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업무개시명령제, 왜 도입됐나 [옛날신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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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업무개시명령제, 왜 도입됐나 [옛날신문보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12.0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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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두 차례 걸친 화물연대 총파업이 발단…노무현 정부가 주도하고 여야가 합의해 도입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주도로 여야가 합의해 도입된 제도다. ⓒ시사오늘 김유종
윤석열 대통령이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주도로 여야가 합의해 도입된 제도다. ⓒ시사오늘 김유종

정부가 집단 운송 거부에 나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 시멘트 화물차 기사(차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화물연대 무기한 운송 거부에 맞서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했다.

이러자 더불어민주당은 “업무개시명령은 내용과 절차가 모호하고 위헌성이 높아 2004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며 “추상적인 개념들이 가득해 임의적 판단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또 “법적 처벌을 무기로 화물노동자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내용과 절차가 모호하고 위헌성이 높은’ 업무개시명령은 언제, 왜 탄생한 것일까. 발단은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2003년 5월 2일.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화물연대 포항지부와 경남지부는 운임인상과 노조탄압중단을 요구하면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 파업은 전국으로 확산, 15일 노정 협상 타결 전까지 60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남겼다.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국내 산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15일 산업자원부는 6000억 원 이상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지만 금전적 손실을 떠나 한국 경제·사회의 신뢰도와 안정성은 추락했다. 한국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물음표를 던지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냉동공조 사업부는 지난 12일 전세계 바이어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불운하게도, 화물노조 스트라이크로 납품하기로 했던 냉장고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이번 주 안에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우뿐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등 대기업에서부터 신발, 의류를 수출하는 부산·대구지역의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형식의 e메일을 보낸 업체는 적지 않다. (중략)
산자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33개 국가산업단지 중 창원, 구미, 녹산 3개단지 7개 업체에서 원자재 수입이 중단되고 선적이 늦어져 수출에 차질이 발생했다. 산업단지 내 있지 않은 다른 기업의 피해도 극심하다. 금호타이어는 제품을 수송하지 못해 광주와 곡성 야적장에 물건을 쌓아 두었고 한국타이어는 경찰 순찰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금산에서 부산까지 타이어를 공수했다. 삼성전자, LG전자는 PDP TV용 핵심부품을 일반트럭을 이용해 조달했다. LG전자는 부산항 선적이 막히면 바지선을 이용해 마산항으로 제품을 싣고 가서 수출을 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삼성종합화학은 3200t, LG화학은 4000t에 달하는 생산품을 제때 수송하지 못했다. 한국에 본사를 옮기면서까지 투자를 했던 볼보는 중국 상하이(上海) 공장으로 보낼 40피트 컨테이너 20대 분량의 기계부품을 싣지 못해 애를 먹었다. 두산중공업도 부산항에 도착했던 수입원자재 부품의 하역·수송 작업이 늦어져 앞으로 조업 일정이 빠듯하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번 사태가 끝이 아니고 앞으로 각계각층으로 집단적인 행동이 터져 나올 것”이라며 “국내업체도 해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어떤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2003년 5월 15일 <문화일보> 화물연대 운송거부…‘물류대란’ 직간접피해 兆단위

같은 해 8월에도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실시했다. 화물연대 중앙교섭단체는 과다한 지입료 현실화와 협상에 대한 이행책임 확인 등을, 컨테이너 노조는 화물연대활동 보장과 이행책임 보장, 운송료 장기어음지급 관행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8월 21일 오전 9시부터 재차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정부는 불법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강경 대응한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노정협상과 같은 정부의 개입도 절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화물차주에 대한 업무복귀명령제 도입도 언급했다. 두 차례에 걸친 파업이 국가 경제에 큰 타격으로 다가오자, 정부가 화물연대를 압박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업무복귀명령제, 즉 업무개시명령제 도입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이번 화물연대 파업 등과 같은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한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업무복귀명령제’ 및 ‘운전자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25일 오전 10시 국무총리 주재로 화물연대 파업사태와 관련한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업무복귀명령제 도입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24일 밝혔다.
업무복귀명령제는 작년 9월 미국 서부항만 노조 파업당시 미국 정부가 조업재개 강제명령을 발동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물류대란 등 기간산업에 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 또는 법원이 강제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는 제도다. (후략)

