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체제, 김영삼 없이 가능했을까? [YS서거 7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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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 김영삼 없이 가능했을까? [YS서거 7주기]
  • 정세운 기자,윤진석 기자,정진호 기자,김자영 기자
  • 승인 2022.11.12 21:4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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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서거 7주기 특집 87체제-YS 조명…민주화 물결 동참한 나라들 경제성장
정치-경제-문화적 선진화 통해 선진국…민주주의 정착의 획기적 계기는 ‘87’
YS 필두 제도권 개혁 87체제 열어…장기독재 집권 지속 시 최빈국으로 전락
체제 따라 南北 상황 달라져… ​​​87체제, 양적질적 성장 가져왔지만 한계 직면
승자독식-올오어낫싱 힘의 논리 좌지우지…다원성 반영 권력구조 개편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윤진석·정진호·김자영 기자)

30여 년을 지나오면서 87년 체제의 한계는 적잖게 얘기돼오고 있다. 세계 질서의 흐름 속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등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작 그 체제의 위대함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느낌이다.

<시사오늘>은 YS(김영삼) 서거 7주기 특집 ‘87체제와 YS’를 준비하면서 이 문제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 본문에 나온 관계자 발언은 본지 인터뷰 등을 통해 이뤄졌음을 밝힌다. <편집자 주>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연합뉴스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연합뉴스

 

1. 왜 87체제인가?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신생국가 중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화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고 평가 되고 있다.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신지호 전 국회의원 : “140~150개 신생 독립 국가의 공통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이 둘을 성취한 나라는 대한민국 정도라 해도 무방하다. 짧은 기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선진화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됐다.”

동력은 무엇인가? 단연 국민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시스템을 기준으로 보면 1987년 직선제 쟁취 후 확립된 자유민주주의, 즉 ‘87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2. 경제성과 지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구체제(앙시엥레짐)를 깨고 87체제가 출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우선 경제 중심의 양적 팽창이 전개돼왔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 경제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분석한 <한국 경제 20년의 재조명>을 비롯해 여타의 자료에 따르면 ‘87체제’ 출범 이후 30년간 한국 경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빗대어지고 있다. ‘고속성장의 전략적 성공’으로 기록돼 있다.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도 있었지만, 단기간 내 유동성을 확보하고 수입자유화 등 경제개방을 추진하며 외형을 10배 넘게 키웠다는 진단이다. 

IT·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업종 등 5대 주력산업을 성공의 밑천으로 글로벌 기업을 추격해나갔다. GDP(국내총생산)는 87년 120조 원에서 2022년 기준 2491조 4393억 원으로 세계 10위 규모로 확대됐다. 1인당 GNI(국민총소득) 역시 87년 285만 원에서 2022년 기준 4048만 원을 넘어섰다. 
 

87체제 이후 정부별 1인당 GNIⓒ시사오늘(그래픽 : 박지연 기자)
87체제 이후 정부별 1인당 GNIⓒ시사오늘(그래픽=박지연 기자)

87 後 성장↑

역대 정부 별로 살펴보면 노태우 정부 시절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4000불로 시작해 6000달러를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1000억 불 넘는 세계 10대 무역국가, 신흥산업국으로서 3년째 12% 이상 고도성장을 달렸다.

세계화의 원년화를 선언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다다랐으며, 세계 10위 국력을 자랑했다. OECD에 가입하고, 광케이블을 깔았다. 반도체와 1인 1PC 도입, IT-휴대폰-디지털 강국으로의 길을 열었다. CJ그룹 E&M 등 음악-게임 같은 문화 산업을 키워 오늘날 세계 속 한류 열풍의 시작을 알렸다. 

김대중 국민의정부에서는 세계 최초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했으며 IT산업 부문이 GDP의 12.9%, 전체 수출의 30% 실적을 차지했디. 무역수지 950억 달러 흑자 달성, 외국인투자 600억 달러 유치에 성공했다.

노무현 정부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뒀고, 이명박 정부는 무역규모 2조 달러 시대를 내다봤다. 세계 6위 수출국 시대로 올라선 박근혜 정부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임기 첫해인 2017년 대한민국은 마침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3. 자유와 번영의 나라 


정부마다 명암이 있겠지만 대한민국 경제성과는 87체제에 힘입어 세계 발전사에서도 유례없는 성과를 이룩했다. 87 시스템 함의인 자유화와 개방화, 다양성과 창의성, 자율성과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막이 올랐다. 경제의 교역 규모 등 양적인 성장을 비롯해 근본적으로 운용의 틀을 바꿔버린 역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셈이었다. 

