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증권가 공정한 평가와 사회적 평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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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증권가 공정한 평가와 사회적 평등 필요˝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9.20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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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여의도 칼바람, 잠재울 수 있나´… NH농협증권 노조위원장의 대안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지난 8월22일 여의도 한복판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휘두르는 흉기에 모두 네 명의 시민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H신용평가회사 전 직원이다. 옛 직장 동료 두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뒤 행인 두 명을 추가로 공격했다.

바로 현재 여의도 증권가의 분위기다. 최근 증시 운영을 책임지는 거래소 직원이 의문의 자살을 하고 지난해 말 증권사 직원 세 명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 등 증권업계의 극단적인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증권맨들의 자살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증시폭락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며 이제 곪을 대로 곪아버린 만성 사회문제다.

특히 최근에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막대한 가계부채 등으로 증권가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어 증권업계 노동자들의 심리적 불안도 극도에 달한다. 경영 악화에 증권사들은 구조조정을 하고 지점을 줄이는 등 덩치 줄이기에 나섰고, 경영 한계까지 다다른 중소 증권사들은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타났다. 여의도 증권가에 그야말로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기 속에 증권업계 노동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단지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일부 증권사 측에서는 노동자들의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극단적 사고를 개인 재정의 문제, 도덕문제로 무마하려는 곳도 있다. 이와 관련 이진희 NH농협증권 노조위원장은 “불순한 억지”라고 말한다.

▲ 이진희 NH농협증권 노조위원장. ⓒ시사오늘

NH농협증권 노동자들의 대표인 이 위원장은 사측의 강압에 무너지는 여의도 증권맨들이 안타깝다며 그야말로 노사가 상생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증권맨들의 일부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이 어쩔 수 없는 구조적 측면도 있지만 완화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함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를 위해 “노동자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와 사측의 신시장 개발, 감독당국의 과도한 규제완화 등 기업과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3일 여의도 NH농협증권 노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이진희 NH농협증권 노조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지난해 말 주가폭락에 따른 증권사 직원들의 연이은 자살이 문제가 됐다. 이밖에 최근에도 금융권에 자살, 사기, 칼부림 등 극단적인 사건사고가 계속되고 있는데, 증권업계 노동자 당사자로서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나.

“증권사 직원의 자살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증시 폭락기나 침체기에는 어김없이 증권사 직원의 자살 소식이 이어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비춰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이것을 직원의 개인적인 문제나 도덕적 문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우선 증권사에 만연해 있는 단기성과주의와 영업직원을 오직 실적으로만 평가하는 평가보상시스템의 문제가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구조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MB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심각해진 양극화와 불공정 경쟁, 그리고 부실한 사회안전망 등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최근 묻지마 폭력 같은 극단적인 병리현상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공정한 평가보상시스템과 합리적인 인사제도의 도입, 나아가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 문제의 해소가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본다.”

 
- 단기성과를 위주로 한 사측의 압력 등 증권업계 노동자들의 고충이 있다. 업계 노동자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대로 증권업계 노동자들은 실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가장 큰 스트레스는 결국 실적에 대한 압박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이 같은 정량적 평가는 비단 증권업계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지만 증권업계는 글로벌 경제동향과 산업동향, 그리고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증권시장이 급변하기 때문에 그 부담도 클 수 있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증권시장을 따라잡으려다 보니 타 업종에 비해 빨리 겪게 되는 조로현상과 조기은퇴문제도 증권 노동자들의 중요한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성과보상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증권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실적에 대한 압박과 조기은퇴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결국 무리한 영업활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 최근 증권가 경기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심리적 불안도 더 높아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증시 격언 중에 ‘시장이 안 좋을 때는 쉬는 것도 투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증권 노동자들은 쉴 수가 없다. 증권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인데도 말이다. 당연히 심리적 불안과 압박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측은 시장상황을 감안한 평가보상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증권업계의 실적 압력 등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내수를 기반으로 한 증권업계 구조상 불가피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사실 천문학적인 돈이 거래되는 증권시장에서는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이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말 그대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극단의 시장경쟁에서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수를 기반으로 한 증권업계의 구조적 특성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시장이 좋을 때는 지점수와 직원채용을 늘렸다가 시장상황이 안 좋으면 지점폐쇄와 인력감축을 반복하는 경영행태가 내수기반의 증권산업 특징이라는 말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 이것은 사측의 잘못된 판단과 무리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증권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불순한 의도이자 증권산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억지에 불과하다.

IMF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된 이후 증권산업은 해외진출이 타 업종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내수시장도 외국계 금융사에 완전 개방돼 있다. 따라서 증권사 경영진이 내수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브로커리지 외에 상품운용, 자산관리, 투자은행(IB)영업 등으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했다면 지금처럼 내수시장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식 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경영혁신이나 신시장 개척은 등한시하고 오로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수시장에만 집중해 시장침체에 대한 책임을 증권노동자에게만 전가하는 과거의 잘못은 이제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 NH농협증권의 경우는 어떤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많은 증권사가 적자행보를 보이는데 반해 농협증권은 이익을 내고 있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태도는 어떠한가. 

“우리(NH농협증권)는 타 증권사와 비교해 브로커리지 수익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증시침체로 다수의 증권사가 적자를 기록한데 반해 당사는 IB와 운용, 이자수익 등 수익구조가 다변화돼 있어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잘한 부분은 잘했다고 말해줘야겠다.

또 우리는 타 증권사에 비해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도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당사도 영업직원들에 대한 실적압박은 존재하는 만큼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경영진과 지속적으로 협상해 나갈 계획이다.”

- NH농협의 경우 지난 3월 신경분리로 사업구조가 개편됐다. 신경분리 후 NH농협증권의 분위기 등 근로환경에 변화는 없나.

“사실 사업구조개편(신경분리)은 농협과 계열사 직원들을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정부와 농협고위관계자의 실적주의 때문에 졸속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당사의 근로환경에 변화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 분위기도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시다시피 농협의 신경분리는 MB정부에 등 떠밀려 당초 계획보다 5년이나 앞당겨 실시되면서 졸속처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부족자본 지원을 명목으로 농협과 사업구조개편이행 약정서를 체결해 농협에 대한 관치 의도를 더 노골화 하고 있다. 우리 NH농협증권 노동조합은 NH농협노동조합과 연대해 정부의 관치농협에 대한 의도를 분쇄해 나가고 농협법 재개정을 위한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 NH농협증권을 포함해 증권업계 전반에 실적전쟁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할 듯하다.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브로커리지에 수익의 큰 부분을 의존하는 현재의 증권사 수익구조로는 증권노동자들에 대한 실적 압박은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경영혁신을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 신 시장 개척을 통한 신규수익원 창출 등 경영합리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현재의 단기성과 위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직원에 대한 평가가 실적이라는 정량적인 평가 외에 다양한 부분 즉, 인성이나 조직화합에 대한 기여도 등 정성적인 부분도 감안한 평가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더불어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발효된 이후,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활성화라는 취지와는 반대로 현재 감독당국의 금융산업, 특히 증권산업에 대한 규제는 콜차입규제, ELW 발행 및 호가제한, 각종 수수료 인하 등으로 오히려 강화된 측면도 없지 않다.

자본건전성 강화와 투자자 보호라는 규제의 근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장이 위축될 정도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증권업의 활성화와 다양한 사업기회를 박탈한다는 측면에서 무리한 실적전쟁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감독당국 및 정치권은 고사위기에 빠진 증권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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