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 치욕 인조와 국감 증인 오너들[역사로 보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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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 치욕 인조와 국감 증인 오너들[역사로 보는 경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9.25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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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갑질, 사농공상 의식이 낳은 적폐가 아닐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인조의 비겁함이 증명된 삼전도비 문화재청
인조의 비겁함이 증명된 삼전도비 ⓒ문화재청

군대 입대 영장, 대한민국 남자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리하고 싶은 통지서다. 이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이십대 꽃다운 나이에 군대 가서 고생할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헌법이 부여한 의무다. 

갈 때는 죽기보다 싫어도, 갔다 오면 얻는 것이 더 많은 소중한 인생 학교다. 또한 평생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는 특권이다. 남자들만의 사회 계급도 달라진다. 남자의 세계에선 군필자와 미필자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군필자도 현역과 방위로 구별되고, 방위도 18방과 6방의 차별이 존재한다. 남자들만의 쓸데없는 자존심의 경쟁이다.

군주도 마찬가지다. 외적에게 항복을 하는 것만큼 치욕적인 일이 없다. 인조는 조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적에게 항복의 예를 갖춘 군주다. 심지어 조선을 폐가로 만든 순종도 항복의 예를 치루지 않고 오히려 일제로부터 예우 받았다. 순종 입장에선 인조보다는 덜 망신당했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두 군주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굴욕을 당해도 자기 목숨은 지켰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인조는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당했어도 왕좌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수십만의 조선 백성이 인질로 끌려갔지만 인조는 끝끝내 자신의 왕좌를 뺴앗기지 않았다. 

인조는 비겁했다. 자기 대신 인질로 잡혀간 아들도 배신했다. 자신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소현세자를 경멸해 의문의 죽임을 당해도 모른 체 했다. 후일 사가들은 인조 배후설도 제기했다.

<인조실록> 인조 15년 1월 30일 기사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한 치욕의 장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청 태종은 인조를 맞아 직접 대화를 하는 방식 대신 신하 용골대를 통해 인조에게 말을 전하는 수모를 줬다. 인조는 이에 순응하며 용골대를 청 태종 대하듯 예를 갖추며 “오늘의 일은 오로지 황제의 말과 두 대인이 힘써준 것만을 믿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수치심을 모르고 자기 목숨만 구걸하는 군주다운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인조가 삼배구고두례로 자신의 목숨을 보장받자 곧바로 한강을 넘어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인조실록>은 당시 상황에 대해 “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했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고 전했다. 힘없는 백성이 자기 살기 바쁜 비겁한 군주를 만난 운명의 탓이 아니겠는가?

ⓒ국회 홈페이지
국감 갑질, 사농공상 의식이 낳은 적폐가 아닐까? ⓒ국회 홈페이지

재벌 오너나 기업의 대표이사에게 국정감사는 저승사자다.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받으면 군 입대 영장을 받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국감 시즌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군 입대 영장 날리듯이 증인 소환장을 남발한다. 증인은 한 명인데 부르는 상임위는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다. 특히 매년 소환되는 단골 증인들도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기업들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는 여론도 들린다.

국감 현장은 가관일 때도 많다. 이들이 일부 몰지각하고 준비 안 된 국회의원들에게 삼배구고두례 수준의 갖은 수모를 겪고, 훈계를 듣는 경우가 다반사다. 60~70대 대기업 오너들이 20~30대 국회의원 나리들에게 경영 컨설팅도 듣기도 하고, 심지어 인생 교훈 강의를 듣기도 한다.  

국회의원에게는 헌법과 법률이 주무기다. 헌법 제61조 제1항은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국회의원이 헌법을 들이대며 증인으로 나오라고 해도 무조건 나가야 한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2조는 국회에서 안건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관련해 증인ㆍ참고인으로서 출석이나 감정의 요구를 받은 때에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제6조 동행명령이 발동되고, 제12조 불출석 등의 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결국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빼도 박도 못하고 출석해야 한다. 

단 제3조 <형사소송법> 제148조 근친자의 형사책임 또는 제149조 업무상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 선서ㆍ증언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지만 대개는 거의 출석하게 된다. 소환되는 상임위만 줄어도 ‘땡큐’다.

국정감사 증인은 죄인이 아니다.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위한 증언을 해줄 소중한 국민이다. 현실을 다르다. 죄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호통 치는 국회의원과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는 이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마치 대역죄를 지은 죄인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일부 재벌 오너 중에는 오너 리스크로 똘똘 뭉친 무개념 졸부들도 간혹 보인다. 불법 승계,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재벌 3~4세들의 일탈 등이 넘쳐 나긴 한다. 그런 일탈은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뇌물수수, 성추행, 정치자금법 위반 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수두룩한 의혹의 당사자들이 국회의원 나리들이다. 

국회의원의 국감 증인을 향한 갑질 태도는 한민족 특유의 적폐,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열폭(열등감 폭발)에서 촉발된 것 같다. 좀 유식하고 권력을 가진 선비가 돈 많은 상인들에게 저지르는 열등감의 갑질로 비쳐진다.

국정감사 증인은 삼전도 치욕의 주인공 인조가 아니다. 재벌 오너나 대표이사라는 이유로 군대 영장 받듯 증인 출석 요구서를 받고, 삼전도의 치욕과 같은 삼배구고두례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증인의 의무를 실행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목적이지, 국회의원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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