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역할론②>김현철, SNS 통해 "상도동 하나로 뭉치자"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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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역할론②>김현철, SNS 통해 "상도동 하나로 뭉치자"호소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09.26 16: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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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총선 이후 페이스북 통해 포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의 SNS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김 전 부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편지형식으로 장문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이 안에는 상도동계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있다. 더 나아가 상도동계의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김 전 부소장의 SNS 정치가 2012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필자가 김 전 부소장의 글을 접하게 된 것은 지난 4월 총선이 끝나고부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의 글은 직설적 화법을 통해 ‘상도동계의 대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김 전 부소장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YS의 아들이기 이전에 오랜 ‘정치경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7년 이래 정치권을 떠나 있었던 적은 없다. 다만 여건이 맞지 않아 원내로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다.
1987년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나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의 선거원으로 뛰면서 정치판에 얼굴을 알린 그는 금배지를 달기 위해 노력했던 시점은 1996년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에게 이번 19대 총선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으로 임명돼, 그동안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정치를 탐색해 왔다.

하지만 이번 4월 총선에서 그는 낙천했다. 아예 경선에 참여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공천을 관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부소장의 부친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평생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1979년 독재정권의 끝자락에서 박 전 대통령은 YS 제거에 나섰다, 부메랑이 돼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는 박 전 위원장이 김 전 부소장에게 공천을 주기가 불편했을 것이란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총선 후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사오늘>이 그 뒤를 따라가 봤다. <편집자주>

▲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상도동계의 대동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문민정부 재평가 받아야

『지난 수요일 4월 18일은 저의 아버님의 기념도서관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셨지만 저는 이 날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현대정치사에 산증인이시자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큰 공로를 남기신 인물로 기억될 것이고 앞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평생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결과 악랄했던 군부독재를 영원히 이 땅에서 몰아내는데 가장 큰 공로자이자 평생을 의회민주주의에 바친 분으로서 역사에 반드시 합당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과거 박정희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시다가 초산테러도 당하시고 군부독재를 옹호하지 말아달라고 미국에 호소하시다가 국회사상 초유의 제명까지 당하는 탄압을 당하셨지만 결국 이에 분노한 부산 마산 시민들의 부마항쟁에 의해 박정희는 부하인 당시 정보부장인 김재규에 의해 총살을 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습니다.

이후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으로 말미암아 당시 꺼져가던 민주화의 불씨를 다시 살려 결국 6·29항복을 받아내면서 지긋지긋한 30여 년 간의 군사독재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문민정부수립이후 잔존하던 군내부의 사조직을 완전히 뿌리 뽑고 경제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던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고 풀뿌리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하고 또한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토록 하면서 투명한 정부상을 수립하였습니다.

앞으로 아버님의 기념도서관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참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신 아버님의 업적을 올바르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해 저희 도서관과 관련된 모든 분들이 더욱 열심히 노력해 나갈 것을 약속드리면서 내년 6월 준공과 그 이후의 모든 사업에 계속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4월21일자 김현철 페이스북 글』

이 글을 요약해보면, 문민정부에 대한 재평가를 받자는 요지다. 특히 평생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자신의 부친인 YS에 대한 재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5월 2일자 글을 보면 김 전 부소장의 생각이 좀 더 확연해 진다.

“상도동계 하나로 뭉쳐야”…호소

『저는 오늘 소위 상도동사람들이라는 분들에 대해 문득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그 분들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과거부터 회고하면 그 캄캄했던 군사독재시절 아버님의 민주화투쟁에 적극 동참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에 목숨을 걸고 동지의 길을 결연히 같이 갔던 사람들.

그 결과 상도동사람들은 아버님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화에 성공했고 함께 문민정부를 창출했다. 이후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문민정부와 더불어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던 상도동사람들이 97년 대선이후 정권교체와 더불어 특히 정치적으로 여야로 갈리고 각 정파 계파의 이해관계 속에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는 상도동이라는 상징성만 유지한 채 각자의 위치에서 극히 상징적인 모임 에만 얼굴을 내밀 정도가 되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만일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엔 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DJ서거이후 현재까지 차분히 동교동을 지키고 유지하며 DJ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교동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상도동사람들은 아버님의 입원소식에도 병문안조차 인색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들로서 참으로 씁쓸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5월 2일자 김현철 페이스북 글』

이글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상도동계가 흩어지는 현실에 대해 섭섭한 심경을 드러낸 글이다.

