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일상스케치(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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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일상스케치(54)]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9.25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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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구애 아냐…피해자의 영혼까지 파괴
거부당할 시 신체적 가해, 폭행 살인까지
강력한 법적 조치, 처벌 예방 함께 강화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과연 그럴까? 한때 구애나 진실한 사랑의 표현으로 통하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오랫동안 사랑의 묘약처럼 내려온 속담이자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적 유산이 이젠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로 퇴색했다. 그와 같은 행위가 사회적 풍토상 더 이상 일편단심 민들레가 아니다.

물론 끔찍한 사건의 피의자인 스토킹 범죄자들은 실제 일정 부분 속담과 유사한 심리·행동을 보인다. 문제는 속담이 목표 달성을 위해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그들은 목표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망상, 광기, 또 그로 인한 폭행, 살인 등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실상 '끔찍한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는 말을 가해자 중심으로 해석하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가 스토킹을 일종의 로맨스로 보는 등 관대했다. 그러나 일부 무분별한 스토커에 의해 병적 집착과 소유욕이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엄중한 잣대의 강력한 법적 조치와 함께 사회적 시각도 변화해야 한다.

스토커들 병적 집착, 폭행 살해로

스토커 병적 집착, 더이상 구애가 아닌 중범죄다. ⓒ연합뉴스
스토커 병적 집착, 더이상 구애가 아닌 중범죄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31)은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부 화장실에서 입사 동기인 여성 역무원 A (28)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전주환은 이미 불법촬영 및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사건 당일은 1심 선고 예정일 하루 전날로 경찰은 전주환이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계획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씨를 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다.

이렇게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끔직한 살인 사건에 스토킹 문제가 또다시 여론의 이슈가 되고 있다. 앞서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알게 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 결국 피해자와 그 여동생, 어머니까지 살해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24)이 다시 떠오른다.

김태현은 두 달에 걸쳐 스토킹을 벌였고, 피해자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자 살인이라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또 헤어진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한 이석준, 신변보호 중이던 여성을 살해한 김병찬 등, 지난해 신상이 공개된 흉악범 10명 중 절반은 스토킹 또는 교제 살인 피의자였다.

전문가 "현재 법률안 피해자 보호 담보 어려워"

스토킹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정신적·물적 피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다른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법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결국 범죄는 더욱 잔혹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범행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일종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미온적 대처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피해자의 대다수는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더라도,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지금까지는 스토킹이 실제 범죄로 이어지더라도 많은 가해자가 중형을 피할 수 있었다. 스토킹 그 자체를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가해자의 범죄를 잘게 쪼갠 후 처벌 법규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만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스토킹, 폭행 등을 저지른 가해자 가운데 48.6%가 집행유예, 벌금형 등을 통해 실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경계의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은 스토킹이 피해자에 대한 단순한 집착과 접근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흉악하고 위험한 범죄이다.

스토커의 범죄 심리

그런데, 왜 스토커들은 사랑이란 미명아래 종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대다수 스토킹 범죄자들은 상대방을 물건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등 강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이다. Stalking은 '은밀하게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의 영단어 Stalk의 명사형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것이다. 여기엔 전화, 이메일, 편지 등을 보내 괴롭히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스토킹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된 사회에서 주로 나타나는 선진국형 병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스토킹 범죄자들에게 병적 집착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스토커들을 상담한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들은 보통 어릴 적 가정환경 또는 이성, 교우관계에서 방치, 학대, 거부당한 경험 등 정서적 감정 결핍과 불안정한 정서 등이 피해의식으로 이어지면서 이를 심리적 보상 또는 보복하려는 비뚤어진 심리 상태가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내성적 성향의 스토커들은 평소 피해의식을 쌓아두었다가 영화나 뉴스 등을 통해 모방범죄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례가 많았고,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며 타인과 대화기술이 부족한 사람도 이 같은 성향을 보인다.

여기에 집착이 점점 강해지면 ‘망상장애’에 이른다. 망상장애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잘못된 신념이 생긴 상태다. 친절을 호의로 해석해서 연애 망상을 부풀려 갈 때도 있으며 열렬하고 집요한 구애가 시작된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자기의 기대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이면 배신당했다면서 거꾸로 원망을 하기 시작한다. 그 본성을 모르고 섣부르게 사귀었다가는 "죽여버린다", "불 지르겠다" 등 협박을 하고 실행하기도 하는 등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스토킹 대응책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들의 이 같은 집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하거나 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잘못 접근하고 이해해줄 경우, 오히려 망상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스토커들은 정상 소통으로 설득이 어려운 상태”라며 “이해하고 도닥여주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나 거절했을 때 반발이 더 세져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면 정확히 상황을 파악한 후 차단하고,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초기부터 정확한 의사 표시와 함께 법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스토킹 근절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더불어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등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는 사회적 통념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상훈 서울시의원이 신당역 사건을 두고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폭력적 대응을 했다"라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편 이수정교수는 "초기 단계에서 위험한 스토킹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면 수사기관에서도 구속영장 신청, 임시조치 등의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에서 계획범죄로, 이후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하는 게 너무 필요하다. 싫어하는 행위를 하는 건 상대에게 위협을 하는 거나 진배없다는 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격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문제점과 현황

그동안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지속적 괴롭힘)’에 의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해 왔지만, 엄중한 처벌과 효과적인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021년 10월 21일부터 이원화 및 분리 시행되어 처벌 수위가 한층 더 강화됐다.

그러나 '반의사 불벌죄' 조항으로 한계가 지적된 바, 정부는 스토킹 처벌법에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부터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범죄와 관련된 법안, 그리고 범죄 대응 방식에 손질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무부 장관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 국가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폐지 법안 발의를 넘어서서 가해자에 대한 위치 추적이라든가 임시 조치를 조금 더 (해서) 간극을 메우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은 물론 이미 수사가 종결된 사건까지, 전국의 스토킹 사건을 전수 조사하기로 했다. 또 가해자에 대한 유치장 구금조치 등을 적극 적용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분리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처벌법스토킹 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드러나는 법규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한편, 타인에 대한 부지불식 중의 행동이 스토킹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계도하는 작업, 스토킹 근절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 등이 필요하다.

제발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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