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장’ 국론향배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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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핵무장’ 국론향배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2.10.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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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진정 파국을 원하는가
9.19합의 파탄…정부 전면적 대응 필요
이래도 ‘北비핵화’에 발 묶일텐가
핵우산 신뢰성 확보가 우선
北 “핵 무력 무한대”, 모든 옵션 검토할 때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연합뉴스 제공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도발이 잇따르고 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폭주가 끝이 없다.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내 놓고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한 전술핵 실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미 개발을 끝낸 다양한 미사일에 실어 유사시 언제든 남쪽을 타격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우리 군의 방어망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불안하기만 하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집권기간 내내 북한 권력과 '평화 쇼'를 벌인 후유증이 드디어 노골화 되기 시작한 형국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의 7차 핵실험 임박은 이제, 우리만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고수할 수 없게 된 상황과 맞물린다. 

전략적 효율성에선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게 최상이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빈도와 양상 모두 심상치 않다. 북은 이미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고 7차 핵실험 준비도 마쳤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중·러의 반대로 북한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조차 못 냈다. 한마디로 나라가 비상 상황이다. 이 위기 상황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북한 김정은이 만든 것이다. 

박정희 정권 ‘공포의 균형’ 설정과 유사

그걸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이 ‘핵으로 한국 선제 타격’을 법제화한 북엔 제대로 말도 못 하면서 오히려 우리 정부에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정국을 대변한다. 국내 정쟁에 빠져 분별을 잃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과 동등한 핵 전력을 우리나라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재배치하거나 미국과 핵 공유를 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불붙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 “물리적인 이런 도발에는 반드시 정치공세와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사회적 공세가 따른다”며 확고한 ‘대적관’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헌법수호 정신을 강조했다. 이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유행했던 ‘반공·방첩’ 구호만 빠졌을 뿐 향후 대북 전략을 강 대 강 대결을 통한 ‘공포의 균형’으로 설정한 것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강한 안보 없이는 경제도 없다

북한이 7차 핵실험까지 성공한다면 동북아 안보 정세는 요동칠 것이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지정학적 위기가 자칫 경제로 옮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미국의 연이은 기록적 물가상승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한국에 고환율, 고금리 충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역수지와 성장률, 경제 전망 지수 등 각종 경제지표는 악화 일색이다. 

안보 위기마저 가중된다면 우리 경제가 제2 금융·외환위기로 비화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안보 불안 불식을 위해선 압도적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 3축 체계 보완 및 조속 구축 등 미사일과 핵 방어력을 강화하는 게 다급하다. 강한 안보 없이는 경제도 없다. 북핵 대응을 두고 ‘안보 포퓰리즘’ 논쟁을 벌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기존 1~6차 핵실험 때와는 위기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의 확장억제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든 전술핵을 재배치하든 눈앞에 닥친 북 핵 위협을 억제할 체계 구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전술핵 재배치와 핵 자체 개발론

그런 면에서 우리의 대응체제는 너무도 허술하기만 하다. 현무-2C 낙탄 지점도 당초 알려진 공군 부대 골프장이 아니고 부대 안 유류저장고 한가운데로 드러났다. 불발탄이 아니었으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것이다. 두 기종은 북한의 도발을 사전 탐지하고 선제공격으로 무력화하는 3축체계의 하나인 ‘킬체인’의 핵심 전력이다. 이러고서야 국민이 어떻게 군을 믿고 발 뻗고 잠잘 수 있겠나.

이런 상황이니, 정치권과 학계에선 전술핵 재배치나 핵 자체 개발론까지 나온다. 주변국 반발이나 NPT체제 붕괴 등을 들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많지만 가능성까지 차단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어떻게 하든 비대칭 전력인 북한 핵을 억제할 실질적 수단을 마련해야만 한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갈래의 핵 무장론을 분출시키고 있다. 이제는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미군 전략 자산의 상시 전개 등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을 검토할 때가 됐다.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만들려면 ‘공포의 균형’ 추진을 지렛대로 삼아 완전한 북핵 폐기를 유도하는 길로 가야만 할 것이다.