김 전 부소장이 이 같은 글을 쓴 이유와 관련해, 4월18일 열렸던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기공식에 대표적 YS계 인사인 김무성 새누리당 전 의원과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김무성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40대에 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현재 ‘김영삼 민주센터’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청원 전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당대변인과 총재비서실장, 정무장관 등으로 중용되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특히 서 전 대표의 자택과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 사이의 거리는 1km 내외에 불과하다고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친박계 인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YS와 멀어진 반면, 박근혜 후보와 가까워진 것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한 듯 보여진다.

이 같은 글을 쓰게 된 것은 허물어져 가는 민주계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친박으로 돌아선 인사들에 대한 배신감 등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민주계 인사들의 ‘대동단결’을 호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군정세력과 김대중 세력, 더 나아가 노무현 세력 등은 정치세력으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상도동계는 정치세력화에 실패한데 따른 회한이 담겨있는 듯하다.

김 전 부소장이 쓴 4월 29일자 페이스북 글을 보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을 하고 있다.

“한보사태, 나와는 무관”…적극 해명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은 15년 전 얘기인 97년의 정말 불편한 진실을 한번쯤은 진실과 더불어, 사실이 많이 잊혀져가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팩트를 알고 넘어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권력이든 후반기에 접어들면 권력비리니 하면서 과거 내 문제를 비교하면서 거론하기에 더욱 진실을 알려야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나와 한보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마치 내가 한보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얘기하는 일은 앞으로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97년 당시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목적을 지닌 야당의 의도적인 정치공세와 언론들의 무책임한 선정성 보도로 내가 한보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되었으나 당시 검찰이 수개월에 걸쳐 3백여 명의 수사관들을 동원하여 이 잡듯이 내 주변을 수사한 결과 한보와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수사결과가 나왔다.

당시 한 수사검사가 뭔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깨끗할 줄 몰랐다. 내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도 믿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나와 한보사건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둔다. 그동안 세상의 숱한 오해와 비난에도 어떻게 해명할 길도 없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에 묻고 살아왔으나 나와 한보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검찰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졌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구속까지 되었는가? 아버님이 출마하신 1992년 대선은 정치자금법이 제정되기 이전이었고 선거 때마다 기업 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 받아 선거를 치르는 게 당연시 되었던 시기였기에 대선기간 중 관행처럼 선거자금이 선거캠프에 들어왔다.

그 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보사건이 터지고 나를 한보사건의 핵심(몸통)으로 지목해놓고 검찰수사가 시작되었으나 위에 언급한 대로 한보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나자 난처해진 당시 검찰이 면피용으로 대선 때 선거캠프에서 받은 선거자금을 문제 삼았다.

대선 후 남은 선거잔금에 대하여 세금(이자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거자금에 조세포탈죄를 적용해 나를 구속시킨 것이다.

4월 29일자 김현철 페이스북 글』

이 글은 당시사건이 정치적 사건이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신이 개인이나 기업의 돈을 받아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행적인 선거자금의 사후 관리 문제를 떠맡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고 강조했다.

결국 김 전 부소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우선은 YS와 문민정부의 재평가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 큼지막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YS가 저평가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적극적 해명에 나서 이런 오해들을 불식시키겠다는 표현이다.

이와 더불어 민주계 인사들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을 만들어 낸 첫 정치적 인맥인 상도동 사단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에 대한 회한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동교동계와 비교하며, 친박으로 넘어가 ‘김영삼 기념도서관’ 기공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인사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1997년 당시 억울한 심경에 대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처럼 김 전 부소장의 SNS 정치가 상도동계를 한 곳으로 끌어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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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 2012-09-28 14:41:53
문민정부를 세운 김영삼대통령을 존경하면서 다시 상도동계의 부활을 위하여 대동단결하시길 바랍니다 현철씨의 의견에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