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상도동 반지하 참사…강남 아파트 신고가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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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상도동 반지하 참사…강남 아파트 신고가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8.10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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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불러온 취약계층 참변…사회안전망 강화로 정부 존재 이유 회복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 8~9일 몰아친 수도권 지역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주택 반지하에 물이 들이쳐 그곳에 거주하던 40대 여성 A씨와 그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10대 딸이 목숨을 잃었다. A씨는 발달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한 반지하 집에서도 침수 피해가 발생해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무리 기록적인 폭우였다지만, 취약계층일수록 재난에 취약하다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참사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소재 고급빌라인 힐데스하임이 50억 원이라는 신고가를 기록하며 매매 거래가 이뤄졌다는 신고가가 등록됐다. 이튿날인 10일에는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방배롯데캐슬로제가 이전 최고가를 경신한 38억 원에 팔렸다는 실거래 자료도 공개됐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국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강남, 용산 등은 최근 고급 단지·중대형 위주로 연일 상승하고 있다. 취약계층은 죽어 나가는데, 상위계층의 자산가치는 지속 우상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이달 초 공개한 소득 100분위 자료를 살펴보면 소득 상위 10%의 소득을 하위 10%의 그것으로 나눈 10분위 배율은 2010년 77.0배, 2012년 53.5배, 2014년 50.9배, 2016년 46.6배, 2018년 42.6배, 2019년 40.8배 등으로 줄다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020년 42.4배로 반등했다. 그해 상위 10%의 근로소득은 전년 대비 4.7% 증가했고, 상위 0.1%는 10.4% 늘었다. 반면, 하위 10%의 근로소득은 0.8%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민간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2022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 소득 상위 20% 계층은 지난해 소득이 전년보다 5.9% 확대된 반면, 하위 20%와 하위 20~40% 계층은 각각 1.1%, 1.6%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영향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건 전(全)세계적 현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살고 죽는 문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던 인간이 국가를 만들고, 정부 조직을 꾸리고, 모든 이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해 민주주의를 수립한 최대 목적은 개인의 안위, 가족의 안전 보장이었다. 오늘날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도 국민안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국가와 정부가 개인의 안위, 가족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거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순간 사람들은 들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신림동·상도동 반지하 참사를 비롯해 이번 집중호우 속에서 정부가 보인 행보는 '없을 무'(無)였다. 비가 그친 후엔 실언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변이 발생한 신림동 주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 됐는가 모르겠다",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침수가 시작됐더라"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멘토라 불리는 신평 변호사는 KBS라디오〈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수해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누추한 곳에 가서 관계자들도 위로하고 아주 잘한 거 아니냐"고 했다. 재난 상황을 목격하고도 퇴근한 윤 대통령의 '안이함', 취약계층을 바라보는 현 정권 관계자들의 '누추한 시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재 국민들 사이에선 무정부 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실정이다.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정권이 출범한지 이제 막 3개월이 됐으니 억울하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재난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번 참사가 양극화 심화로 인한 인재임을 인정하고, 사회안전망 강화로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를 회복해야 한다. 국제 정세가 불안한데 국내 민심마저 등을 돌리게 해선 안 된다. 꼭 그래야 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나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국가가 안전취약 가구에 대해 사전에 위기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미흡했다. 운명을 달리하신 분과 유족분들 생각하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 뿐"이라고 사죄했다. 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부 관계자들이 그의 뒤를 따라주길 바란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신림동 참사 현장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신림동 참사 현장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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