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터지는 대우건설-롯데건설, 내려놓은 삼성물산-현대건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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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터지는 대우건설-롯데건설, 내려놓은 삼성물산-현대건설…왜?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11.03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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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올해 하반기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던 서울 한남2구역 재개발사업과 울산 B04구역 재개발사업의 현장 분위기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남2구역에선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반면, 울산 B04구역에선 업계 1·2위간 용호상박을 예고했던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입찰을 고사했다.

관련 업계에선 부동산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등에 따른 업황 악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상대적으로 흥행 가능성이 높은 서울·수도권 지역 정비사업인 한남2구역은 시공권을 두고 박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최근 악성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지방 지역 정비사업인 울산 B04구역에선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각 업체들만의 사정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3일 롯데건설은 보도자료를 내고 대우건설 직원들을 건설산업기본법, 입찰방해죄, 업무방해죄로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전날 이뤄진 한남2구역 조합원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대우건설 직원이 투표 현장에 불법 잠입해 투표 용지에 접근하고, 조합 컴퓨터로 전산 작업을 진행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은 해당 인물은 직원이 아닌 주차 안내·어르신 부축 등을 위해 고용한 1일 아르바이트 직원이며, 주변 정리와 단순 업무를 수행했을 뿐 잠입 등 불법 행위는 없었다고 즉각 해명했다. 그러면서 롯데건설이 단순 해프닝을 부풀려 흑색선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맞섰다. 사실관계를 떠나서 양사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이처럼 두 업체가 기업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키면서까지 출혈경쟁을 벌이는 건 한남2구역이 1조 원짜리 대형 사업장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롯데건설에게 한남2구역은 이미 너무 많은 판돈을 깔아놓은 현장이다. 일찌감치 상당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 사업 수주에 공을 들였다. 본격 수주전에 들어가기 앞서부터 100여 명 규모 홍보용역 OS요원(OS요원을 사용하는 게 곧 불법홍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을 풀었고, 입찰 마감일이 다가오기 한참 전 보증금을 완납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찜을 해놓은' 사업장이다.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잃을 게 다른 현장에 비해 많다는 의미다. 또한 롯데건설은 최근 '건설사 부도설 지라시'에 오르내린 데다, 유상증자 등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은 상황이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라도 한남2구역을 거머쥘 필요가 있다.

대우건설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얼마 전 흑석2구역을 놓친 실정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이어 롯데건설에까지 밀리면 현장의 사기가 크게 저하될 여지가 있다. 지난가을께 대주주인 정창선 중흥건설그룹 회장이 책임임원들과의 광주 회의 자리에서 '영업이익 1조 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점도 대우건설의 수주활동에 영향을 일부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인 가운데 이 같은 실적 목표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선 일감을 다량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우건설이 대관팀을 재구축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건설 공룡들의 뜨거운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됐던 울산 B04구역에선 판 자체가 깔리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해당 사업장 2차 입찰 보증금 납부 마감일인 지난 1일까지 조합에 보증금을 미납한 것이다. 당초 울산 B04구역은 사업비만 약 2조 원으로 평가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인 데다, 시공능력평가 1, 2위간 경쟁구도까지 형성돼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 됐다(관련 기사: 울산에서 펼쳐지는 ‘왕좌의 게임’ [시사텔링],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036).

양사가 수주전에서 일단 물러난 주된 이유는 시장 환경 악화로 풀이된다. 삼성물산 측은 지난 2일 울산 B04구역 조합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주택시황이 급속히 악화된 현 시점에서 제반 리스크 재점검 후 입찰에 참여하는 게 빠르고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옳다고 판단했다. 빠른 시일 내 사업 제안을 다시 준비해 찾겠다"고 했다. 현대건설 측도 복수의 언론을 통해 "워낙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추후 조합의 일정과 조건, 시장 상황 등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미분양주택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울산 지역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 9월 기준 1426가구 직전월 대비 84.0%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증감률(+27.1%), 지방 평균 증감률(+21.9%)을 훌쩍 넘긴 수준이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논란, 고금리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부분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또 다른 사정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두 업체가 일종의 '조합 길들이기'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 B04 조합은 두 업체에 향후 공사비를 공정률에 따라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통상적으로 건설사들이 선호하는 방식(일반분양 후 계약금·중도금으로 공사비 지급)과 거리가 멀다. 한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삼성, 현대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며 "지역 부동산 경기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양사의 불참은 다소 아쉬운 결과"라고 토로했다. 현재 울산 B04 조합은 사업 지연을 우려해 양사에 컨소시엄 방식의 수의계약을 제안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외적 리스크로 입찰에 불참한 것이라면 리스크를 분산할 테니 사업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컨소시엄 수주는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워 일반적으로 조합원들이 불호하는 편이다. 조합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에 살짝 고개를 숙인 셈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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