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받을 수 있을까…국민연금, 왜 시작했나 [정진호의 정책史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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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받을 수 있을까…국민연금, 왜 시작했나 [정진호의 정책史③]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9.02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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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도입, 김대중 정부 때 전국민으로 확대
김대중·노무현 정부서 연금개혁…임시방편에 불과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한민국 국민연금제도는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 ⓒ시사오늘 김유종
대한민국 국민연금제도는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 ⓒ시사오늘 김유종

윤석열 대통령은 5월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속가능한 복지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안정망을 제공하려면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8월 17일 진행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교육·노동·연금개혁을 “중장기 국가개혁이고 플랜”이라며 “정부와 국회, 많은 시민사회가 초당적·초정파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윤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역시 필요성과 현실적 어려움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연금제도는 왜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도입 역사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 도입 논의가 시작된 건 박정희 정부 때였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노후 대비를 위한 보험 성격이었다기보다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투자자금 확보 목적이 더 컸다고 합니다. 아래는 양재진 연세대 교수의 ‘유신체제하 복지연금제도의 형성과 시행유보에 관한 재고찰’ 논문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복지연금제도의 도입을 추진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당시 유신이후 박정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중화학공업화사업의 재원마련의 방안차원에서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1972년 10월 유신 단행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에 대한 중간평가는 수출 100억 달러 달성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행정, 생산양식, 농민생활, 국민의 사고방식, 외교, 문교, 과학기술 등 정부의 모든 정책 초점을 100억 달러 수출목표에 맞추어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에 연말쯤 되자 중화학공업 건설 계획의 윤곽과 함께 조선공업 육성방안(1972.12), 일반기계공업 육성방안(1972.12), 호남화학공업단지 계획(1972.12), 정밀기계공업 육성방안(1973.1), 전자공업 장기육성방안(1973.1), 기계소재공장 건설 및 철강재 수출계획(1973.1), 비철금속제련단지 계획(1973.1)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할 재원마련이었다. (중략)
KDI 김만제 원장은 사회보장연금제도의 도입은 국내저축의 제고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을 위한 투자재원의 조달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를 끝냈다. 장시간의 토론 끝에 박 대통령은 제도도입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KDI가 책임지고 그 구체적인 방안을 계속해서 연구개발해 나가도록 지시하고 관련부터의 협조를 얻도록 당부하였다. (후략)

2007년 4월 <한국거버넌스학회보 제14권 제1호> 유신체제하 복지연금제도의 형성과 시행유보에 관한 재고찰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73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1974년부터는 사회보장연금제도를 만드는 등 복지정책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공식 발표합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회에서 국민복지연금법을 제정, 1974년 첫날부터 시행되도록 했습니다.

국회는 1일 본회의에서 입법취지와는 달리 갖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이 따랐던 국민복지연금법안을 표결에 부쳐 재석 145석 가운데 찬성102표 반대 34표 기권 9표로 보사위 수정안대로 통과시켰다. 신민당 의원들은 당초의 당 방침에 따라 반대했다.
김수한 의원(신민)은 이날 반대토론에서 이 법안은 중화학 투자기금 조달을 위한 내자 동원에 목적이 있으며 군인 및 공무원 연금제도 등 다른 연금제도와 균형이 맞지 않으며 저임금정책을 부채질하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1973년 12월 1일 <매일경제> 국민복지 연금법안 통과

그러나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불경기가 찾아오자 박정희 정부는 1974년 1월 14일 ‘긴급조치 3호’를 발동해 시행 시기를 늦췄습니다. 1975년 12월에는 시행령을 통해 국민복지 연금법 시행을 무기한으로 연기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제도는 사실상 도입이 무산됩니다.

정부는 국민복지연금제도의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4일 국무회의는 국민복지연금법 중 개정안을 의결, 76년 1월 1일부터 시행토록 했던 국민복지연금사업의 시행일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바꾸었다.
정부는 국민복지연금사업의 실시 시기 연기 이유를 “현재의 경제사정 등 제반 여건으로 보아 그 실시가 어렵게 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1975년 11월 5일 <매일경제> 각의 의결 복지연금 시행 무기 연기키로

논의의 불씨가 되살아난 건 전두환 정부 때였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전두환 정부는 두 가지 사회인구학적 고민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고령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주택난이 심화됐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경제 관료들은 노인 빈곤율을 낮춤과 동시에 주택건설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민연금 도입을 건의합니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국민연금에 부정적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도 결국 김만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도 도입 검토를 지시합니다. 그렇게 1986년 말 국민복지연금법을 국민연금법으로 전면 개정하면서 국민연금 도입을 확정했고,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월 본격적으로 실시했습니다.

