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간절함’의 힘을 배우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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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간절함’의 힘을 배우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2.12.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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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결승, 아르헨티나 응원단 4만여 명…응원 열기 압도”
“개개인과 집단의 ‘간절함’이 합쳐져 곳곳에서 성과 이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지난 19일(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월드컵 우승이 확정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오벨리스크로 행진하면서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9일(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월드컵 우승이 확정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오벨리스크로 행진하면서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은 그 여운이 유난히 길다. 끝난지 일주일이 되도록 곳곳에서 월드컵 관련 소식들이 들려온다. 세계인들의 축제이긴 해도 이번엔 좀 이례적이다. 우승국 아르헨티나에서 거의 광란에 가까운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적처럼 일궈낸 16강 진입의 뒷얘기가 방송을 타고 이어지고 있다. 역대 대회와는 다른 차원의 감동을 안겨주는 이번 월드컵. 유별난 이유가 궁금하다.

아르헨티나는 전 국민이 챔피언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르헨티나는 치솟는 물가와 경기 침체로 인해 전체 인구의 43%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계속되고 정치권 부패 스캔들로 인해 사회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이런 나라에서 월드컵 응원단 4만여 명이 카타르로 갔다. 경제난이 심각한 나라에서 그 많은 인원이 항공권은 어떻게 구입했는지, 현지에서 숙식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할 정도다. 매 게임마다 선수들과 응원단이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서 프랑스 응원단은 1만여 명, 아르헨 응원단은 4만여 명으로 월드컵 관계자들은 추산했다. 숫자와 열기에서 아르헨의 응원단이 프랑스를 압도했다. 아르헨 국민들의 이런 열기와 염원 속에서 리오넬 메시는 더욱 화려하게 ‘라스트 댄스’를 출 수 있었다. 경제난 속 36년 만의 우승을 염원하는 아르헨과 연속 우승을 노리는 프랑스는 우승에 대한 간절함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세계 최고 선수라는 찬사를 들으면서도 월드컵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절박함까지 더해져 메시는 프랑스의 젊고 덩치 큰 선수들과의 거친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결사적으로 덤비는 아르헨 팀에 프랑스팀이 전반 내내 슛 한 번 제대로 날리지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승부차기까지 가서 졌다지만 이미 초장부터 기세에 눌렸다. 게다가 승부차기에선 아르헨 응원팀의 역할도 작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젊은 키커들의 실축이 상당부분 아르헨 응원단의 ‘방해’ 때문이었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아르헨 선수단이 입국하던 지난 20일, 무려 400만 명의 환영 인파가 전국의 거리를 메웠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주최 측이 100만 명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광화문, 법원 앞 시위대가 기껏해야 몇 십만 명에 불과했던 점을 돌이켜 볼 때 400만이라는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상자가 속출하고 리오넬 메시가 결국 헬기로 이동해야 했다니, 아르헨 국민들의 환희와 감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셈이다.

외신이 전해온 한 장의 사진. 침대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잡고 꿀잠에 든 메시의 모습은 ‘염원을 이룬 자’의 행복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기적 같았던 16강 진출

지난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이 기뻐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이 기뻐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한국민과 선수단의 간절한 염원이 불가능해 보이던 16강 진입을 이뤄냈다.

예선 마지막 상대는 우승후보로까지 꼽히던 포르투갈. 이기지 못하면 탈락이라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골을 넣어 2 대 1 승리를 이뤄냈다. 그러나 선수단 전원은 승리의 기쁨도 미뤄두고 경기장에 모여앉아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를 10분가량 핸드폰으로 시청해야 했다. 가나의 선전에 힘입어 12년 만에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한국 선수단과 한밤중 TV 앞에 모여있던 한국민들의 환호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외신은 한국선수단이 그라운드에서 핸드폰으로 시청하며 가나의 선전을 간구(懇求) 하던 모습을 이번 월드컵 10대 명장면의 하나로 꼽았다.

국내 편의점 등에서는 경기 당일이었던 3일 저녁 가나초콜릿 매출이 엄청 늘어났다고 한다. 거리 응원이 펼쳐졌던 광화문광장 인근 10여 개 편의점 중 가장 많이 오른 점포는 64.6%나 늘어났다. 16강 진출에 결정적 도움을 준 가나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젊은이들처럼 가나초콜릿을 사 먹어야겠다는 어른들의 ‘진담’이 잇따랐다. 마스크 투혼으로 이름을 떨친 손흥민 선수 못지않은 한국민들의 염원을 보여준 사례다.

그들의 간절함이 이뤄낸 성취

이번 대회에서 집념을 불태우며 탁월할 리더십을 발휘한 선수로는 아르헨의 메시와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가 꼽힌다.

37세의 크로아티아팀 주장 모드리치. 인구 400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에서  조그마한 체구의 노장이 지난 몇 년 동안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국을 축구 강국으로 이끌어올린 주역이라고 한다. 경기장에서 동료들을 이끌며 최선을 다하던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팬들은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작은 거인’ 메시와 모드리치. 그들은 탁월한 축구 기술과 함께 선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 집념을 불태우며 팀과 나라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당연하다.

반면 동료의 골을 자신의 골이라고 우기려 했던 노장 호날두는 그를 따르던 팬들에게까지도 씁쓸한 뒷맛을 안겨줬다. 진심이 결여된 축구 기술자 호날두의 퇴장은 쓸쓸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개인과 집단의 ‘간절함’이 합쳐져 곳곳에서 성과를 이뤄낸 이번 월드컵을 지켜보며 축구 팬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색다른 감동을 받는 모습이었다.

스포츠 기사로서는 유난스럽게 ‘간절함’ ‘집념’ 따위의 단어가 많이 동원됐다. 곳곳에서 자국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미신스러움까지 좇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들도 목격됐다.

이번 월드컵은 그런 저런 색다른 재미와 함께 간절함이 이뤄내는 대단한 성취들을 교훈으로 보여줬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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