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노란봉투법’인가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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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노란봉투법’인가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10.09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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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해결책보단 이슈화에 목매는 정치권…문제 해결 의지 있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노란봉투법’이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시사오늘 김유종
‘노란봉투법’이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시사오늘 김유종

‘노란봉투법’이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국회 의석 중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중점 처리 법안으로 지정, 연내 처리를 공언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원내 지형상 법안 통과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입니다.

범야권이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청구가 노동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이나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해야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다만 노란봉투법을 대하는 범야권의 태도에는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방향은 불법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는 수용이 어렵습니다.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건 민법의 가장 기본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라는 이유로 이 원칙에서 배제될 이유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노동권 제약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오히려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현실적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합법 파업의 범위가 매우 좁습니다. 주체, 목적, 절차, 수단이 모두 정당해야 합법적인 파업이 되고, 손해배상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성 인정 범위가 협소한 데다, 하청에 재하청이 일어나는 구조 속에서 합법 파업 범위에 들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도 “단체교섭 대상과 쟁의행위 대상 및 목적을 확대하는 것이 손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안에는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학계에서 ‘불법 파업이라도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는 국회 문턱도 넘기 쉽지 않다’는 충고가 나오지만, 민주당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이러다 보니 노란봉투법이 ‘정략적 법안’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손해배상 제한 조항을 제거하고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민주당은 이상하리만치 손해배상 제한 문제를 부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사안을 이슈화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의심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더욱이 노란봉투법이 처음 발의된 건 2015년이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제19·20대 국회 때도 노란봉투법은 발의됐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폐기됐습니다. 그러던 민주당이 이제 와서, 그것도 오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이슈화하기 쉬운 조항을 앞세우는 건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정말 노동자를 위한 법일까요 아니면 민주당을 위한 법일까요. 민주당이 진정 노동자들을 위한다면, 윤석열 정부를 곤란하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일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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