물론 민주주의 동반자인 시장경제체제가 수반됐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소련 등 사회주의 몰락 후 인민민주주의 체제인 중국이나 북한을 제외하면 전 세계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만큼 민주주의+시장경제 효과의 막강함을 피력했다.

혹자는 한국 경제성장의 배경을 놓고 ‘한미동맹’을 추가하기도 한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은 자신이 정립한 이론서를 통해 한미동맹이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축이라고 예찬한 바 있다. 5000년 역사상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크고 작은 잦은 외침을 받아 왔던 나라에서 70년간 전쟁 한번 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결국, 어떤 체제냐에 따라 국가의 성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 된다. 같은 민족이라도 체제가 다르면 천차만별이다. 87체제를 이룩한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으로, 3대 세습의 북한은 300만 명의 아사자를 낳았다.

 

4. 경제성장의 촉진제?


대한민국뿐 아니라 민주화 물결에 동참한 나라들은 가파른 경제성장을 보여 온 점 역시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75개 국가 데이터를 분석한, 온라인 포털에 소개된 한 논문에 따르면 비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했을 경우 30년 동안 인구 1인당 GDP 성장률이 20%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데에는 민주화에 따른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역시 하나의 요인으로 지목됐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분류됐다. 

반론도 존재한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조슈아 컬랜칙은 저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통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전환한 나라들을 분석한 결과 독재 국가들의 한 해 평균 경제성장률은 4.37%인데 반해 민주주의 국가들은 4.49%로,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들을 대상으로 했는지, 그리고 경제성장률에 대한 비교 데이터가 나와 있지 않아 모호한 측면이 있다. 암튼,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소득이 높다’는 데이터만 제시해도 앞선 논리를 반박하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민주주의 TOP10 국가 1인당 GNIⓒ시사오늘(그래픽 : 박지연 기자)
민주주의 TOP10 국가 1인당 GNIⓒ시사오늘(그래픽=박지연 기자)

민주 지수 높은 나라들 GNI ↑

선거 절차와 다원주의, 정부 기능, 정치 참여도, 정치문화 등을 근거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이 발표한 ‘2020년 완전한 민주주의 순위’에 의하면 노르웨이(9.81점), 아이슬란드(9.37점), 스웨덴(9.26점), 뉴질랜드(9.25점), 캐나다(9.24점), 핀란드(9.20점), 덴마크(9.15점), 아일랜드(9.05점), 오스트레일리아(8.96점), 네덜란드(8.96점) 등 탑텐 국가들은 모두 1인당 GNI가 적게는 4만여 달러에서 많게는 8만 달러로 집계됐다.

역으로 1인당 GNI 순위가 높은 나라들 역시 민주주의 지수가 상위권이라는 게 확인됐다. 올해 GNI 기준 10위 안에 드는 스위스(9만 360달러), 노르웨이(8만 4090달러), 아일랜드(7만 4520달러), 미국(7만 430달러), 덴마크(6만 8110달러), 아이슬란드(6만 4410달러), 싱가포르(6만 4010달러), 스웨덴(5만 8890달러), 오스트레일리아(5만 6760달러), 네덜란드(5만 6370달러)를 보면, 일부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미국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나머지 탑텐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민주주의 지수를 뽐내는 국가들이다. 

 

5. 장기독재집권의 폐해


다만, 책(<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은 이런 반박도 내놓고 있다. 미국 기업연구소의 케빈 하셋의 연구를 인용해 ‘독재가 단기적으로 우위를 보여 준다’고 진단했다. ‘단기적 우위’라는 조건을 전재해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만 하더라도 경제개발 5개년 같은 국가주도형의 박정희식 개발독재 체제 아래 급진전을 이뤘고 산업화로 대표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자본주의가 결합 된 수정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의 경우도 일당독재 아래, 저비용 노동력을 무기로 단기간 국내총생산을 미국 다음인 2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장기독재정권이 지속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면 결과는 달라진다. 봉건 왕조 국가형태의 북한은 물론 쿠바,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모잠비크, 캄보디아,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튀니지 등 장기 독재한 나라는 하나같이 최빈국으로 전락해왔다.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시사오늘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사진=김영삼민주센터/ 그래픽=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장기집권은 부패 독재 불러, 한 사람이 오래 하면 반드시 부패가 따르며 또 오래 하면 부패하니까 독재가 따른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 김영삼 회고록 中 -


당장 시진핑 정부만 하더라도 집권 3기를 맞아 집단 지도체제가 아닌 1인 장기집권으로 접어들면서 중국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성장 둔화와 부채 문제, 미국 간의 갈등 등 내외적 난제와 맞물리면서 앞날이 어둡다는 시각이다.

