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안전감시단’ 불법파견 멈춰야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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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안전감시단’ 불법파견 멈춰야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12.23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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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요건 등 법제화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기자님, ○○건설이 현장 안전감시단 업무를 위장도급 불법파견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 지역 아파트 현장에서 발각돼 관계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불법파견을 하다가 적발된 겁니다. 증거들이 수두룩합니다. ○○건설의 민낯을 파헤쳐 주길 바랍니다.'

얼마 전 본지가 받은 제보 메일 중 일부를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추가 취재에 들어갈지 여부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접었다. ○○건설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건설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만큼, 특정 사안을 파헤쳐 기사화하는 것보다는 기자수첩과 같은 코너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제언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건설현장 안전감시단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현장소장 등), 안전관리자 등이 수행하는 현장 안전관리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안전관리단, 안전보조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건설업계에 안전감시단이 본격 등장한 건 2000년대 초중반으로 평가된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었지만 경제 위기 속 비용 절감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현장 안전관리 조직을 슬림화했고, 대신 안전감시단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던 당시 정부 기조와도 궤를 같이 했다. 안전감시단의 주업무는 현장 노동자 건강검진 여부 파악, 노동자 보호구 착용 점검, 안전 시설물·장비 상태 점검, 소화기 유무 점검 등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후 한동안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안전감시단에 다시 관심이 쏠린 건 중대재해처벌법이 등장하면서다. 각 건설사들이 안전감시단 운영을 안전경영의 일환으로 적극 홍보한 것이다. '△△건설, 안전감시단 현장 상주로 안전관리 만전', '□□건설, 안전감시단 증원으로 안전문화 선도', '◎◎건설, 안전감시단 상시 투입·운영으로 안전 사각지대 막는다' 등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어르신들을 안전감시단으로 채용하는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들이 여럿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권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0년 동안 운영되고 있음에도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안전감시단이 현장 안전사고 예방·방지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안전감시단 소속 인원들이 안전관리 관련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하리라. 또한 채용 후 원청 또는 하청 등 전문업체 차원의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리라. 하지만 구인·구직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양한 안전감시단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학력 무관', '경력 무관' 등 온통 무관 일색이다. 단 한 가지 요구 사항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일을 할 때 공통적으로 필요한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뿐, 그마저도 요구하지 않는 업체들도 쉽게 눈에 띈다.

더욱이 원청·하청사가 직접 채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웃소싱 회사들이 안전감시단 채용 공고를 내 인력을 모아 각 현장에 파견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력사무소에서 이른바 '노가다' 알바를 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앞서 거론한 제보 사례와 같이 모두 불법이다. 현행 파견법에선 '건설공사현장에서 이뤄지는 업무'에 대한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전문성과 경험 유무를 막론하고 무차별 채용하고, 원청·하청업체의 교육 이수 없이 운영되는 안전감시단이 과연 얼마나 건설현장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런 인원들의 지적과 비판이 거친 현장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전감시단 소속 인원들이 현장에서 쓰레기나 줍고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매일 같이 건설현장이 돌아가는 건 아니니 건설사 입장에선 인건비를 아끼고자 파견직을 돌리는 게 당연한 판단일 거다. 노가다 알바가 관행적으로 허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각 업체들이 안전감시단만큼은 불법파견을 자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장 안전사고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100명이 아니라, 수많은 현장 경험과 안전 관련 전문성을 갖춘 제대로 된 1명이 있어야 막을 수 있다. 건설업체들이 확실한 경험과 경력을 갖춘 사람을 안전감시단으로 직고용해야 보다 많은 사고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행하지 않고 안전감시단을 안전경영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그야말로 양심불량이다. 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안전감시단 채용 관련 요건을 법령·행정규칙·조례 등으로 분명하게 명시해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불법행위를 사전 차단해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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