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의 우울한 얘기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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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의 우울한 얘기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1.22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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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CEO들 일제히 올해 경기 나빠질 것으로 예측”
“경제와 안보 상황에 근거 없는 낙관론은 더 큰 독”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 연합뉴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역에서 귀성객 등 시민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 애들은 때때옷 입고 세배 다니는 날이다. 어른들은 세배꾼들에게 덕담해 주고 한 해 설계를 알차게 세워보는 날이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매년 원단(元旦)에 되풀이하던 이런저런 결심들을 ‘올해엔 꼭!’하고 다시 다짐해 본다.

주변에 대한 희망 사항도 함께 품어본다. 자신에 대한 다짐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것 이상으로 주변에 대한 희망은 이뤄지기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오래간만에 친척들과 함께 모인 설날에 만족스럽지 못한 세태와 ‘나라 돌아가는 꼴’에 대한 비판이 덕담을 덮어버리기 일쑤다.

이번 설엔 그게 더 심하다. 북한 공작원들이 국내 곳곳에서 암약해왔단다. 전국 노동 현장에서 체불임금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일자리를 못 얻고 의욕을 잃은 채 집에서 고립되다시피한 청년이 서울에만 10만 명이 넘는다는 조사도 나왔다. 설을 앞두고 그런 보도들이 잇따랐다.

그러니 설날 밥상에서 한숨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반성과 함께 2023년 초 대한민국의 좌표를 점검해보자.

주제 파악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우선 이 칼럼 란(欄)에서 몇 차례 희망했듯이 우리 사회가 계묘년에는 덜 ‘거짓스러워’ 졌으면 한다. 습관성 거짓말쟁이로 정치인들을 지목했었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압제와 험난한 역사 속을 통과해 와서 그런지 거짓말은 우리 생활에 너무 깊고 넓게 들어와있다. 굳이 외국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자신과 주변을 잠깐만 돌아봐도 우리들의 거짓 생활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국회에서 버젓이 거짓말을 반복하는 자들이 계속 금배지를 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당연한 결과다. 개인 간, 업체 간, 노사 간, 여야 간 온통 거짓말이 생활화돼있어서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 사회를 보면 진실성이라곤 찾기 어려운, 허공에 붕 떠있는 모습이다. 거짓말만 줄어들어도 한국의 품위는 꽤나 올라가리라고 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과 관련자들의 엇갈리는 발언을 지겹도록 접하다 보니 거짓말을 새해 첫 화두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자책 하나! 우리 모두 주제 파악을 좀 했으면 한다. 10대 경제대국에 6대 강국? 듣기에 매우 신나는 말이지만, 표면적인 관찰이고 무책임한 외국 언론의 평가일 뿐이다.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는 100조 원 안팎, 국가채무는 1000조 원에 달했다(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 2023년 1월 호). 나라 빚은 계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단순한 국가채무현황이 그 정도고 국가보증채무까지 합치면 나랏빚 규모는 훨씬 늘어나게 돼있다. 외환보유고 등에 비추어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퍼주기 정책에 익숙해진 나라의 환경을 감안할 때 걱정할 수준이라고 보는 눈도 많다.

게다가 감당키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난 가계 빚이 나라 경제 저변에 지뢰처럼 깔려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36개 주요국 중 가장 많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주택 구입용 대출이 주요 원인이어서 요즘 부동산 가격이 다소 떨어지고 있어도 정부가 경착륙을 우려하며 안심하지만도 못하는 이유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 사정까지 매우 나쁘다. 새해 들어 지난 열흘 동안의 무역적자가 63억 달러에 이르며 10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할 위기다. 경상수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무역수지의 악화는 우리 경제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위협적인 경고등이다. 이렇게 위태위태한 게 우리 경제의 실상이다.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북한이 수시로 핵 위협을 가해대면서 간첩을 끊임없이 남파하고 있다. 여전히 공산권과 맞닿아 자유진영 최전방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다.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비핵무장국인 한국을 6대 강국으로 보는 건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분야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허풍 떠는 짓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데도 대북 관계가 안전하다고 가짜평화론을 주장하는 일은 정치권과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자제해야 한다. 지나친 비관론도 삼가야겠지만 우리 경제와 안보 상황에서 근거 없는 낙관론은 더 큰 독이 될 뿐이다.

올해 포퓰리즘 정책 양산 걱정

윤석열 대통령이 중동을 순방하고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후 돌아왔다. 순방에 무려 130여 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했다. 새해 첫 해외 순방이 정치. 외교적 목적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세일즈 순방이었고 대통령도 자신을 영업사원이라고 공언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37조 투자 유치와 48개 MOU(양해각서)도 체결했다. 평가할 만한 성과다. 야당과의 험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여당 내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는 와중에 연초부터 대통령이 세일즈 활동에 나서야 하는 속 사정이 짐작되지 않는 바 아니다.

그래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의 포퓰리즘 정책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포퓰리즘 부분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을’ 야당까지 버티고 있다. 경쟁적으로 인기정책만 쏟아낼 모습이 눈에 선하다.

득표 전략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정부는 경제 상황의 어려움을 솔직히 국민에게 털어놓고 협조를 구해야 할 시기다. 장밋빛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 과거 어느 나라의 철혈재상처럼 ‘철(국방력)과 피(국민의 땀과 노력)’를 요구할 때다. 특히 경제 관료들은 언론 등으로부터 줄곧 지적받아온 사항을 올해에 다시금 명심하기 바란다. ‘정권과 정치권을 배반하더라도 국가를 배반하지는 말도록’ 하라는. 그러나 대부분이 연성 체질인 경제 관료들이 정치권의 압력을 이겨낼지 여전히 의문이기는 하다.

어느 경제전문가나 어느 정부보다도 경기 예측에 밝을 수밖에 없는 각국의 CEO들이 일제히 올해 경기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측했다. 다보스 포럼도 매우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경제 분야의 해외 의존도가 특히 높은 우리로서는 귀담아들어야 할 경고다.

내년 설엔 좀 나아졌으면

설날 아침의 글 주제치고는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 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설 연휴를 맞아 작년보다 70배나 늘어난 관광객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고 또 희망에 찬 많은 얘기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런 류의 글도 하나쯤 있어서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설날이나 추석에 민심을 살펴보러 열심히 돌아다닌다는 정치인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진즉 탄탄대로로 들어섰을 거다. 결과는 우리 모두 보는 대로다. 거듭 말하지만 모두의 정확한 현실 인식과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올해 모든 걱정을 털어내고 내년 용띠 해 원단엔 용처럼 힘차게 비상하자고, 희망에 찬 칼럼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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