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풍경 [일상스케치(69)]
스크롤 이동 상태바
눈 내리는 풍경 [일상스케치(69)]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1.29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백의 겨울 왕국은 동심(童心) 그자체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몽환적 예술 세계​

한파로 난방비 폭탄에 꿈에서 깨다
야외 노동자들 혹한 폭설 이중고 애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겨울 백미는 설경

대나무 마디마다 내려앉은 흰 눈. 가히 초현대적 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담양군
대나무 마디마다 내려앉은 흰 눈. 가히 초현대적 예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담양군

올겨울은 유난히 대설 예보가 잦다. 그동안 눈 구경을 제대로 못한 아쉬움을 완전히 상쇄시켜준다. 소리 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바라보노라면 무념무상에 잠긴다. 소복소복 쌓이는 정경에 흔들리던 불안정한 마음이 진정된다. 설산 활짝 만개한 눈꽃을 둘러보며 심신을 달래기 좋다. 요 근래 풍성한 설경에 힐링이 되고 자못 행복하다.

다랭이논에 내린 눈이 쌓여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마치 건반처럼 보여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어 들릴 것 같다. ⓒ연합뉴스
다랭이논에 내린 눈이 쌓여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마치 건반처럼 보여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어 들릴 것 같다. ⓒ연합뉴스

날씨는 음악을 동반한다. 비가 오면 비 노래, 눈 예보가 뜨면 눈 관련 음악이 넘쳐나며 청각을 감미롭게 자극한다.  펑펑 쏟아지는 설경과 함께 샹송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러스 스토리의 스노우 플로릭' 등이 번갈아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필자 역시 차 한 잔과 함께 눈 내리는 정겨운 풍광을  즐기니 이만한 여흥이 어디 있을까. 겨울의 백미가 따로없다.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선물이자 예술 세계이지 싶다.

그땐 그랬지

폭설이 내린 한 거리에서 어린아이가 눈 위를 걸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폭설이 내린 한 거리에서 어린아이가 눈 위를 걸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릴 때 남쪽에서 자란 필자는 겨울이라도 눈 구경을 거의 못했다.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가장 좋았던 점 두 가지. 첫 째는 심야까지 청취가능한 FM 라디오 음악,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설경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해 겨울, 친구들과 작당하여 영화 '러브 스토리' 주인공처럼 빙의하여 보자고. 대학 캠퍼스 내 노천극장에 올라가  뒤로 완전히 발라당 드러누우며  큰 대자가 되어 겨울 눈과 혼연일체가 됐다.  그땐 추운 줄도 모르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하였으니 그 시절이 그립다. 청춘이어서 가능하고 청춘이어서 좋았단  젊은 날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한폭의 동양화같은 폭설 속 두루미 가족.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인간사와 다를바 없이 푸근하다. ⓒ연합뉴스
한폭의 동양화같은 폭설 속 두루미 가족.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인간사와 다를바 없이 푸근하다. ⓒ연합뉴스

낭만도 잠시 현실은…

지금은 춥기도 하고 빙판에 미끄러져 골절이라도 당할까 봐 창밖 풍경만 바라볼 뿐이다. 한파와 폭설에 주의하라는, 노약자들(?) 외출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연일 문자로 도착했다.

눈꽃 핀 절경을 보러 수시로 인근 산이라도 오르고 싶지만 마음 뿐. 선뜻 나서지지도 않고 조심해야만 하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이제 자연도 맘대로 누리지 못하는 신세가 됐나 싶은 게 세월을 탓해야 하나 비루한 체력을 탓해야 하나….

그렇다고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마냥 낭만에만 젖어 있을 수도 없다. 철없는 설경 예찬은 뒤로하고,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고 빙판길 자동차 연쇄 충돌로 사망사고가 연이어 안타깝다.

이와 함께 한파에 에너지 소비가 많다 보니 난방비가 고공행진을 해 가가호호 고지서를 들고 탄식한다.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절약에 절약을 한다는 소식이 적잖이 들린다. 폭설과 한파가 겹치면서 전국이 꽁꽁 얼었다. 이제 곧 봄의 첫 번째 절기 ‘입춘’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추운 걸까?

한편, 유럽은 알프스에 눈이 없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여름 폭염과 홍수로 몸살을 앓더니 눈이 내리지 않아 스키 대회가 취소되고 따뜻한 날씨에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니 이상 기온은 이상 기온인 듯하다. 자연히 프랑스와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알프스산맥 자락의 유명 스키장들은 올겨울 눈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라고.​

폭설 한파속 민생은 더욱 고달프고 애달프다. ⓒ연합뉴스
폭설 한파속 민생은 더욱 고달프고 애달프다. ⓒ연합뉴스

한파 폭설…'야외 노동자들' 고달파

눈은 세상 만물을 평등하게 만든다. 온 천하를 새하얗게 덮어 버리니까. 그러나 창안에서 내다보는 창밖 눈 내리는 현실은 한가로운 구경꾼과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전국 대설주의보가 연일 내려지고 역대급 한파로 고생하는 직업군들. 강풍과 혹한, 폭설이 번갈아 찾아오는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 탓에 ‘야외 노동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추위와 함께 수시로 내리는 폭설과 싸워야 할 처지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빌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가족들이 아니라도 지켜보기 안타까울 지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이후 부쩍 많아진 배달기사들도 올겨울 날씨는 버겁기만 하다. 안 그래도 오토바이 사고 위험이 큰데 완전무장을 하고 칼바람과 맞서야 한다. 특히 눈이 얼어 만들어진 빙판길이 골칫거리지만 수익이 커 일감을 놓을 수도 없다.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며 야외노동자들은 거친 길위에 몸을 내맡긴다. 냉혹한 현실과 비정한 날씨와 씨름하며 치열하게 사투중인. 겨울이 지나가길 버티고 일상을 견뎌낸다. 위대한 그대들이여! 올 한 해도 화이팅 하시길….

-첫눈 오는 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 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