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달력 배포, ‘앱’으로 간 까닭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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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달력 배포, ‘앱’으로 간 까닭 [고수현의 금융속풀이]
  • 고수현 기자
  • 승인 2022.12.13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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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재고’ 경계하는 은행…일부 시중은행 달력은 ‘품귀’
중고거래 리셀러 타깃되기도…남아도 부족해도 골칫거리
은행 달력 물량은 감소 추세…선착순 배부 방식 등 변화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최근 은행달력 수요가 감소했지만, 우리금융그룹의 2023년도 탁상형 달력(이른바 아이유 달력)은 품귀 현상으로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타 시중은행 달력 대비 높은 거래가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제공 = 우리은행 

“은행 달력은 재물운을 불러온다”

출처도 불분명한 미신이지만, 은행 달력은 이 같은 긍정적 이미지 덕분에 과거에는 선물용으로도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은행 달력을 선물용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죠. 소위 ‘매니아’ 층에서 수집용 정도로 활용되면서 은행에서는 달력 생산량을 점차 줄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의 경우 2011년 달력 물량이 320만 부에 달했지만 올해 2023년도 달력 물량은 227만 부로, 무려 100만 부 가까이 줄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달력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수요 예측에 실패해 재고가 남을 경우 처리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죠. 특히 시중은행은 ESG경영 실천을 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처치곤란한 악성 재고가 쌓이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달력 재고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은행 입장에서 부담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최근 은행권의 스타마케팅과 맞물려 생산된 은행 달력이 품귀 현상을 빚는 이례적인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우리금융그룹의 메인 홍보모델인 아이유를 활용한 우리금융 달력이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금융의 선택은 현명했습니다. 특히 ESG경영 실천의 일환으로 이번에 제작한 달력은 소재부터 포장지까지 환경을 생각해 제작됐습니다. 의미도 좋고, ‘아이유 달력’이라는 별칭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실제로 기존 은행 달력이 매니아층의 수집 대상이었다면, 아이유 달력은 은행 달력 매니아층 외에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돼 ‘굿즈’(연예인 관련 상품)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문제는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졌다는 겁니다. 아이유 달력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중에 배포된 은행 달력 중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현재 아이유 달력은 8000~1만 원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일반 은행 달력이 3000~5000원 사이에 거래 가격대가 형성된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비싸죠.

은행 달력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 언뜻 은행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어보입니다. 홍보용으로 배부한 달력이 모두 소진됐으면, 마케팅이 잘 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사실 이 같은 품귀 현상을 은행에서 마냥 좋아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중고거래 시장에 풀린 아이유 달력을 판매하는 리셀러 1인 당 적게는 10여 부, 많게는 20~30여 부를 판매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우리은행은 고객사 배부 물량 외에는 영업점 방문 고객 등에게 아이유 달력을 배부하고 있습니다. 배부 기준은 명확하게 정해져있기보다는 각 영업점 재량에 맡기고 있는데, 재량이라지만 고객 1인당 1배부가 통상적입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냐면, 현재 중고거래시장에서 판매되는 물량 중 일부는 리셀러들이 발품을 팔아 확보한 달력이라는 말입니다. 즉, 리셀러 한 명 당 십여 곳의 영업점을 방문했다는 의미죠.

고객 입장에서는 공짜 달력이지만, 은행은 매년 홍보용 달력을 제공하기 위해 입찰 공고부터 업체심사, 계약, 배송까지 준비할 것고 많고 시간과 비용도 적잖이 들어갑니다. 은행이 애써 준비한 달력이 리셀러들의 배를 불리는 형국인 셈이죠.

일선 영업점에서도 고충이 있습니다. 금융상담 업무 외 달력 배부 업무까지 겹치면서 애로사항을 겪는 상황도 발생하죠. 특히 아이유 달력처럼 소위 ‘핫’한 은행 달력이 나와 인기를 끄는 경우 금융상담이나 금융거래가 목적이 아닌 달력 만을 받기 위한 고객 방문 증가나 달력을 더 달라고 하는 고객 응대 등 은행업무 외 부가적인 업무량 증가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남아도 문제, 부족해도 문제. 은행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은행 달력’이 골칫거리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은행이 매년 은행 달력을 고객들에게 배부하는 건 그동안 은행을 이용해준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죠. 다만,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에는 앞서 언급한 고충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은행 달력에도 앞으로 변화가 예상됩니다. 이미 일부 시중은행이 배부 방식에 변화를 주는 등 선제적으로 나섰습니다.

소위 한정 수량을 생산해 정말 필요한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달력 배부 마케팅이 등장한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한정판 캘린더를 ‘하나원큐’ 앱을 통해 고객들에게 배부하는 마케팅을 진행 중입니다. 기존 달력 배부가 오프라인 대면 채널인 영업점을 통해서 제공하는 방식이라면, 하나은행의 전략은 앱을 통해 중복 배정 등을 방지하고 필요한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죠. 앱 방문자 증가 효과도 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중은행 사이에서 수요와 공급 불균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마케팅에 이용하는 영리한 배부 방식이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고도 줄이고, 정말 필요한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고객 감사’라는 당초 취지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아직은 실험적 성격이 강하지만, 언젠가는 이 같은 비대면 채널을 통한 배부나 디지털 캘린더가 종이 형태의 은행 달력을 대체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금융속풀이는 금융 관련 이슈를 이야기 형태로 풀어 독자에게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은행·카드 담당)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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