2003년 8월 24일 <연합뉴스> 정부, 업무복귀명령제-운전자격제 도입추진

화물연대는 9월 5일 “4일부터 이틀 동안 마라톤 회의 끝에 조직 상태와 물류 붕괴 등 심각한 경제적 여파를 고려해 일단 물류 정상화에 힘을 쏟고 정부, 업계, 관련단체와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며 운송거부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파업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화물연대 컨테이너 위·수탁지부 조합원들의 업무 복귀로 물류 수송은 정상을 되찾았지만 3개월 만의 재파업으로 인해 부산항의 국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중략)
화물연대 재파업이 남긴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국제적으로 ‘부산항은 불안한 항만’이란 인식이 확산됐다는 점이다.
3개월 만에 또 다시 운송거부 사태가 일어난 탓에 부산항 기항이 가능한지를 묻는 외국선사들의 확인 전화가 빗발쳤고 일부 화주들은 환적항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잇따른 파업으로 이미 중국 차이나시핑 등 외국선사들이 떠난 탓에 지난해까지 세계 3위의 컨테이너 처리량을 자랑했던 부산항은 이제 5위로 밀려났다.
부산 신선대 컨테이너터미널 최효민 실장은 “2차 파업 이후 중국 등지로 환적항이전을 검토하는 외국선사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국선사 관계자는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 중인 신항만도 환적화물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정부는 물류 차질이 더 이상 없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 9월 5일 <한국경제> 화물연대 파업 ‘후유증’ 크다…부산항 국제신뢰 추락

이에 노무현 정부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종료된 지 4일 뒤인 9월 9일, 업무복귀명령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 당시 물류 피해가 커지는 과정에서 대응 방안으로 검토됐던 업무복귀명령제가 현실화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화물운송 업무복귀 명령제가 도입돼 파업시 강제 복귀하도록 하는 강제적인 법조항이 마련된다.
건설교통부는 지난 두 차례에 걸친 화물연대 파업으로 확인된 화물운송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9일 입법예고한다고 8일 밝혔다.
건교부는 운수종사자 등의 집단적인 불법행동으로 인한 국가 경제에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화물운송 파업 시 업무에 강제로 복귀토록 하는 업무복귀명령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운수종사자의 화물운송 거부 또는 방해해 국가 경제에 위기상황이 일어날 경우 국무회의를 거쳐 복귀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업무복귀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처해지고, 사업자는 사업등록 취소 또는 정지, 운전자는 자격이 취소 또는 정지된다. (후략)

2003년 9월 8일 <머니투데이> 화물파업 강제복귀명령제 도입

노무현 정부의 업무복귀명령제도 도입 강행에, 화물연대는 크게 반발했다. 화물연대는 11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복귀명령제도가 포함된 정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50여 개 시민단체도 “노무현 대통령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전국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각각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철도공사법과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다음 달 연대해 집단행동을 벌이기로 했다.
철도노조와 화물연대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중략)
화물연대도 정부의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안에 업무개시명령제, 운전자 자격심사제 등 독소조항이 들어있다며 5, 8월에 이어 집단으로 운송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제란 집단행동을 벌이는 화물차 운전사에 대해 업무복귀를 명령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제도. (후략)

2003월 11월 24일 <동아일보> ‘쌍끌이 운송대란’ 오나…철도노조-화물연대 “악법 공동대응”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고, 국회도 정부의 의지에 화답했다. 12월 22일. 국회는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어 업무개시명령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재석 177인 중 찬성 167인, 반대 7인, 기권 3인으로 가결한다. 업무개시명령제도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주도하고, 여야가 이견 없이 합의해 도입한 법안인 셈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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