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사모펀드 분쟁…금융사는 왜 착오 취소를 꺼리나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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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사모펀드 분쟁…금융사는 왜 착오 취소를 꺼리나 [주간필담]
  • 고수현 기자
  • 승인 2023.01.07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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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 분조위 ‘착오취소’ 조정안 불수용
권고 성격이라지만…분쟁조정 무용론 나와
공대위 “향후 불수용 줄지어 나올 듯” 우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지난해 12월 18일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가 독일헤리티지펀드 분조위 조정안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 =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고객 신뢰 회복 차원에서 투자원금 100%를 돌려준다.”

“착오에 의한 취소를 인정, 투자원금 100%를 돌려준다.”

두 문장은 언뜻 같은 의미로 보이지만, 큰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과실을 인정하고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권고하는 금융당국의 조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수용 여부에 대한 금융사의 입장은 ‘불(不)수용’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물론, 불수용이지만 투자원금 100%를 돌려준다는 점에서 얼핏 보면 크게 차이가 없어보인다.

실제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투자원금 100% 보상이 이뤄졌거나 이뤄질 예정인 사례는 3건이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에서 ‘착오에 의한 취소(이하 착오 취소)’ 권고가 나온 건 총 2건이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10개 사모펀드와 관련해 투자원금 100% 보상을 결정했지만, 이는 분조위 결과가 나오기 전 이뤄진 것이라 상황이 다르다.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분조위 결과가 나온 뒤 모두 불수용을 결정했다. 다만, 이들 세개 증권사 모두 투자원금 100%를 개인투자자들에게 지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실 ‘착오 취소’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사모펀드 환매중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금융사의 숨은 속사정이 있다.

먼저, ‘착오 취소’는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착오’를 일으킬만한 중대한 사정이 인정돼 계약 취소, 즉 계약 성립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를 수용한다는 건 금융사가 자신들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투자원금 손실 가능성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거나,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라는 걸 감췄을 경우에 해당한다. 즉, 환매 중단에 따른 원금 손실 가능성을 투자자가 인지하지 못했거나 원금 보장이 될 것이라고 착오할 만한 상황이 인정된다는 말이다. 이 경우 그 모든 책임이 사모펀드 판매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착오 취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인 셈이다.

사적화해 방법으로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투자원금을 100% 돌려받게 됐지만, 불만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모펀드 피해자 모임인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금융사의 불수용 결정에 대해 ‘꼼수’라고 지적하며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오늘>이 공대위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에 앞서 분조위 결정을 불수용한 NH투자증권은 2021년 10월 배진교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을 통해 “분조위 조정안을 그대로 수용하면 이사들이 회사 및 주주들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될 우려가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답변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다수의 로펌을 통해 ‘당사가 일반부타자들에 대한 구제를 우선 진행하되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없는 방안’을 강구, ‘일반투자자에게 합의금을 우선 지급하고 향후 타 기관들에게 해당 금원을 구상하는 방안’이 가장 적절하다는 의견을 받아 진행했다고 설명한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복수 법무법인을 통한 다양한 법률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다각도로 논의한 끝에 ‘착오 취소’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NH투자증권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공대위 측의 판단이다.

아울러 책임 인정 여부와 별개로 잇따른 불수용 결정은 금융당국의 위신에도 흠이 생길 우려도 있다. 분조위 결정이 권고 성격이기는 하나 금융권을 관리·감독하는 당국의 결정이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다는 볼멘 소리가 피해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아직 분조위 결과가 나오지 않은 다른 사모펀드 사례에서 ‘착오 취소’ 결정이 나오더라도 금융사들의 ‘불수용’ 결정이 줄 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공대위 이의환 집행위원장은 “이제 분쟁조정은 금융사들마저 우습게 여길 정도로 위상이 추락한 것이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지난 수년 간 피해자들이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며 투자원금 보상을 외칠 때는 금융당국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던 금융사들이 정작 분조위 착오 취소는 인정하지 않고 시혜적 성격의 보상 운운 하는 건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일부 금융사들 역시 분조위에서 투자원금 일부 보상 결정이 나오면 이를 방패막이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금융사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는 건 아닌 지 되돌아 볼 때이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은행·카드 담당)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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