제아무리 G2 강국이라 해도 인권과 민주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세계적 롤모델이 되지 못할뿐더러 선진국 전환 또한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6. 리더의 역할론


독재식 장기집권이 경제성장을 이룬 경우도 있다. 부패 지수가 낮은 경우로,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의원내각제를 통해 30년 넘게 집권한 리콴유 총리는 독재자로 불릴 만큼 국가주의 통제시스템을 통해 국민을 억압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에겐 부패 방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만큼 엄격했다. 부정부패 척결에 성공하며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리콴유 등의 통치 방식을 들어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한 아시아식 민주주의에 빗대기도 했지만, 싱가포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리더의 역할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을 건국한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후 새로 시작한 나라의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스스로 세습의 고리를 끊고 선출직 대통령 시대를 개막했다. 또 장기집권 대신 임기를 마친 뒤 물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 통용되는 민주공화국 체제를 전파했다. 

한 나라 국민이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에 개개인의 운명마저 달라진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전역으로 여성 참정권이 늘어나는 등 민주주의가 정착 단계로 접어든 바 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발발된 파시즘 현상에 퇴각해 정치적 후퇴기를 맞기도 했다. 

그 시기 전후 학살을 일으킨 독재자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비롯해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히틀러, 이외에도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캄보디아의 폴포트, 일본의 도조 히데키 등 대량학살자들이 생겨나면서 세계사적 인명 피해는 그 수를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2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 역시 북한의 독재자가 주도한 것이었다. 

 

7. 주역, YS


리더는 곧 국민이 갈망하는 시대정신의 거울이라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국전쟁 후 1960년대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산업화를 겪으며 ‘밥’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국민 저변으로 넓혀진 바 있다.

박정희식 리더가 산업화를 대표한다면 김영삼-김대중 양김은 민주화를 상징하는 지도자로 볼 수 있다. DJ(김대중)가 1970년대부터 독재체제로부터 탄압받아 민주화를 타오르게 한 불씨로써 역할을 했다면 YS는 대놓고 반독재에 저항하고 새길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앞당긴 개척자 유형이었다. 

87체제가 오기까지의 민주화 여정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이런 의문들을 던져 볼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이 없었다면 87년 민주체제가 올 수 있었을까. 범국민적 결사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통해 산발적으로 분산돼 있던 재야, 학생, 종교계를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라는 하나의 그릇 안에 담아내지 못했다면 6월 항쟁의 화염이 치솟을 수 있었을까. 

통일민주당에서 “내 손으로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뽑자”는 대중적 구호로 천만인 개헌 서명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직선제 쟁취가 가능했을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동아일보 해직 기자 이부영의 전갈을 민추협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폭로하지 않았다면 이에 울분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었을까.

1985년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이 승리해 제1야당이 되지 못했다면 제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 모든 범대중적 운동이 조직화 될 수 있었을까. YS가 5·18의 진상규명을 알리고자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불사하지 않았다면 현대사 이래 가장 큰 정치결사체인 민추협이 태동할 수 있었을까. 또 민추협의 산실인 민주산악회가 그 엄혹한 시절 감히 결성될 수 있었을까. 
 

사진 위 왼쪽부터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신지호 전 국회의원, 김도현 민추협 민주통신 주간, 이성헌 국본 간사,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김덕룡 민추협 공동이사장, 김무성 전 민추협 공동회장, 정병국 전 의원, 김형준 명지대 교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조동근 명지대 교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박재호 의원, 이각범 카이스트 명예교수,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
사진 위 왼쪽부터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신지호 전 국회의원, 김도현 민추협 민주통신 주간, 이성헌 국본 간사,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김덕룡 민추협 공동이사장, 김무성 전 민추협 공동회장, 정병국 전 의원, 김형준 명지대 교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조동근 명지대 교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박재호 의원, 이각범 카이스트 명예교수,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김석우·조동근·이각범|연합뉴스 外 시사오늘 DB·권희정 사진기자

김도현 <민주통신> 주간 : “12대 총선은 선거를 통한 5공체제 변혁 요구의 투표결과였다.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혁명이 아닌 선거와 민주제도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역사에 증명했다.”
 

