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적극적 자구노력’은 어디에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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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적극적 자구노력’은 어디에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1.13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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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재건축사업조합의 7500억 원 규모 사업비 대출에 대한 보증을 선다. 이번 보증 대출에는 신한은행·KB국민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KB증권·우리자산신탁 등 7개 시중은행이 참여한다. 만기는 준공 기한인 오는 2025년 1월에 입주 기간인 3개월을 더한 2025년 4월로 설정됐다. 금리는 7%대 중반이 될 전망이다. 여론의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주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에 쓰여야 할 혈세가 민간 사업자들에게 돌아간 게 아니냐는, 결국 일종의 특혜로 해석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비판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로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생각이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고금리 현상,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리스크 우려 심화 등으로 모든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이 실패한다면 조합·시공사는 물론, 우리나라 건설업계와 금융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전반에 주는 충격도 클 거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상징성은 형언하기 어렵다.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갑질 의혹, 조합의 불법적 이권개입 의혹, 공사 전면 중단·유치권 행사, 고분양가 논란 등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없는 국민들도 둔촌주공은 알고 있다. 둔촌주공 살리기는 거국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HUG의 둔촌주공 보증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범부처 차원에서 둔촌주공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십조 원을 투입해 만든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는 지난해 10월 약 900억 원 가량의 둔촌주공 채권을 매입하며 KB증권 등 금융사들을 압박, 5423억 원 규모 둔촌주공 차환 발행을 성사시켰다. 새해 들어선 분양가 12억 원 이상 중도금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면서 둔촌주공 현장에도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언론을 통해 내놓기도 했다. 특히 2022년 11월 국토교통부는 약 5조 원 규모로 준공 전 미분양 주택에 대한 PF 대출 보증상품을 HUG에 신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CD(양도성예금증서)+1.5% 이하'로 제한하던 금리 요건도 없애기로 했다. 장관과 정책입안자들은 둔촌주공 등 특정 민간 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고 수차례 해명했지만, 모든 정책의 방향성은 둔촌주공 맞춤형이었다.

국민경제를 위해 둔촌주공을 살린다, 다 좋다. 그러나 최소한의 원칙은 지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토부는 앞서 언급한 준공 전 미분양 주택 PF 대출 보증상품을 소개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 할인 등 미분양 해소를 위한 '건설사업자의 적극적 자구노력을 전제'로 보증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과연 '적극적 자구노력'이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했을까. 주방뷰 상품성 논란, 3.3㎡당 3829만 원 고분양가 논란 등 모집공고가 나왔을 때 국민들의 반응을 감안하면 이들의 자구노력을 적극적이라 평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국토부가 직접 예로 든 할인 분양도 없었다. 아직 정당계약 일정이 끝나지 않아 이뤄질 수가 없다. 적극적 자구노력이라 함은 오는 17일 정당계약을 마친 후 계약률에 따라 기존 PF대출을 일부 상환한 다음 오는 19일로 예정된 만기일을 연장한 뒤 분양가 할인 등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닐까. HUG의 보증은 그 후에 이뤄졌어야 했다.

윤석열 정권은 법치주의를 앞세워 국정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둔촌주공을 살리기 위해 법을 바꾸고, 원칙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딱하다고 봐주는 건 법과 원칙이 아니라 권력자의 편의에 가깝다. 기소편의주의는 형사소송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원칙이나 행정편의주의는 어느 법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둔촌주공은 먼 훗날에도 두고두고 거론될 만한 사업장이다. 정부의 둔촌주공 살리기는 과연 그때 어떻게 평가될까. '실패했고 특혜 의혹이 일었다'는 혹평보다는 '성공했고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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