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경주 불국사 [일상스케치(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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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경주 불국사 [일상스케치(59)]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11.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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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기에 떠난 졸업 기념 여행
울긋불긋 단풍 물든 천년 사찰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 보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교 시절과의 만남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공부? 친구? 그 시절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수학여행이지 싶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학업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과의 짧고도 긴 여행을 통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우정을 쌓고, 잊지 못할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한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늦가을,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추억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천년고찰 경주 불국사. 이 얼마 만인지…. 고 2 때 수학여행 온 이후 처음이다. 필자로선 그만큼 적조했던 나들이다.

여고시절엔 출발 전 자유 시간에만 허용됐던 나름대로 멋을 낸 사복 준비와 오락시간에 동참할 서투른 춤 배우느라 기대 반 설렘 반 밤잠을 설쳤었는데….

이제 그저 환절기에 감기 걸릴 세라 체온을 유지해 줄 따뜻한 의복과 이것저것 약 뭉치 한가득이 배낭을 가득 채웠다.

통일 신라 대표 사찰

불국사 입구 일주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국사 입구 일주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국사는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 연간을 기원으로 하는 사찰이다. 그 이름은 '부처의 나라'라는 뜻이며, 불국정토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통일신라의 꿈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경내 여러 불상과 불당, 탑 등은 최고의 기술과 웅장함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보물이 되었다. 이에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천왕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천왕문. ⓒ정명화 자유기고가

대사찰에서 오늘날 규모로 축소

불국사 고금창기의 기록에 따르면, 전성기인 신라~고려 시대에는 건물만 80종·2000여 칸으로, 오늘날 불국사 8배 규모의 대사찰이었다.  세월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이후 임진왜란 직전인 16세기 말 기록인 동경유록, 간재집에 의하면 여전히 신라 때의 석탑, 불상, 그림들이 남아 있었고 천 칸의 큰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방화로 한 번 크게 불타 많은 것이 사라졌다. 지금도 대웅전의 장대석 등을 살펴보면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국사 건축 연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영제부인)가 새 사찰 짓기를 소원하여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이후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크게 개창했고, 아미타여래상과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봉안했다.

그 다음 김대성이 본격적으로 중수하였는데 751년에서 765년 사이로 추정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로 여러 부분에서 통일신라의 정형화된 양식이 보이기 때문에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는다. 이때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등이 세워졌으며 2탑 1금당의 가람(절의 배치된 모양) 형식이 완성되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청운교와 백운교.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3호 지정. ⓒ정명화 자유기고가
청운교와 백운교.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3호 지정. ⓒ정명화 자유기고가

한편,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정문인 자하문과 연결된 청운교와 백운교는 인간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다.

흔히 청운교, 백운교를 좌우로 나눠 생각하기 쉽지만 계단의 윗부분이 청운교, 아랫부분이 백운교인 것이다. 두 다리를 거쳐 자하문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석가탑, 다보탑이 나오며 이는 상징적으로 불국정토에 들어섬을 의미한다.

백운교는 18단이고 청운교는 16단으로 모두 34단이며, 계단 끝에는 돌기둥과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청운교와 백운교 바로 밑 아치형의 무지개다리 밑에는 구품 연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연화 칠보교에 비해 규모는 크지만 장식은 간소화된 편이다.

연화교와 칠보교

연화교와 칠보교. ⓒ정명화 자유기고가
연화교와 칠보교.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교 경전에서는 아미타불과 보살들은 연화와 칠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관문인 안양문을 거쳐 극락세계를 오간다고 한다.

연화교는 10단 칠보교는 8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화교는 돌 끝이 각져 있으며 연꽃이 새겨져 있고, 칠보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두 다리 밑으로 아치형의 무지개다리가 있으며 밑으로는 물이 흘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두 다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유사한 구조로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다른 면이 많이 보이며 두 다리 밑으로 통하는 무지개다리도 그 구성을 달리하고 있다.

경덕왕 10년(751)부터 혜공왕 10년(774)까지 불국사가 중창될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개보수되었으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2호로 등록되었고, 1973년 대대적인 복구공사를 거치면서 난간을 복원했다.