여야 갑론을박은 더 큰 문제

유사시 핵 자산 배치 등 최고 수준의 확장 억제 가동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파기와 군비 경쟁의 촉발, 핵 도미노 야기 등 논란을 비켜나가면서도 핵우산 공약의 신뢰성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핵 위협에 직면한 한반도 안보 상황은 단 한 차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 잘못하면 영원히 핵을 이고 사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만반의 대응 태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안보 전략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제 궤도를 이탈해 국론 분열의 길로 빠져드는 것도 경계는 해야 한다. 국민 전체는 한반도의 긴장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선 대응방안을 놓고 여야로 갈려 갑론을박만 벌이고 있으니 더 큰 문제다. 북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확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우리쪽 대응태세에는 이미 실질적으로 적잖은 허점이 드러났다. 며칠 전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군이 쏜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 2발 중 1발은 비행 도중 추적신호가 끊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 직전 역시 대응사격에 동원된 현무-2C 탄도미사일이 목표지점과 정반대로 날아 떨어지는 낙탄 사고도 생겼다. 이후 북 전투·전폭기들의 무력시위 때 우리 군의 최첨단 스텔스기 F-35A가 어처구니없게 기관총 실탄도 없이 대응출격하는 일도 벌어지고 말았다.

9·19 군사합의 사실상 휴지 조각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가. 특기할 점은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을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들에 작전 배치된 장거리 전략 순항미사일"이라고 한 것이다.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는 의미다.

사실이라면 우리 안보의 큰 위협이다. 비행거리 2천㎞ 안이라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과 대만도 사정권에 든다. 기동회피 성능을 갖춘 데다 다른 미사일과 섞어 쏘면 미사일방어시스템으로 요격이 어렵다.

이러한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 준수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북한의 도발로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는데 우리만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9·19 합의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핵심 내용은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수와 DMZ 인근 비행정찰 활동 금지, 서해 완충수역에서 적대 행위 금지 등으로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 방지와 평화 정착이 목적이지만 실상은 우리 군의 눈과 발을 묶는 '자해'였다. 이 합의에 따라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연대급 이상 실기동 훈련과 3대 한미 연합훈련은 중단됐다.

새 판 짜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배경은 더욱 주목된다. 북한의 도발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를 극단으로 몰아가겠다는 의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이번 포 사격은 탄착 지점이 북방한계선(NLL) 북방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 내로 명백한 9·19 군사 합의 위반이다. 

북한이 다시 9·19 합의를 위반하면서 합의 파기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와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합의가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핵실험과 같은 추가 도발을 할 경우 합의를 아예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9·19 합의를 파기하면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며 오히려 더욱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북한이 9·19 합의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으니 파기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파기했을 때의 효용은 무엇인지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북한이 9·19 합의를 위반하면서까지 도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대미, 대북 관계의 새 판을 짜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좀 더 큰 틀에서 대북 관계를 조망하면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부도 이런 식의 떼쓰기식 도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활로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나 도를 넘으면 결국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북 방어 체계 전반 재점검을

미사일 도발로 국한하면 북한은 올들어 탄도미사일 24차례, 순항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다. SRBM 발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3번째이고 지난달 25일 이후로는 8번째이다. 이처럼 도발 수위를 부쩍 높이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는 별도로 파악해 대처해야겠지만 당장은 철통같은 대비 태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북 독자 제재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한 직후인 2017년 12월 이후 5년 만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막는 것은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제재나 규탄이 아니라 물샐틈없는 국방이다. 북한이 최근 저수지와 이동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대형 방사포와 섞어 쏘는 등 탐지·요격을 회피하는 방식을 선보이면서 한국형 3축 체계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 가운데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발사한 우리 군의 미사일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거나 추적 신호가 끊기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북한의 도발은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가 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는 등 대북 방어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주길 바란다.

파탄난 9·19...국론분열 없도록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배해 여러 제재 조치를 받고 있지만,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또 다른 문제다. 9·19 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모든 기종의 비행금지, 포병사격훈련 중지,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에서의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중지가 명시됐는데 북한은 명백하게 깨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파탄난 9·19 합의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번 동시다발 도발에 대해 단순한 비례적 대응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압도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도발에 대한 대응을 실전 연습으로 삼아 더 강력한 국방태세를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핵 역량 강화에도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 등 주변국에 미리 불가피성을 설명해 사드 사태 재발을 예방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론 분열이 없도록 야당과 국민에게도 소상히 사정을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항만과 공항 등 우리 기간시설을 겨냥한 전술핵 미사일 발사 시험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 중심의 ‘3축 체계’(킬체인,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만으론 대응에 한계가 있다. 현 대응체계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설계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북한이 다양한 핵탄두와 탑재체 개발에 사실상 성공하는 등 안보현실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그에 맞는 대응체제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도 '현실'

