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에 씌워진 '철새정치인'…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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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에 씌워진 '철새정치인'…정당한가?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10.12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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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와 소신사이>기득권 버린 선택에도 불구 '철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2번의 기득권 버린 선택에도 불구 ‘철새’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를 생각할 때 곧잘 떠오르는 말이 ‘철새’란 용어다. 이는 이 대표의 ‘경선불복’에 따른 당적변경 때문이다.

이 대표의 가치나 정치철학을 얘기하면서 높은 점수를 주다가도, 그의 정치행보를 놓고는 가차 없이 ‘철새정치인’이란 꼬리표를 매단다.

솔직히 우리정치사에서 당적을 바꾸지 않은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의 당적변경을 놓고 ‘철새’나 ‘소신’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철새와 소신을 가르는 잣대는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은 아마도 ‘기득권’인 듯하다.

기득권을 좇아 당적을 옮기면 철새고, 이를 버리고 다른 당을 선택하면 소신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끊임없이 당적을 변경했지만, 높은 점수를 주는 까닭은 늘 기득권을 버린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인제 대표에게 ‘철새정치인’이란 타이틀은 당연한 걸까.

이인제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나섰다. 그는 2등으로 낙선했다. 솔직히 49세 정치인이었던 이인제에게는 값진 승리였다.

이인제는 차기대권은 물론이고 당권을 잡을 기회가 주어졌다. 이인제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그는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40%가 넘는 국민지지를 받았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혈혈단신 대선에 출마해 500만 표를 얻어 낙선했다.

그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경선불복’이란 비난이 이어졌지만, 한편에선 ‘차기대권’과 ‘당권’이라는 기득권을 내던진 소신 있는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생명을 건 도박…정당성 인정

이인제는 충청도 사람이다. 1997년 대선을 통해 인지도를 넓히며 충청도에서 지지기반을 쌓았다. 솔직히 한국정치는 지역주의다. 대선 이후 누가 봐도 이인제는 자민련행을 선택할 것으로 봤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차기 당권’과 ‘대권 후보’를 전제로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이인제는 지역주의 정치를 떨쳐버리기 위해 ‘호남당’이라 불리는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이인제 측근들은 “국민회의와 이인제와는 성향이 맞지 않다”며 극구 말렸다. 이인제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겠다. 그것을 통해 한국정치를 새롭게 바꾸겠다”며 측근들을 설득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사람들은 이인제가 탈당을 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경선불복’이란 꼬리표를 또 다시 달 경우 ‘정치생명’이 끝장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또다시 탈당했다. 가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정치생명’이란 기득권을 담보로 한 소신 있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무려 6선 의원이 됐다.
더 이상 이인제에게는 ‘철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제에게 씌워진 덫칠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패배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대선 본선과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모두 패배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정치적 레토릭’인 것이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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