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는 어떻게 美 하원의원이 됐을까 [친절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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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는 어떻게 美 하원의원이 됐을까 [친절한 뉴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1.15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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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이력으로 당선된 조지 산토스 공화당 하원의원…공화당, 의석 지키려 제명에 소극적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거짓 이력으로 당선된 조지 산토스 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이 의회에 무혈입성했다. ⓒ연합뉴스
거짓 이력으로 당선된 조지 산토스 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이 의회에 무혈입성했다. ⓒ연합뉴스

미국 현지시각으로 1월 7일.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하원의원들의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이 취임식에는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는데요. 웬만해선 보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 두 가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취임이었습니다. 하원의장은 관례적으로 다수당에서 선출됩니다. 양당제인 미국에선 다수당이 과반을 차지하게 되므로, 하원의장 취임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수당인 공화당 내에서 ‘반란표’가 발생하는 이변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매카시는 나흘간 진행된 14차례 투표에서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5차 투표에 이르러서야 과반 의원의 호명을 획득했습니다. 1차 투표에서 하원의장이 선출되지 못한 게 정확히 100년 만의 일이라고 하니,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다른 하나는 조지 산토스 하원의원의 취임이었습니다. 산토스는 뉴욕 제3선거구에서 당선된 공화당 후보인데요. 알려진 대로, 뉴욕주는 민주당이 장악한 대표적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s)’로 꼽힙니다. 그러니까 산토스는 34세의 나이로 ‘험지(險地)’에서 생환한 신인 정치인인 겁니다.

산토스는 뉴욕 바루크대(Baruch College)를 졸업한 뒤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에서 근무한 재무전문가로,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조부모와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그 스스로가 성소수자인, ‘공화당스럽지 않은’ 후보였죠. 산토스가 뉴욕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이런 배경 덕이 컸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산토스의 이런 이력 대부분이 거짓이었던 겁니다. 그는 어떤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고,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에서 근무한 적도 없었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주장도 여성과 수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가 유대 혈통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심지어 브라질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까지 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산토스 역시 “저로 인해 상처받거나 배신감을 느낀 분들께 사과한다”며 자신의 이력에 거짓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산토스는 1월 7일 미국의 하원의원으로 취임합니다. 취임 전 이미 거짓말이 다 들통났음에도 산토스가 “앞으로 의정활동을 통해 유권자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신뢰를 되찾고자 한다”며 사퇴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전 세계의 시선이 미국 하원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200년 민주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어떻게 산토스 같은 인물이 하원의원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걸까요. 아무리 자료를 뒤져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미국 현지 정치 전문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수정헌법 그리고 정치논리.’

수정헌법 제1조는 종교·표현·출판·집회 등의 자유를 규정하는데요. 미국에서는 자신의 이력과 정책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유권자들에 대한 후보자의 거짓 진술은 선거 과정에서 걸러내야 할 문제지, 법적으로 처벌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법적 제재를 하기보다는 정확한 사실로 반박하면 해결될 일’이라는 게 연방대법원과 미국 법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하네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도덕적 책임조차 지지 않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여기서 정치논리가 등장합니다. 원칙적으론 하원 재적의원 3분의 2가 동의하면 산토스를 의원직에서 제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뉴욕은 ‘블루 스테이트’입니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구죠.

‘블루 스테이트’에서, 그것도 공화당 당선자의 거짓말로 인해 다시 선거가 치러진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이러다 보니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산토스의 퇴출에 소극적입니다. 재적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니, 공화당이 반대하면 제명은 불가능하고요. 학력, 경력, 심지어 핏줄까지 속인 산토스가 하원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과연 이 시트콤 같은 스토리는 어떨 결말을 맞게 될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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