이와 관련,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그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1991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파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핵 전력을 갖췄는데 우리만 스스로 손발을 묶어 놓을 순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대북핵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것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전과는 달리 전술핵 배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발언을 내놨고, 여권에서도 핵무장 주장이 연일 제기되고 있는 건 이 같은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북한 핵문제는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북한은 지난달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 둔 법령을 제정한데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선제 전술핵 공격훈련을 공개지휘하는 등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보름 동안 7차례에 걸쳐 12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는 전술핵 대응능력까지 과시했다. 2006~2017년 6차례 핵실험을 단행한데 이어 연내 7차 핵실험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도화된 북한의 핵 능력에 대응할 수 있는 핵 억제 방안은 제한적이다. ‘공포의 균형’이라는 말이 있듯 핵은 핵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지만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방안 등 각종 핵무장론은 북한의 오판과 중국의 반발, 일본의 연쇄 핵무장을 도미노처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긴 하다. 이런 점에서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미 전략자산을 지속적으로 한반도에 순환배치하는 일종의 확장억제책은 이런 우려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 테이블에 올릴만하다.

결단의 시간 다가왔다

그동안 북한은 겉으로는 비핵화 운운하면서도 내부적으론 핵무장에 전력을 다한 결과 이젠 사실상 (de facto) 핵보유국이 됐다. 문재인정부 시절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는 물론 북한 비핵화의 근거였던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현실적인 핵 균형 없이 비핵화에만 매달리는 건 안보주권을 팽개치는 일이나 매한가지다. 김정은이 대화의 문을 닫으며 사실상 외교적 해법이 무산된 상황에서 실질적인 핵 억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결단의 시간은 다가왔다.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음을 전제로 세운 대북정책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놓고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핵에 대항하는 길은 핵뿐이란 점에서 각각의 주장에는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과 험난한 과정, 간단치 않을 여파를 생각하면 칼로 무 베듯 간단하게 결론지을 일이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파기” 등의 주장이 여당 지도부의 입에서 나오고 야당이 반박하면서 정쟁의 소재가 되고 국론 분열상을 드러내는 것은 북한만 이롭게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로 비핵화공동선언이 깨진 현실과, 한국 정부가 공식 파기 선언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핵 무장이나 핵 재배치는 한국 정부의 의지나 독자적 능력만으로 실행할 수 없거나, 어마어마한 후과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옵션에 대한 검토는 물밑에서 정밀하게 이뤄지는 것이 옳다. 여론에 편승한 정치 공방이나 인기 정책, 감정적 대응으로 다룰 일이 아니며 책임있는 당국자나 정치 지도자는 정제된 발언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뉴시스<br>
문재인 정부 대통령 임기 동안 북한 눈치만 보는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15일 “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뉴시스

북한 눈치만 보는 한가로운 비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날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현지 지도하는 자리에서 “국가핵전투무력을 무한대로 가속적으로 강화 발전시킬 것”이라며 고강도 도발을 예고했다. 이날 발사된 2기의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은 2000㎞ 계선의 표적에 명중했다고 한다. 북한은 ‘핵 선제공격’ 법제화에 이어 지난달 25일 이후 미사일을 여덟 차례나 발사했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비핵화 의지’를 외치며 대화 타령을 하다 초래한 결과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임을 깊게 반성해야 한다. 북한의 여섯 차례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로 남북이 1991년 발표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파기된 셈이다. “우리만 비핵화 선언을 고수해야 하느냐”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데도 합동참모본부는 미사일 발사가 이뤄진 하루 뒤, 그것도 북한 매체가 보도한 뒤에서야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도 아니고 제재대상도 아니어서 즉각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유인데, 너무도 안이하다. 최근 북한 안보 위협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리도 엄중한데 더불어민주당의 사고와 행동이 문재인 정부 때의 환상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개탄스럽다. 핵을 가진 북한을 우리 군사력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비대칭 전력 상황이 엄연한 현실인데 북한 눈치만 보면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나 비판하는 행태는 한가로워 보인다. 국가 위기 때에는 야당도 정쟁을 멈추고 중지를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과 긴밀한 협의...한 치 오차없는 정보교환을

아직까지는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와 관련해 미국 조야에 부정적 기류가 있지만,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벌여 북핵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지킬 수 있는 실효적 성과를 일궈내기 바란다.

