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MB는 솔직해져야 한다”
박선영, “MB는 솔직해져야 한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0.03.0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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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여성대변인(자유선진당)의 격정 토로

자유선진당은 2008년 4월 16일 박선영 의원을 대변인에 임명했다. 박 대변인은 2010년 3월 현재까지도 대변인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박 대변인은 이미 최장수 여성대변인 자리에 올랐다.
 
2년여 동안 대변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방송기자 출신의 헌법교수라는 경력답게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운 논평으로 신생군소정당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당의 목소리를 충실히 알렸기 때문인 듯하다.
 
또 하나는 박 대변인의 단아한 모습이 낡고 수구적 이미지를 가진 자유선진당을 분칠하는 데 도움이 돼 최장수 대변인을 만들어 냈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지난 2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342호에서 박 대변인을 만나 여성 최장수 대변인의 생각을 들었다.

▲ 최장수 여성대변인인 자유선진당 박선영의원은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세종시 문제등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시사오늘
“이회창 출연한 토론회에서 인연 맺어”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만 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미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요. 제가 기자를 하던 때는 유신시절입니다. 10.26이 나고 그만 둔 거죠. 가슴이 절절하고 힘들게 일했습니다. 계엄령 아래서 서울시청에 계엄사령부가 설치됐습니다. 기사를 작성하면 원고를 들고 가서 소위, 중위 계급장을 단 군인들에게 검열을 받았습니다.
 
군인들이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서 원고를 마구 고치면서도 한 마디 설명도 없고 기자가 항의를 할 수도 없었죠. 계엄사에서 내린 보도지침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고요. 당시 문화방송 사옥이 정동에 있었는데 덕수궁을 따라 정동으로 걸어가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1983년에는 국비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는데 우리나라 여기자 최초였지요. 프랑스의 언론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언론 현실의 척박함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 암담한 현실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87년 휴직하고 독일에 갔다 와서 사표를 냈습니다. 회사에서는 공부를 겸할 수 있는 자리를 줄 테니 일을 하라고 석 달 동안이나 사표 수리를 안 했지만 결국 퇴사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대학교 4학년이던 77년 여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89년 2월까지 기자생활을 했다.
 
-박선영 대변인을 발탁한 이회창 총재와는 친분이 있던 사이였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몇 년 사이를 두고 이 총재가 출연한 토론회에서 두 차례 사회를 본 일이 있을 뿐 사적으로 식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죠. 어느 날 새벽 전화가 왔습니다.”
 
-이 총재가 직접 전화(공천관련)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고요. 중간에 계신 분이 연락을 맡았지요. 비례대표 3번을 제안 받았습니다.”
 
-박 대변인은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이 총재는 나경원 대변인, 조윤선 대변인 같은 여성 대변인을 발탁해 왔는데 박 의원도 미모가 발탁 원인이 된 게 아닌가요.
“나경원, 조윤선 대변인은 대변인을 먼저 하고 의원이 됐지만 저는 의원이 먼저 되고 대변인이 됐기 때문에 좀 다른 경우라고 봅니다. 제가 최장수 대변인이면서 최연장 대변인입니다. 사실 대변인으로서는 할머니급이지요. 미모를 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 총재가 자신의 보수적이고 낡은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박 의원을 영입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동의하시는지요.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건 지성을 폄하하는 겁니다.”
 
장수 여성대변인으로는 전여옥(622일) 나경원(608일) 조윤선(665일) 의원 등이 있으며 정당 사상 최장수 기록은 4년2개월을 역임한 박희태 의원이 갖고 있다. 박 대변인이 이 기록을 깰지 자못 궁금하다.
 
“세종시 수정안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무너뜨리게 될 것”
 
-자유선진당이 충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지역정당임을 부인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전국정당으로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역주의는 현실이고 전국정당화에 지장이 되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무소속이 소수 당선될 뿐 그 이외 정당은 당선자를 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의 지역색이 가장 강하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지역색이 실제보다 과장돼 있는 듯합니다. 한나라당이 친이와 친박으로 갈라져 있는 것처럼 이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주의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고요.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에도 지역주의가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지역정당이 강한 편이어서 바이에른 주에는 그 주에만 사무소를 둔 정당이 있을 정도입니다. 자유선진당은 창당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지역색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이회창 총재께서 주장하신 ‘강소국 연방제’ 도입이 한 가지 방법입니다. 스위스, 폴란스, 핀란드, 스웨덴 등이 주정부를 설치하고 독립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비슷한 형태로 도입된다면 지역주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정치권 최대의 현안은 세종시 문제인데요. 세종시 원안 관철을 주장하는 이유를 요약해 주시죠.
“지방분권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50%와 경제력의 70%가 집중돼 있습니다. 행정부처가 세종시로 가면 행정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재택근무까지 도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논리가 약합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17대 국회 때던가 해양수산부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고 입장이 바뀐거죠. 김무성 의원은 독립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을 세종시로 보내자는 새로운 안을 냈는데요.
 
대법원과 헌재는 민원기관이 아니고 서류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강원도 철원으로 가도 되고 굳이 세종시로 갈 이유는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분권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회창 총재도 한나라당 총재 시절 행정부처 이전에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조중동이 사실을 왜곡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총재는 수도 이전에 반대했을 뿐 행정부처 이전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충청표를 잃으면서까지 세종시 수정안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뭐라고 보고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한국 경제는 지금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을 보세요. 세종시 아니면 올림픽 소식입니다. 세종시와 올림픽으로 암울한 현실을 덮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나면 남북 정상회담을 띄울 것이고 이어서 개헌을 들고 나오겠지요. 이 정부가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덮기 위해 세종시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생각하면 정확할 겁니다.
 
