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여왕 장례식 ‘손익계산서’ [김형석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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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여왕 장례식 ‘손익계산서’ [김형석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2.09.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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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장례식 통해 국익 신장과 국격 제고 효과 거둬”
“영국대사관이 한국 대통령 조문에 이상 없다 유권해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에서 조문객들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 마련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소에서 조문객들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이 런던 현지 시간으로 지난 19일 모두 마무리됐다. 영국 왕실과 정부가 코드명 ‘런던 브릿지’(London Bridge Is Down)로 명명해 행사를 개시한 지 열흘 만이다. 장례식 행렬이 세인트 조지 예배당으로 향하는 동안 런던 히스로 공항은 30분가량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을 중단시켰다. 1분마다 빅 벤이 울렸으며 하이드 파크에서는 5분마다 예포가 발사됐다. 세계가 이 광경을 지켜봤다.

적극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영국은 여왕 장례식을 통해 계량화할 수 없는 국익 신장과 엄청난 국격 제고 효과를 거뒀다. 약 200개 국가.지역을 대표하는 왕실과 정부 수장 및 해외 귀빈 500명이 참석했다. 수백만 명의 일반 추모객도 왔다. 각국 정상(러시아·아프간·미얀마 등 제외)이 총집합해 참배하는 영상과 줄지어 선 추모 행렬 모습이 생중계됐다. 방송들이 시시콜콜하게 이 진행과정을 중계함으로써 영국 왕실은 지구촌 왕실, 런던은 지구촌 수도의 모습처럼 격상됐다.

영국은 ‘대박’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장례식장에 지각해 바로 입장하지 못하고 대기해야 했으며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식장에서 14번째 줄에 앉았다. 말 그대로 일반석. 그 순간만큼은 영국이 세계 최강국의 모습이었다.

제 나라 선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시로 행사를 벌여오는 한국을 비롯, 모든 나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장례식으로 영국 경제가 손실을 봤다는 23억 파운드(약 3조6000억 원) 정도는 메우고도 남을 국가 홍보 효과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템스강을 따라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이어진 16㎞의 조문 행렬, 대기 시간이 최장 30시간까지 걸렸다는 템스강 변의 길게 이어진 조문 행렬을 찍은 보도 사진은 영국인들의 유별난 줄 서기(queue) 전통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자랑했다. 그 속에는 새벽 2시15분쯤 혼자 와서 13시간 줄을 선 끝에 참배했다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있었다. 국격 상승효과를 배가시킨 뉴스가 쏟아졌다. 왕실 내부의 가십성 정도 기사나 몇 개 불거져 나왔을 뿐 영국 내 정치권 등의 분열상은 거의 포착되지 않은 점도 특이했다.

그런 저런 점들을 종합하면 여왕 장례식을 통한 영국의 손익계산서는 ‘대박!’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해지지 않는 나라’ ‘아주 수월하게 국익을 챙겨온 나라’ ‘저력 있는 영국’의 모습 그대로다. 2021년말 기준 명목 GDP로 환산하면 영국은 여전히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한국 10위).

지난 7월 물가 상승률이 10.1%로 40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내년 1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18%를 넘길 수 있다며 장례식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왕실 폐지론까지도 일각에서 다시 제기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의 정치권과 정부는 행사기간 내내 별로 개의치 않고 일사불란하게 축적된 ‘노하우’에 따라 행사를 진행했다. 비판적인 시각이 주류가 못 된다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그런 ‘리더십’이 부러울 따름이다.

얼마 전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 주재로 열릴 장례식 결산회의는 어떤 모습을 할까. 훔쳐볼 수는 없지만 대강의 그림은 그려볼 수 있겠다. 20억 파운드를 훌쩍 넘긴 정부 지출과 휴무에 따른 막대한 민간부문 손실 보고가 있고 이어 매우 빈약한 수준의 수입 보고가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외국 정상들이 타고 온 항공기 이착륙료, 조문객들이 먹은 식음료대, 그 외에 자잘한 관광부문 수입 등등. 지출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그래도 총리나 각료들은 줄 서있던 시민들 표정처럼 느긋하지 않을까 싶다. ‘대박’ 예감이 점점 확신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尹, 지각이라도 했다면…

그런데 저 멀리 한국이란 나라의 영국 여왕 장례식 관련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남의 나라 여왕 장례식 문제를 놓고 며칠이 지나도록 조문 논란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 정상을 외국의 장례식에 보내놓고는 고작 한다는 짓들이 조문을 제대로 했느니 못 했느니, 김건희 여사의 모자가 어떻느니 하는 쪼잔한 논란이나 계속하고 있다.

왜 조문을 못 했느냐, 심지어 조문록 왼쪽 페이지에 썼느냐, 당사자 격인 영국대사관이 한국 대통령 조문에 이상 없었다고 유권해석을 해줘도 막무가내, 조문 시비는 끊이지를 않는다. 당사자인 받은 쪽에서 ‘제대로 했다’고 확인해 주는데도 준 쪽에서는 아니라고 우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최고 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문을 못 한 이유에 대해 퀴즈까지 내놓는 등 거의 장난 수준으로 흘러가고 있다.

바이든처럼 지각해서 대기했더라면 지각 대통령은 탄핵 감이라고 정색하고 달려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마크롱처럼 선글라스에 캐주얼한 차림이었다면, 트뤼도 캐나다 총리처럼 호텔에서 팝송을 불렀다면 우리나라는 거의 전쟁터 모습이 됐을 터다.

요약하면 영국 여왕 장례식 전후, 우리 국회와 그 주변은 제 나라 일도 아닌 다른 나라 일을 놓고 연일 티격태격하는 집단 무뇌증(無腦症) 환자들의 모습이다. 와중에 민생 챙기기는 당연히 실종됐다. 영국은 대박의 길로, 바보짓 하는 우리는 쪽박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나 아닐까 걱정이다.

국회의원님들께 권한다.

“나리들, 세비를 써서라도 영국이란 나라에 가서 리더십 좀 배워오세요! 우리 서민들은 이제 줄 서기는 잘 한답니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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