불국사의 흥망사

대웅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대웅전. ⓒ정명화 자유기고가

백운교 청운교를 지나 자하문을 통과하면 대웅전과 만난다.

한때 현재의 8배에 달했던 불국사는 조선 영조 41년(1765)에  대웅전이 다시 세워지고, 1779년 경주 지방 유림이 지원하여 중창하는 등 재건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조선 말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폐허가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1918년부터 1925년까지 대웅전과 다보탑을 보수하였다. 그러나 다보탑의 석물과 사리함 등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그동안에도 여러 건물이 소실되었다.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舍利塔: 보물 61호)은 한때 일본인이 빼돌렸으나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가 임시로 복원한 상태로 있다가 결국 광복 후 1970년대에 와서야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석축과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이나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물이다. 복원된 목조 건물도 고려 중기에서 조선시대의 양식을 뒤섞어서 재현한 것이기에 창건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3층 석탑 석가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3층 석탑 석가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다보탑과 석가탑

불국사의 대웅전 앞 동쪽과 서쪽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가장 유명한 석탑이다. 석가탑은 구조적으로 완벽한 비례와 기하학적인 직선미를 선보인다.

1966년 석가탑에서는 도굴범이 훼손한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最初)의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 정광 대 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도굴범들은 석가탑의 사리고를 도굴하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고, 이를 수리하다가 다른 층에서 발견되었다.

다보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다보탑. ⓒ정명화 자유기고가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한 다보탑은 층 구조를 버린 자유롭고도 독특한 형식이다. 그래서 석가탑과 짝을 지으면 대칭되면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가을 경관이 빼어난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앞 수려한 소나무와 단풍든 정경. ⓒ정명화 자유기고가
청운교 백운교앞 수려한 소나무와 단풍든 정경. ⓒ정명화 자유기고가

오랜만에 불국사를 돌아보니 그 명성에 비해 다소 소박한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주변 경관 등 가을 단풍이 멋진 사찰로 느껴졌다.

불국사 만추의 정취를 즐기는 수많은 나들이객들.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국사 만추의 정취를 즐기는 수많은 나들이객들.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국사는 처음 생긴 이후로 통일신라의 흥망성쇠와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에 의해 파란의 역사를 거쳤다.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고 석조물은 파괴되고 유실되고…. 이에 반해 초목은 사계절 잎이 피었다 졌다, 시대의 역풍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 왔다.

불국사의 쇠퇴한 역사를 알고 보면 토함산 자락과 어우러진 자연에 더욱 애잔한 마음이 든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킨 채 빛을 발하니 자연은 정령 위대하지 않은가.

반야교 아래 연못의 화려한 향연. ⓒ정명화 자유기고가
반야교 아래 연못의 화려한 향연. ⓒ정명화 자유기고가

불국사를 한 바퀴 돌며 갖가지 상념과 동행하다, 스쳐 지나가기 십상인 반야교 아래 연못에 시선이 머물렀다. 연못에 드리운 황홀함 그 자체의 단풍진 수목의 그림자는 불국사 가을의 진수를 나타낸다. 짙은 코발트 빛 하늘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멋들어진 수채화 같은, 환상적 작품이다.

맺으며…

이제 곧 겨울로 드는 시기, 동면을 앞두고 잎새들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화려한 단풍으로 발현한다. 이처럼 자연은 가을 여행자들에게 헌신을 통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추의 단풍이 준 기쁨에 비해 나의 인생은 무엇을 남겼을까.

이렇게 40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양갈래 머리 땋았던 소녀는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얼굴엔 주름 가득,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황혼기 인생이 되어 졸업 기념행사차 불국사와 재상봉했다.

컨디션 난조와 여타 사정으로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만난 어색함과 낯설음은 이내 벽은 허물어지고 편안해졌다.

불국사의 깊은 가을은 곧 저물어 갈 것이고 인생도 언젠가는 저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정을 통해 받은 깊은 감동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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