“YS의 신민당 총선 주도부터 전국적으로 전개해 나간 천만인 직선제 개헌운동이 실질적 6월 항쟁을 성공시키고 87체제의 동력이 됐다.”
- 이성헌 국본 간사, 2021년 4월 본지 인터뷰 중-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다지만 시대사를 되짚어 가늠해 볼 수 있듯 그 중심엔 87체제 성공의 결정타인 민추협과 신민당 승리, 개헌을 실질적으로 이끈 YS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신군부의 공포 정치 앞에서 여타의 야당 지도자들이 무기력함에 놓여 침묵하고 DJ마저 망명을 떠났던 서슬 퍼렇던 그 시절 리더로서 앞장서 범민주세력을 규합해 나간 것부터가 87체제의 여명을 여는 대장정의 첫걸음이었다는 평가다. 
 

“YS가 만든 민추협의 산실 민주산악회는 민주화의 원동력이었으며 제도화를 이룬 밑거름이었어요. 군정종식과 민주주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분입니다.”
- 2013년 6월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본지 인터뷰 중-

“민추협부터 신민당 창당까지 50대 50원칙을 지켰어요. 민주화를 위해 기득권을 버리면서까지 통합을 위해 앞장선 분이 YS지요.”
-2022년 4월 김덕룡 민추협 공동이사장 본지 인터뷰 중-

“정의와 불의의 싸움에서 YS는 항상 앞장섰어요. 굴하지 않고 목숨 걸고 투쟁한 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였지요.”
- 2020년 4월 김무성 전 민추협 공동회장 본지 인터뷰 중-

““신군부에서 다 외국으로 나가라 했는데 DJ는 그걸 받아들여 미국으로 갔고, YS는 죽으면 죽었지 난 안 간다며 단식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2022년 11월 정병국 전 의원 본지 인터뷰 중-

 

8. 체제 전환의 의미 


무엇보다 YS가 앞당긴 체제 전환의 정치적 의미는 크다. 서두에 87체제가 가져온 경제적 번영에 초점을 뒀다면 후반부는 정치적 체제의 변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사에서 자유를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데, 87체제가 있고부터 비로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민주공화국 본령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15일부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했지만, 장기독재로 치달으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심지어 유신헌법과, 5공화국조차 헌법 제1호 1항에 민주공화국을 명시해 놨지만 지켜진 적은 없었다. 형식적 민주주의 법문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국민주권을 빼앗고 권력을 독점하는데 이용될 뿐이었다. 

87체제가 이를 대체하면서부터 1인 1표 국민주권 행사인 대통령제가 현실화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의 인권지수는 눈에 띄게 향상됐다. 미국의 비영리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조사한 바로, 군사독재 시절 우리나라의 정치적 자유와 시민권리 수준은 5~6등급에 그쳤다. 87년 이후가 돼서야 1등급으로 올라갔다. 

인간 존엄의 기본권이 존중되고 표현의 권리가 높아졌다. 가치와 내용 면에서 민주주의 의제를 다룰 만한 여유가 생겨났다. 민주화의 완성이라 일컫는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바로 이점이 87로 대표되는 정치적 체제의 성과였다. 

 

9. 체제 가속성의 힘


YS 단식을 계기로 민추협이 만들어지고 그 원동력으로 신민당이 창당돼 12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목숨 건 단식투쟁하는 YSⓒ연합뉴스
YS 단식을 계기로 민추협이 만들어지고 그 원동력으로 신민당이 창당돼 12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목숨 건 단식투쟁하는 YSⓒ연합뉴스

체제 관련해 우리는 다른 두 가지 관점을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체제 전환의 가속성이다. 근본 틀을 바꾸는 것은, 다시 말해 한 국가의 체제를 바꾸는 것은 엄청난 파고를 겪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미국 독립전쟁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한 세기를 거친 저항과 희생 끝에 성취될 수 있었다. 

한번 체제를 바꾼다 해도 순식간에 앙시앵레짐이 부활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영국만 해도 지금의 입헌정치 체제로 자리 잡기까지 1688년 명예혁명부터 거슬러 왕정과 의회 간 싸움이 엎치락뒤치락 된 뒤에야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조선왕조나 사회주의 공산권 국가가 침략을 당하거나 붕괴하지 않는 이상 좀처럼 체제가 바뀌지 못하는 예도 적잖았다. 북한처럼 70년 동안 변하지 않는 폐쇄성을 보이는 예도 있다. 

