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만능주의…‘인민재판 데자뷔?’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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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만능주의…‘인민재판 데자뷔?’ [기자수첩]
  • 박지훈 기자
  • 승인 2022.10.08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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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비속어 사용 논란…전문적인 방법으로 사실관계 진단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지훈 기자]

‘여론조사는 만능 해결사?’

지난달 22일 MBC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뒤 “국회에서 이 XXX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냐?”라며 동맹국을 폄훼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외교 참사라며 십자포화를 날렸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사실이 아닌 왜곡보도를 했다며 MBC와 설전을 벌였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 워딩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었다고 정정했고, 대통령 본인도 귀국 후 도어스테핑 자리에서 바이든이라 한 적 없다고 거듭 못박았다.

바로 옆에서 동행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 역시 대통령은 바이든이라 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워딩 중 ‘국회’라는 단어를 근거로 본 발언의 취지는 미국 의회를 가리킨 것이 아닌, 대한민국 국회에서 승인 안 해줄 것을 우려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수의 음성 분석 전문가들도 논란이 된 영상 속 윤 대통령 발음의 정확도를 측정하기에는 주변의 소음이 많아 분별하기 어렵다고 진단한 바 있다. 또 음성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관련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시도해야 하는데, ‘바이든’ 각인 효과가 워낙 커서 이미 측정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논란이 확산되자 급기야 여론조사까지 등장했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에서 응답자들한테 대통령 발음이 바이든으로 들리는지, 날리면으로 들리는지를 묻는 조사였다.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일을 여론조사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게 가능할까싶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사람들이 더 손을 많이 드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게 옳을까? 흡사 인민재판을 보는 듯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여론조사가 나오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여론조사가 사실을 확인해 줄 수는 없다. 머릿 수로 팩트가 호도될 수도 없다. 팩트 체크도 여론조사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논란이 담긴 동영상은 전문적인 방법을 동원해 사실을 가려야 한다. 사실의 영역을 의견의 영역으로 끌고 와선 안 된다.

다만, 이런 문제제기 조차 없는 듯해 씁쓸하다. 그만큼 여론조사 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담당업무 : 정경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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