세종시 수정안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무너뜨리게 될 겁니다. 대통령 형의 지역구인 포항에서도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어요. 세종시 수정안 대로라면 세종시에 80조의 혜택이 돌아가고 세제에서도 혜택이 주어지는데 어느 기업이 기업 혁신 도시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수정안을 거두면 세종시에 특혜를 줄 필요가 없어집니다.”
 
▲ 박 대표인은 최장수 대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심대평 의원은 창당전문가…비난받아 마땅”
 
-심대평 의원 관련 질문 드리겠습니다. 심 의원이 가칭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한다고 하는데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에 타격이 되지 않을까요.
“심 의원에게 표를 줘야한다는 충청 유권자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도의적으로 신당 창당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5년 간 창당을 세 번이나 했는데 창당전문가인가요? 심 의원은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에 나와야 할 텐데 자유선진당의 현실상 충청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 당선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헌 상 비례대표를 다시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먼저 비례대표를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의원이 아니더라도 의회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고요.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의회 생활을 해보니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지역구 의원은 의회 활동에 제약이 심합니다. 지역 민원해결사나 마찬가지지요. 헌법에는 국회의원 정수를 200인 이상으로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 총재가 주장한 것처럼 의원 정수를 210명 선으로 줄이고 이중 비례대표를 100명 선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50대 50입니다. 국회 내에서의 폭력사태를 보면 비례대표 의원은 자기 전문 영역에 대한 자존심이 있어 절대 폭력에 가담하는 일이 없습니다.”
-박 대변인은 동국대학교 교수직을 휴직하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폴리페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폴리페서도 지역구 국회의원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지 비례대표 의원은 전문분야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 권익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수가 지역구에 출마하게 되면 연구와 수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학교수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특히 연 1천만 원에 육박하는 사립대 등록금이 비싸다고 봅니까? 어느 사립대 총장은 외국에 비하면 등록금이 싸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비싸지요. 우리 경제 현실에서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어머니의 뼈를 파먹는 ‘모골탑(母骨塔)’입니다. 다만 땅 한 평에 얼만데 이것이 싸다 비싸다 땅만을 놓고 절대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처럼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대학도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하고요. 학교 운영 자금 중 등록금 의존 비율이 90%에 이릅니다.
 
정부 보조가 거의 없다보니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학생과 교수 비율이 학문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어요. 수업을 강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4대강과 세종시 수정안에 투입되는 수십조 원의 돈을 대학에 투입했으면 합니다.
 
누구나 대학을 가야한다는 문화를 고쳐야 합니다. 외국으로 치면 직업학교에 갈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전부 대학에 가죠. 그러다 보니 너무 대학이 많습니다. 대학마다 노조가 있어 임금 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고요.
 
올해 130개 초등학교가 입학생이 없었습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서울 지역 대학들도 정원을 못 채우는 사태가 발생하겠죠. 경쟁력 없는 대학을 없앨 수밖에 없지요. 편입학이나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대학이 얼마나 많습니까. 등록금 후불제나 졸업세 도입도 등록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바구니’로 불리는 게 싫어 ‘박선영’으로 개명”

 -사형제 폐지 법안을 내셨는데 이유가 뭔가요.
“대구 지하철 사고에서 보듯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사람들이죠. 생명존중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사형제는 폐지돼야 하는 것입니다.”
 
-사형제가 존속돼야 생명이 존중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형수의 보드랍고 순한 면을 발견하는 것이 결국에는 생명 존중 사상을 고취할 수 있습니다. ‘친구’나 ‘박쥐’처럼 폭력성을 조장하는 영화는 좀 없어졌으면 합니다. 낙태에 반대하는 이유도 낙태가 생명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이날 사형제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이 났다.
 
-탈북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남아를 세 번이나 다녀온 것으로 아는데 특히 탈북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동남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8개국에 다녀왔습니다.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고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통일에 대한 대비이기도 합니다.”
 
-이름을 ‘운희’에서 나이 마흔에 ‘선영’으로 바꿨는데 계기가 있나요.
“남편과 배 깔고 엎드려서 생각한 이름이 선영입니다. 침대 생활을 한 지가 얼마
안 돼요. 이름에 ‘계집희(姬)’자가 들어가는 게 싫었습니다. 제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도 아니어서요.
 
저는 ‘여기자’, ‘여교수’, ‘여성 정치인’ 이런 말에 ‘여’자가 붙는 것도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베풀자’는 뜻에서 선영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어느 스님이 ‘영선’이 더 좋은 이름이라고 했지만 선영으로 불리는 것도 좋습니다.”
 
박 대변인의 원래 이름은 박연희다. 하지만 동서기의 실수로 ‘박운희’로 잘못 기재됐다. 개명을 하려면 재판을 해야 했는데 가난한 집안 형평상 그럴 여력이 없어 박운희로 살았다. 하지만 학교생활과 기자로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바구니’라고 놀림을 받아야 했다.
 
이런 놀림만은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나이 40되서 ‘박운희’에서 ‘박선영’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쳇말로 집 안방에서 남편과 배 깔고 엎드려서 탄생한 이름이 ‘박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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