강 대 강 대북 전략엔 철통같은 대비태세가 전제돼야 한다. 9·19 합의를 섣불리 파기했다가 북한에 말려들 수도 있다. 북한이 9·19 합의를 조롱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통해 대미 관계의 새 판을 짜려는 차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진의 파악이 우선이고 한·미, 한·일의 공조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미국과의 핵우산 강화 협력도 중요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보교환과 긴밀한 대화가 더 절실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여당이 내부 결집용 안보 포퓰리즘에 집중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실시한 한미일 해상 훈련을 두고 “극단적 친일” “자위대 한반도 진입”이라며 반대했다. 한미일 훈련은 문재인 정부에서 합의했고, 훈련 해역도 독도보다 일본 본토에 훨씬 가까웠다. 다른 문제를 떠나 지금 세상에 무슨 ‘친일 몰이’인가.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수사에서 국민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죽창가’를 불렀고 ‘조국 사태’ 땐 느닷없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선언했다. 총선을 앞두고 ‘한일 갈등이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안보 포퓰리즘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군사합의 파기 수위...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

문재인 정부는 '가짜평화쇼'를 위해 애써 모른 척했다. 심지어 9·19 합의 4주년을 맞아 문 전 대통령은 합의를 내팽개친 김정은을 따끔하게 질타하기는커녕 "정부가 바뀌어도 마땅히 존중하고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훈계하니 황당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합의문은 휴지조각이다. 

더군다나 이번 군사합의 파기 수위와 규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우리만 신줏단지 모시듯 지켜봤자 우리의 대북경계·대응역량만 위축시킬 뿐이다. 북핵은 우리에겐 죽고 사는 문제다. '핵공유'는 물론 전술핵 배치·핵무장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아무런 대안 제시도 없이 민주당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시비를 거는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이 대표도 "정부·여당이 민생보다는 내부 결집용 안보 포퓰리즘에 집중한다"고 했는데 한마디로 코미디다.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탈냉전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것을 이룰 능력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즉각적 위협이라면서도 미국 주도로 세계가 연합해 그 도발에 대응할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NSS는 미 행정부 출범 때마다 내놓는 최상위 전략문서로서 군사 외교 경제 등 전 분야를 포괄한 국가전략을 담고 있다.

당초 올해 초 발간 예정이던 NSS 보고서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반영하기 위해 반년이나 늦게 나왔지만, 지난해 3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제시한 ‘NSS 중간 지침서’에서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침서도 중국을 ‘국제체제에 도전할 유일한 국가’로 규정했다. 당시엔 중국과의 협력, 경쟁, 대결 등 3가지 방향을 제시했다면, 이번 보고서는 중국과의 경쟁에 초점을 맞춰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거스를 수 없는 신냉전 세찬 물살...빈틈없는 한·미·일 3각 공조를

사실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은 가동된 지 오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의 즉흥적 대응을 넘어 종합적인 얼개를 갖추고 포위망을 촘촘하게 짜고 있다. 군사적 대결, 경제 전쟁, 기술 봉쇄까지 불사하며 국제적 연대망도 확대하고 있다. 신냉전 대결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세찬 물살이 됐다. 그 사이에서 동맹인 미국에 한층 다가섰지만 이웃인 중국과도 척을 질 수 없는 한국은 피할 수 없는 시험대로 몰리고 있다.

9·19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DMZ) 내 상호 시범적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지상·해상 및 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등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2019년 서해 완충구역 내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 2020년 중부전선 DMZ GP 총격과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 군용기들이 지난 14일 오전 동서부지역 비행금지구역 북방 5∼7㎞까지 근접 비행한 것 역시 9·19 군사합의 위반이다. 이 정도라면 북한이 더는 합의 이행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9·19 군사합의는 휴지 조각이 된 것이나 진배없다.

우리가 9·19 군사합의에 묶여 비례대응조차 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도발 수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북한이 툭하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는데 왜 우리만 아무 일 없는 듯이 지켜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의 기조는 가급적 북한과 군사적 충돌을 피하면서 9·19 군사합의를 지켜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잦아들지 않으면 정부는 이미 파탄 난 9·19 군사합의 유지 여부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할 수밖에 없다. 중국 및 주변국들의 반발이 예견되는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론은 그다음의 문제다. 북한의 오판을 막고 돈줄을 끊기 위한 확장억제력과 제재 강화가 급선무다. 그런 면에서 북한 인사 15명과 로케트공업부 등 기관 16곳을 독자 제재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다. 7, 8차 연쇄 핵실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만큼 빈틈없는 한·미·일 3각 공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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