램 구성은.

간혹, 중고등학생과 일반 직장인들이 신청하는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20대의 대학(원)생들 대상으로 한다. 행사 기간에는 장정 본대가 중경 임정청사에 도착할 때는 장준하 선생 일행이 도착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리고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통일전선을 형성하려 했던 연안, 타이항 산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전투현장을 방문해 사라진 연안, 타이항 산 독립운동을 복원하는 행사도 함께한다. 아울러 관련 분야 교수의 현장강의와 중국 청년들과의 우호 증진 및 연대강화 시간도 마련된다. 이외에도 장정을 마친 사람들은 장준하기념사업회 '청년 등불' 대원으로 참여가 가능, 다양하고도 유익한 행사를 하게 된다.”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발족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지난 6일 각계 인사 21명이 참여한 가운데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준비위원장에 유광언 기념사업회 회장을 임명했다.

이준영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국민대책위 추진배경에 대해 “지난 8월 1일 묘소이장 때, 선생의 유골은 실족추락사가 아닌 암살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실로 충격적인 증거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며 “이에 기념사업회는 장준하 선생의 타살의혹이 짙은 유골 사진을 공개, 정부의 즉각적인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재조사 착수를 위한 긍정적인 통보를 받지 못해 국민의 염원을 모아 진실을 밝혀낼 기구를 발족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가 발표한 바로는 앞서 기념 사업회는 8월 20일 사건 진상규명 재조사를 촉구하는 공식요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러나 8월 29일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어느 정부부처가 담당할지 검토할 것이다. 그 결정에 최장 150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달을 해왔다. 이후 9월 2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사안을 행정안전부로 넘겼고, 행안부 관계자는 자신들에게 조사권한이 없어 이 사안을 맡을지 고심 중이라는 언론보도를 접하게 되었을 뿐이다.

국민대책위는 이에 따라 9월 12일부터 유골 정밀 재검사 시행, 암살의혹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요구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국정원, 기무사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 시위 등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편 국민대책 준비위에는 길태근 전 청와대 정책국장, 김도현 전 문체부차관, 김호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김희수 변호사, 김태진 언론인, 박상희 한신대 총동문회 부회장, 서우영 역사정의실천연대 사무국장, 서상섭 전 국회의원, 성유보 언론인, 양재길 양일동 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유광언 기념사업회 회장, 유래홍 민추협 사무부총장, 이경형 장준하 공원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이명순 동아투위 회장, 이준영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임현진 기념사업회 전 회장․서울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장호권 유가족 대표, 전대열 정치평가협회회장, 정성철 변호사,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등이 참여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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