오는 88년부터 퇴직 후의 노후생활 및 불의의 사고에 따른 생계대책을 위한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된다.
정부는 경제기획원 보사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마련한 ‘국민연금제도 시안’을 12일 공청회에 부쳐 각계의 여론을 듣고 금년 안에 정부안을 확정한 뒤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88년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공청회를 가진 국민연금제도 시안에 따르면 연금제도가 실시되더라도 현행의 퇴직금제도는 기득권이 보장되며 연금보험요율이 최종 목표인 10%가 되는 서기 2000년까지는 퇴직금제를 존속시키기로 했다. (후략)

1985년 6월 12일 <동아일보> 국민연금제 88년 실시 연내 확정

이후 국민연금은 점점 더 넓은 대상을 품으며 덩치를 키웠습니다. 1988년 1월 시행된 국민연금은 1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됐습니다. 근로자가 아니거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국민연금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1992년 5인 이상 사업장, 1995년 농어촌거주자(지역가입), 1999년 도시자영업자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1999년에는 도시지역 거주자까지 포함한 전 국민이 국민연금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도입 당시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형태였습니다. 보험요율은 3%로 시작해 1998년이 돼서야 9%로 올랐지만, 수령액은 생애 평균임금의 7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1998년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2020년이면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게 되고, 2033년이면 기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자 김대중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연령을 기존 60세에서 2013년 61세, 2033년 65세로 단계적 상향하는 내용의 제도 개혁에 착수합니다. 더 늦게 시작해 덜 받는 쪽으로 개편된 겁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는 30일 회의를 열어 현재 가입자 월평균소득액의 70%를 지급토록 한 국민연금의 기본연금액을 60%로 하향조정하는 것을 뼈대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위가 이날 의결한 개정안은 정부개정안의 55%와 비교해 5%포인트 높은 것이다.
개정안은 또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가급연금액 수준을 현행 각각 10만 원과 6만 원에서 15만 원과 10만 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보험료를 원청징수한 사실만 확인되면 사용자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에도 원천징수기간의 2분의 1은 보험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1998년 12월 1일 <한겨레> 국민연금 평균소득 60%지급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재정추계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면 2036년에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선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으로 예고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출산율은 하락세에 접어든 반면,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다시 한 번 연금개혁을 단행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김대중 정부보다 조금 더 강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앞세워 9%인 보험요율을 2030년까지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연금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보험요율 상향 조정에 반대하면서, 결국 보험요율은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40%까지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연금개혁에 앞장섰던 유시민 전 장관은 “보험료를 9%에서 더 이상 올리지 못하게 국회에서 반대하니까 재정 안정 효과가 나려면 급여를 40%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29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핵심은 납부할 보험료를 그대로 내면서 나중에 연금으로 덜 받는다는 것이다. 현행 9%의 보험료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급여율은 현행 60%에서 내년도 50%로 낮추고 매년 0.5%포인트씩 내려 2028년에는 40%로 줄여나간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가질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현행 보험료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지만 오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이 같은 안을 여야 모두 선뜻 내놓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라 가입자는 현행대로 9%의 보험료율을 유지하게 됐다. 연금액이 줄어드는 대신 내년부터 도입되는 기초노령연금지급액은 2028년까지 10%로 인상된다. 기초노령연금은 전체 노인의 60%에게 매달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월평균 소득의 5%를 지급한다. (후략)

2007년 6월 29일 <국민일보> [국민연금법] 어떻게 바뀌나…현재 내는 보험료율 유지 수령액 60→40%로 줄어

이로써 국민연금은 보험요율 9%, 소득대체율 40%(2028년까지)라는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연금개혁 직후인 2008년 실시된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은 2044년, 기금 고갈 시점은 2060년으로 늦춰집니다. 이전보다 적자 전환·기금 고갈 시점이 10여 년 정도 연기된 겁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합계출산율은 0.81명(2021년 기준)까지 떨어진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901.8만 명(2022년 기준)에 도달한 지금, 보다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논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 입장에서 전 국민이 대상자인 국민연금 개혁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합니다. 과연 윤 대통령은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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