때문에, 87체제의 위대성은 더 값지다. YS를 필두로 제도권이 중심을 잡아 짧은 기간 내 5공화국 독재를 갈아치운 데다 3당 합당을 통해 군정을 종식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확실히 지켜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 “YS의 3당 합당 없이는 군정종식이 안됐다고 본다. 다시는 군인들이 정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또 그랬기에 몇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다는 호평도 들려온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 “87체제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아주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화에는 여러 다른 요소가 있지만,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 포스트 87체제 


한편으로는 체제를 바꾼 지 30년 넘으면서 이제는 87체제 이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게 중론이다. 대한민국이 풍요로운 국가로 성장했지만, 복합적 위기에 직면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힘의 편향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올오어낫싱(All or Nothing) 게임의 승자독식 구조 속 극심한 내전 양상, 다수결 폐단과 여론 만능주의, 리더의 부재 등이 우려되고 있다. 경제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 부작용과 양극화 현상,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은 높은 국가라는 오명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 : “아직도 정치적 후진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국회 입법 발의 총량 수준은 형편없다. 문재인 정부 때는 심지어 반시장적 민중영합주의로 퇴보하기까지 했다.”

어느 면에서는 민주공화국이면서 정작 국민 주권이 소외되는 ‘민주주의 위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일갈이다. 

우리만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와 제롬 글렌 밀레니엄프로젝트 회장은 <세계 미래 보고서 2023>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편 가르기와 이념주의, 포퓰리즘 정권이 늘어나는 등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봤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의 확산도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민주주의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또 이에 대한 극복으로, 대중이 정치인에 의존하지 않고 디지털 거버넌스 공간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웹 3.0, 탈중앙화전문지식(DAO) 구축과 같은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 또한 이런 세계 흐름과 맞물려 전방위적인 87체제의 한계가 언급되면서 권력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승자독식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할 새판 짜기의 ‘7공화국’으로 가야 합니다. 여야가 합의하고 연합하는 다당제 협치를 제도화하는 제3의 길로….”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2020년 11월 본지 인터뷰 중-


정병국 전 의원, 박재호 의원 :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하에서는 0.73% 차로 이겨도 모든 것을 가져간다. 발목 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지 않기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와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용기와 결단의 지도자가 앞장서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장기적 관점의 개혁을 추진하는 일 앞에서는 타협하지 않고 관철해나갔던 YS처럼 말이다. 

이각범 카이스트 명예교수 : “87체제의 제일 큰 의미는 YS와 같은 개혁 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가 있었기에 금융실명제 등 국가경쟁력을 겨냥한 주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누가 그 길에 나설까. 87체제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일지 모르나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공부터 제대로 짚어내야 과도 보이고 합리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견해다. 그 점에서 87체제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전해진다. YS 차남의 얘기다.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 : “87체제의 탄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문민정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평가하는 데 일생을 바칠 작정이다.”

그 길 끝 포스트 87체제 궁금하다. YS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대안을 내놨을까. 답을 듣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쪽이든 국민주권의 존엄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만은 틀림없지 싶다. 상도동계 좌장 김덕룡 민주센터이사장이 보내온 글을 끝으로 7주기 특집을 마친다. 

“87체제가 민주화로 꽃피운 것은 YS정권 출범과 민주개혁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날이 눈에 선하다. 전두환·노태우 앞에서 YS는 30여년에 걸친 군사정치문화를 청산하고 이 땅에 문민민주정부를 세웠다고 7500만 국민 앞에 선포했다. YS 문민정부 하에서 지방자치제를 포함,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됐다.

민주화 대장정이 시작된 것은 문민정부로부터고 DJ·노무현 정부가 출현할 수 있던 것은 YS의 하나회 척결과 민주화의 완성으로부터 가능했다.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이 없게 하겠다.’ YS는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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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3 00:07:49
지들허네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할적에 대중이랑 같이 불도저 앞에 들누워서 반대한 새기가 영샘이 색이 아님, 대선때 저축은행서 이조 로비받아쳐먹어가지고 환율을 역으로 방어해주다 나라를 아엠에프에 통째로 갖다바친 색이 아님... 부산새기 대통령으로 뽑지마라 문재인이랑 저거랑은 아주 답없는 껄통이지

정치9단 2022-11-13 14:47:06
지금의 번영과 자유, 선진화는 김영삼 없이 불가능했다. 그가 없었다면 북한과 다를바없는 국가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