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미국통 박정양과 윤석열 대미 외교 파문 [역사로 보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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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미국통 박정양과 윤석열 대미 외교 파문 [역사로 보는 정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10.03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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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은 외교 재앙의 씨앗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문화재청
신미양요의 현장 광성보 ⓒ문화재청

분열은 재앙의 씨앗이다. 외교는 국론 분열이 망친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무기로 전투는 승리했으나, 국론분열로 전쟁에서 졌다. 결국 베트남은 패망했다. 

박정양(朴定陽)은 19C 미국 대통령을 만난 한민족 최초의 대미 전문가다. 박정양은 1881년 조사 시찰단을 이끌고 일본에 가서 문물을 시찰했다. 귀국 후 이용사(理用司) 당상 경리사(經理事)로 임명돼 개화 정책을 추진했다.

박정양은 외교 미개국 조선의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 미국 방문이다. 미국은 불과 26년 전 신미양요를 겪은 적대국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청과 일본의 갈등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했다.

대미통 박정양에게 1887년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해 주미전권공사에 임명됐으나 사실상의 조선 총독인 청나라 위안스카이의 압력으로 부임이 좌절됐다. 뚝심의 박정양은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미국행을 강행해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에게 신임장을 신청했다.

분노한 위안스카이가 갖은 협박을 가하자 결국 박정양은 사임하고 1889년 귀국했다. 고종은 미국에서 귀국한 박정양을 불러 미지의 나라 미국의 실상에 대해 요목조목 확인한다.

<고종실록> 고종 26년 7월 24일 기사 제목은 ‘미국주재 전권 대신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을 소견하다’로 기록됐다.

고종은 “그 나라에 주재해 있을 때 대통령이 접대하는 절차는 어떠했으며 접견할 때마다 악수로 인사를 하던가?”라고 물었다.

박정양은 “그들이 접대하는 절차는 기타 각 나라들과 같았으며 극히 친절했습니다. 서양 풍속에서는 악수하는 것으로 접견할 때의 항상 된 예절로 여기기 때문에 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서는 그 인사법을 따라 악수로 인사를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고종은 미국의 부강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박정양은 “그 나라가 부강하다는 것은 비단 금이나 은이 풍부하다거나 무기가 정예하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부를 정비하고 실리에 힘쓰는 데 있으며, 재정은 항구세를 가장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은 담배와 술이고, 그 다음은 지조(地租)이며 기타 잡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항구세는 관세를 의미한다.

그는 미국이 항구세 인하가 정치쟁점이 된 상황을 소상히 밝히면서 “그 나라가 부유하게 된 요점은 전적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데 있고, 비용을 절약하는 요점은 전적으로 규모에 달려 있습니다. 그 나라의 규모가 주도면밀해 일단 정한 규정이 있으면 사람들이 감히 어기지 못합니다”라고 보고했다.

미국 공직사회와 국민성에 대해서 “관리로 말하면 나랏일을 자기 집안일과 같이 여기며 각각 자기 직책의 정해진 규정을 지키고 한마음으로 게을리하지 않으며, 백성으로 말하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각 자기 일에 종사합니다. 전국을 통계해도 놀고먹는 백성이 드물기 때문에 재정이 이로 인해 부유하고 규모가 이로 인해 주도면밀한 것"이라고 극찬했다.

통상 대국 미국의 저력을 실감한 박정양은 ‘항구세’ 보고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미국의 항구세는 수출세를 낮게 해 주민들이 생산에 힘쓰도록 장려하고, 수입세를 높여 외국 물품이 백성들의 돈을 거둬 내가는 것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것은 그 물품에 따라서 백성들에게 유리한 것은 세를 가볍게 해 들여오도록 하고 백성에게 해로운 것은 세를 무겁게 해 막아 버립니다.”

박정양과 고종의 대화를 보면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관세를 중시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 기본 원칙도 변함이 없다. 반면 조선은 박정양의 정확한 정세 판단에도 불구하고 정쟁에 몰두하다가 결국 일제의 사냥감이 됐다. 외교 미개국 조선의 현실이 낳은 참사다.

ⓒ제20대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리고 박진 외교부 장관 ⓒ제20대 대통령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방문이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윤 대통령의 막말 의혹을 놓고 여야가 사생결단식 치킨게임에 몰입 중이다. 지난 29일 더불어민주당 단독 표결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대응했다. 여권도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어 전면전이 시작됐다. 역시 민생은 뒷전이다. 외교참사가 아닌 국정참사다.

미국은 100여 년 전과 변함없이 자국 우선주의에 충실한데 한민족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쟁 우선주의다. 경제위기의 시점에 막말 진실 게임이 더 중요한 한국 정치권, 최초의 대미전문가 박정양은 어떤 진단을 내릴까? 부끄럽고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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